민주당의 도덕적 타락이 이재명을 불러냈다 [기자수첩–정치]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입력 2023.05.30 07:00
수정 2023.05.30 09:15

유시민조차 "민주당이 그동안 국민

앞에 내놨던 대권주자와 다른 느낌"

더 가관인 것은 소위 '강성 지지층'

정상이 위축, 비정상 활개치는 형국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들어서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지난 2021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을 끝낸 이후의 일이다. 친문으로 분류됐던 민주당의 전직 의원은 사석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민주당의 정치적 생명력이 다해 가는 것 같다"고 한탄했다. 민주당이 대선 후보로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를 점찍은 데 대한 짧은 소감이었다. '이재명이라는 인물이 민주당을 망칠 것'이란 저주에 가까운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대표는 민주당이 내세웠던 핵심 가치인 민주화나 도덕성 어디에도 합치되는 인물은 아니었다. 민주화 운동 경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음주와 공무원 사칭·공무집행방해 등 죄질이 좋지 않은 전과까지 보유했다.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민주당이 그동안 국민 앞에 내놨던 대선 후보들과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을 정도다. 무엇보다 대장동 게이트라는 역사상 최대 토건 비리의 몸통이라는 의혹도 받고 있었다.


이 대표가 민주당을 접수한 이후에는 예상한 대로였다. '방탄정당'이라는 오명에 빠져 매번 발목이 잡혔다. 민주당이 제시하는 어떠한 어젠다도 "이재명 방탄을 위한 국면전환용"이라는 한마디면 일보도 나아가지 못했다. 국민에게 진보의 의제를 각인시켜 집권여당을 견제하고 흔들었던 과거의 민주당과 달리, 혐오와 배제의 언어로써 지지층 결집과 집단행동만 거듭할 뿐이었다.


하지만 과연 이 대표 만의 문제일까. 자신의 재산이 9~15억원이라고 신고했던 김남국 의원은 뒤로는 최소 수십억 단위 코인 거래를 했다. 입법 로비나 내부정보이용 등 불법 의혹을 배제하더라도 비윤리적 행위를 했다는 점은 너무나 명백했다. 그는 공직자재산신고 제도를 비웃었고, 상임위 활동을 여가처럼 여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영길 전 대표가 연루된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도 사안의 무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소속 지방의원이 성범죄로 제명을 당한 것은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다.


절망스러운 것은 이를 바라보는 일부 민주당 의원들의 시선이다. 김남국 의원을 감싸겠다고 "진보가 반드시 도덕적일 필요는 없다"거나 '돈 봉투'에 든 300만원을 "밥값·기름값 수준"이라고 표현한 대목에서는 민주당의 도덕성이 바닥을 쳤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지방의원의 성범죄 논란에 중앙당 차원의 공식 사과는 한 줄도 없다.


더 가관인 것은 소위 강성 지지층의 반응이다. 송영길 전 대표와 김남국 의원을 질책하기는커녕 '의인'으로 칭하고 "보호하자"고 한다. 나아가 "당을 쇄신해야 한다"는 정상적인 목소리를 내는 의원들을 '수박'으로 매도하고 무차별적인 공격을 일삼는다. 정상이 위축되고 비정상이 활개를 치는 형국이다.


물론 민주당에도 개별적으로 훌륭한 의원들이 적지 않다. 강성 당원들도 떼어놓고 보면 주위에서 만나는 소박한 이웃들과 다르지 않을 터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한 명 한 명은 뛰어나고 좋은 사람들인데 함께 있으니 이상한 방향으로 간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들을 하나로 담아내는 민주당이라는 틀이 왜곡됐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지금은 현실정치와 한 걸음 떨어져 있는 당시 민주당 전 의원을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이재명을 대표로 세워서 민주당의 생명력이 다해 가고 있는 게 아니라, 도덕적으로 타락한 민주당이 이재명이라는 인물을 불러냈을 뿐"이라고.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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