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피의자들의 ‘야당탄압’ 합창
입력 2023.04.17 07:07
수정 2023.04.17 07:07
이재명, 정황증거는 차고 넘치던데
판도라의 상자가 된 이정근 리스트
괴담 야담 만담으로 소일하지 말고
“보통의 사람들은 평생 한 번 당할까 말까 하는 검찰 압수수색을, 저는 언론에 공표된 것만 봐도 339번 당했다. 그러나 결과는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1일 외신 기자회견에서 그렇게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검찰의 압수수색을 339번이나 당한 사람이 이 대표 외에 또 있었을 것 같지 않다. 정말로 대한민국 정치사, 검찰사(史)의 전무후무한 기록이라고 여겨진다(이 대표의 계산대로라면).
이재명, 정황증거는 차고 넘치던데
그런데 이 대표가 빠뜨린 부분이 있다. 유력정당의 대표로서 자신만큼 많은 범법 혐의를 동시에 받은 사람도 없었음을 함께 토로했어야 했다. 또 직간접적으로 자기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 가운데 4명이 자살한 경우가 자신 말고 달리 있었는지를 밝혀줄 필요도 있었다. 피의자·피고인 입장에서는 내키지 않은 말이겠지만 그렇다고 민주법치국가 대한민국의 검찰에 일방적으로 ‘악당’ 이미지를 씌울 일도 아니지 않는가.
이 대표는 이와 함께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를 설명해줘야 옳다. 그간 (검찰주장과 언론보도로 미루어) 명시적인 지시서나 확인서, 현금 영수증 같은 이른바 물증은 제시된 게 없지만 정황증거는 결코 부족하지 않게 드러났다. 그럼에도 이를 전면 부인하는 까닭은 뭔가. 10원 한 장 받은 게 없다는 점을 역설하던데 박근혜 전 대통령은 10원은커녕 1원 한 장이라도 받은 게 있어서 옥고를 치렀던가?
“외신 기자회견에서 이런 질문과 답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수치스럽다”는 말로 온 세상에 한국 검찰이 생사람 잡는다는 인상을 심어 주는 것은 괜찮은가? 모양을 제대로 갖춘 민주국가에서 거대 집권여당의 대선후보가 패배 직후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진입하고 제1야당의 당 대표직까지 꿰찬 예가 또 있었는가? 자신의 연고지역 선거구가 비어 있는데도 다른 지역으로 피해가서 선거를 치른 경우는 또 어떤가?
그날 기자회견에서 나온 얘기는 아니지만 국민에 대해 예사로 식언(食言)하면서도 입에 ‘국민’을 달고 사는 사람이 이 대표이기도 하다.
“불체포 특권 제한해야 한다. 100% 동의할 뿐만 아니라 제가 주장하던 것이다. 이재명 같은 깨끗한 정치인에게는 전혀 필요한 것이 아니다”(2022. 5. 22. 충북 청주 지방선거 유세).
그랬던 그가 자신에 대한 국회의 체포동의안 처리 때는 민주당 의원들이 부결시키도록 분위기를 몰아갔다(3.27). 핑계가 황당했다. 자신에 대한 정부의 체포동의안 제출은 ‘정치탄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조웅래 의원과 이 대표의 방탄대(防彈隊) 역할을 했던 민주당 의원들이 국민의힘 하영제 의원 체포동의안 표결 때는 대거 찬성표를 던져 통과시켰다(4.3). 이 대표가 불과 1개월여 전의 자기 처지를 생각했다면 이렇게 상황을 몰아가거나 방치하지는 못할 일이었지만, 그는 이런 사람이었다. 판단의 기준은 오직 자신의 이해(利害)임을 그때마다 행동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어쩌나. 하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은 법원의 실질심사에서 기각되어버렸다. 표리부동한 행태를 보인 민주당이 제대로 뺨을 맞은 셈이 됐다.
판도라의 상자가 된 이정근 리스트
이 며칠 사이엔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 사건으로 정치권 안팎이 시끄럽다. 2021년 5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송영길 캠프 관계자들이,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을 통해 마련된 불법 자금을 당 소속 의원 등에게 나눠줬다는 사건이다. 검찰이 지난 12일 캠프 관계자 9명의 사무실과 주거지 등 20여 곳을 압수수색했다. 영장에 피의자로 적시된 사람은 윤관석·이성만 민주당 의원, 강래구 한국감사협회장, 이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 송 전 대표 보좌관 박 모 씨, 인천시 전 부시장 조 모 씨 등이다. 검찰은 이들에게 현금을 받은 현역 의원이 10명 이상, 당 관계자는 50~60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언론보도다.
‘로비스트’로 자처하며 사업가 박 모 씨에게 돈을 받아내 정치자금법 위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 6개월 형을 선고받은(4.12) 이 전 사무부총장의 통화 녹음파일이 ‘고구마줄기’ 혹은 ‘판도라의 상자’가 됐다.
