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광주, '5·18 추모'보단 '尹 규탄'…"군부 독재 아닌 검찰 독재"
입력 2023.05.17 23:57
수정 2023.05.18 06:47
이재명·박광온 등 민주당 인사, 5·18 전야제 참석
광주시민 4000여명 운집…"이재명 파이팅" 응원
국민의힘 측 인사도 전야제 참석했지만 환영은 無
5·18 민주화운동 43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오후 6시를 조금 넘긴 시각. 광주 수창초등학교 앞에 내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이 대표와 함께 광주를 찾은 박찬대, 정청래, 서영교, 조정식, 이해식, 강선우, 김병기, 민병덕, 김원이, 김병기 의원 등 다른 의원들의 얼굴 역시 비장한 각오로 가득 차 있었다.
매년 광주 금남로에서 열리는 전야제는 민주당과 광주 주민에게는 국경일이나 다름없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날 역시 5·18 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는 이날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는 '끝까지 우리는 정의파다'라는 제목의 대규모 전야제 공연이 펼쳐졌고, 광주 시민들은 4000여명이나 운집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재개된 전야제를 자축했다.
이에 앞서 이 대표는 광주 북구의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부터 참배했다.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은 이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 광주 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청년 정치인들과 함께 망월동 3묘역을 찾아 묵념한 이후 열사들의 묘역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대표는 차례대로 이철규 열사, 백남기 열사, 최현열 열사, 이한열 열사의 묘를 참배했다. 이 자리에서 광주 북구갑을 지역구로 둔 조오섭 의원은 이 대표 곁에서 "지금 일제 피해자 문제를 처리하는 윤석열 정부에 대해 살아계셨다면 통탄하고 계셨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최현열 열사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열사다. 이후에는 8묘역에 안치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고 배은심 여사의 묘역으로 이동했다.
이 대표는 참배 내내 입을 굳게 다문 채 묘비를 응시하고 어루만지면서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묘역 이동 중에는 바닥에 박힌 '전두환 표지석'을 한발로 밟기도 했다. 전두환 표지석은 1982년 전두환씨의 전남 담양군 방문을 기념해 세워졌던 비석으로 광주·전남 민주동지회가 '전두환 대통령 각하 내외 민박'이 새겨진 비석의 일부를 부순 뒤 가져와 참배객들이 밟고 지나가도록 묻어 놓았다.
참배를 마친 이 대표는 박광온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함께 금남로에서 열리는 '5.18 민중 항쟁 민주 평화 대행진'에 참여했다. 이날 행사에는 강기정 광주시장, 문영훈 행정부시장, 이병훈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 위원장, 이정선 광주시교육감 등 광주·전남 주요 정계 인사들도 참석했다.
전야제에 앞서 식전행사로 진행된 오월시민난장과 민주평화대행진, 5·18정신계승 풍물굿이 벌어졌다. 이윽고 시작된 행진에서 민주당 지도부와 시민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여러 차례 부르면서 대열을 형성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들을 향해 '민주당 파이팅' '이재명 파이팅'을 여러 차례 외치기도 했다. 행진은 수창초등학교, 광주일고 사거리, 금남공원 등을 거쳐 '5·18 민중항쟁 기념행사 전야제' 무대까지 이어졌다.
본공연장 앞에서 행진단을 기다리던 시민 4000여명은 행진자들을 환호로 맞이했다. 사회자가 "오월의 정신을"이라고 외치자 시민들이 "오늘의 정의로"란 외침으로 화답했다. 행진을 멈춘 민주당 지도부도 '5·18 완전한 진상 규명! 헌법 전문 수록!'이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30분 가량 짧게 전야제를 구경한 뒤 이 대표는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취재진은 이 대표에게 전야제 소감과 김남국 의원의 코인 논란, 손피켓의 의미 등에 관해 물었지만 답하지 않았다.
이날 전야제는 5·18 민주화 운동을 추모하기 위한 행사라기 보단 현 윤석열 정권과 여당인 국민의힘을 규탄하기 위한 성격이 더 강했다. 행렬에 참가한 시민들은 파란색 마스크와 파란색 옷을 입고 거리로 나섰으며, '미친 일본, 미친 썩열' '이태원 참사 굴욕외교 부자감세 노동자 탄압' '윤석열은 퇴진하라' 등의 표어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었다. 또 사회자는 행진 출발에 앞서 "군부 독재가 검찰 독재로 바뀌고 있다"고 소리 높이기도 했다.
이날 통합의 의미로 전야제를 찾은 여당 인사들을 향해 시민들이 고성과 욕설을 내지르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국민의힘 측에서 전야제를 찾은 김병민 최고위원은 전야제 행사 무대 맨 앞줄에 앉아 있다가, 한 시민의 반발로 인해 자리를 바꾸기도 했다. 이외에도 김가람 청년대변인, 김재섭 서울 도봉갑 당협위원장, 김근태 상근부대변인, 이윤규 청년정치네트워크 위원 등 여당 측 인사 상당수가 자리했으나 대부분 광주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앞서 이날 오전 국립5·18민주묘지 참배 후 전야제를 찾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천아용인(천하람·허은아·김용태)도 무대 한 켠에서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던 과정에서 고성으로 항의하는 한 시민으로 인해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자신이 광주 산수1동에 살고 있다고 소개한 전모씨(56세·남성)은 이날 "국민의힘이 여기 오기에는 아직 많이 멀었다"며 "이재명 대표를 탄압하고 있는 정권이 추모는 무슨 추모냐"라고 말했다.
북구에서 일부러 금남로까지 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이모씨(45세·여성)는 "5·18은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일어났던 일이지만 우리 광주 시민에겐 특별한 날이다"라며 "일본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고 있지 않듯, 지금 대통령도 진정성 있는 모습부터 보여야 할 것"이라고 날을 세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