압수수색을 당한 민주당 의원들의 대응 태도는 민주당식 ‘모범답안’이었다.
“검찰의 국면전환용 기획수사를 강력히 규탄한다. 야당탄압에 맞서겠다. 일부 언론의 본 의원 녹취관련 보도는 다른 상황에서 다른 취지로 한 발언을 상황과 관계없이 마치 봉투를 전달한 것처럼 단정해 왜곡하였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윤 의원이 13일 SNS에 올린 글이다. 그 전날부터 JTBC가 보도한 통화 녹음 내용으로는 부인의 여지가 없던데 그는 ‘야당탄압’이란다. 윤 의원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기에 그에 대한 수사가 야당 탄압이 된다는 것인지 의아하다. ‘다른 상황, 다른 취지로 한 발언’이라는 주장도 해당 언론의 추가 보도로 무색해져 버렸다.
역시 압수수색 대상이 된 이 의원도 ‘정치 탄압’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저는) 보도된 의혹들과 전혀 관련이 없으며 사실무근이다. 정치 탄압에 몰두하는 검찰의 야만적, 정치적 행태를 규탄한다,”
관련 없으면 검찰이 아무리 엮으려 해도 불가능할 텐데 왜 ‘야만적 정치탄압’이라고 반발하고 나서는 것일까?
지켜보기만 할 민주당 지도부가 아니다. 14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박찬대 의원은 “대통령실 도청 의혹이 불거지자마자 2년 전 일을 빌미로 압수수색한 것이 의아하다”고 했다. 도무지 아귀가 안 맞는 이런 따위의 주장을 해야 할 만큼 민주당의 처지가 곤고해졌다는 뜻이겠다. 프랑스에 체재중인 송 전 당 대표는 자신과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딱 잡아뗀 모양인데, 역시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민주당의 ‘모범답안’이다. 범법은 자신들이 하고 욕은 검찰이 먹게 하는 검찰대응 교본을 모두가 숙지한 듯하다.
괴담 야담 만담으로 소일하지 말고
‘이정근 리스트’가 드러나면서 좌불안석(坐不安席: 마음이 불안하거나 걱정스러워서 한군데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양을 이르는 말)인 사람 중에는 노웅래 의원도 당연히 포함돼 있을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에게 읍소한 대가로 체포동의안 통과는 막았지만 이 전 사무부총장과 자신의 불법 자금원(資金源)이 동일인이라는 점에서 도피로가 막힌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또한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 제출과 관련 “(체포동의안 제출이) 일사천리로 이뤄지는 모습에서 야당을 탄압하려는 강한 의지가 보인다”고 주장했었다. 민주당 대변인도 체포동의안 제출이 야당에 대한 탄압이라고 거들었다. 본인의 범죄행위인지 검찰의 탄압인지는 사법부의 판단으로 판가름 나겠지만 ‘정치탄압, 야당탄압’ 합창은 너무 자주 들어 식상하다. 레퍼토리를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5년 전 이른바 ‘적폐청산’ 시절에는 쾌재를 불렀을 사람들이다. 처지가 바뀌었으니 말이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이들이 막무가내로 내지르는 억지스런 목소리가 처연한 느낌마저 준다. 대추나무 연 걸리듯 ‘이정근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민주당 정치인들을 보면서 검수완박 강행의 의도를 읽어내는 사람들도 있다. 민주당 의원들이 검찰의 손발을 묶기에 혈안이 되듯 했던 까닭이 그렇게 짐작된다는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 느낌을 어떨까?
‘국민의 대표’라는 거창한 이름을 내걸고 있는 사람들이 ‘정치탄압, 야당탄압’ 구호나 외며 세비를 받고 있는 현실이 황당하다. 이런 합창은 ‘개딸들’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당 지도부, 소속 의원들까지 나서다니! 의회의 경박화, 의원들의 선동꾼화 현상이 우리나라의 경우 유독 심해 보인다. 아예 의회정치를 포기할 기세다. 그러면서도 특권의식은 오히려 부풀어 올라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든 검찰은 아는 체 말라고 소리를 지른다.
이런 국회라면 의원 수를 확 줄이는 게 정답이다. 머리수에 비례해 비용과 소음(騷音)이 늘어난다고 할 때는 이 방법 말고 대안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명색이 국민의 대의원들이라면 하다못해 국민의 부담을 덜어주는 일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 특히 거대 야당 의원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청담동 술자리 괴담, 친일 야담, 이모 만담 같은 것으로 소일(消日: 어떠한 것에 재미를 붙여 심심하지 아니하게 세월을 보냄)하기보다는 국회 비용절감 운동이라도 전개하는 게 생산적 활동일 것 같아 하는 말이다.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