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 쉬워지니 나쁜 은행? 금리인하요구권 공시 '통계의 함정'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입력 2023.03.02 09:46
수정 2023.03.02 09:46

조회 늘어나면 수용률 '추락'

고객 편의 개선했다가 '역풍'

"경쟁 유도" 정책 취지 '역설'

서울 시내의 한 은행 대출창구에 금리인하요구권 안내 배너가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금융사들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는 금리인하요구권 공시를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금융사가 고객들로부터 받은 금리인하 요구들 중 실제 이자 감면으로 이어진 비중인 이른바 수용률이 줄 세우기 방식으로 공개되고 있는데, 가능 여부 조회가 많아질수록 해당 지표가 악화되는 통계의 함정이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어서다.


결국 소비자가 금리인하요구권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신청 접근성을 개선한 금융사가 도리어 나쁜 곳처럼 여겨질 수 있다는 얘기로, 고객을 위한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금융당국의 정책 취지에도 맞지 않는 현실이란 지적이 나온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과 보험사, 카드사, 저축은행 등은 각 업권별 협회를 통해 지난해 상반기부터 연 2회씩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 공시를 하고 있다. 금리인하요구권은 재산 증가나 개인신용평점 상승 등으로 신용 상태가 개선됐을 때 차주가 자신이 대출 등을 이용한 금융사에 금리를 내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금융당국은 금융사로 하여금 고객의 금리인하요구를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유도하기 위해 해당 공시를 마련했다. 어떤 금융사가 소비자의 이자 감면을 위해 보다 적극적로 금리인하요구를 받아들이고 있는지 대조할 수 있게 함으로써 경쟁을 촉진하겠다는 설명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관련 공시를 통해 공개되고 있는 핵심 지표인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의 산출 방법이다. 대출 차주들이 금리인하요구를 신청한 건 가운데 각 금융사가 이를 수용한 건의 비율을 수용률이란 이름으로 수치화해 보여준다.


문제는 이런 구조로 인해 소비자가 금융사에 금리인하요구를 신청하는 사례가 많아질수록 수용률 결과 값은 떨어진다는 점이다. 금융사가 모바일 플랫폼 등을 통해 금리인하요구 신청을 간편하게 만들면 고객 입장에서는 예전과 달리 수시로 가능 여부 조회를 할 수 있게 되고, 이렇게 신청 건수만 급격히 늘어나면 수용률이 하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가장 최근 이뤄진 공시에서 5대 은행 중 금리인하요구 수용률이 가장 낮은 것으로 점 찍힌 하나은행이 이런 계산 방식으로 인해 손해를 본 케이스다. 지난해 상반기 4014건이었던 금리인하요구 수용 건수가 같은 해 하반기 1만1260건으로 180.5%나 늘었지만, 같은 기간 신청 건수가 1만2146건에서 4만1930건으로 245.2% 급증하면서 최종 수용률이 33.1%에서 26.9%로 6.2%포인트(p) 낮아진 것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하나은행에서 금리인하요구권을 활용한 대출 차주가 훨씬 많아졌음에도, 수용률 값만 놓고 보면 도리어 고객에게 불리한 금융사처럼 보이게 되는 착시 효과가 벌어진 셈이다. 하나은행이 자동심사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금리인하요구를 보다 이용하기 좋게 만든 게 오히려 악수가 돼 버린 아이러니다.


인터넷전문은행들도 이 같은 산정 방법을 두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대표적인 업권이다. 애초에 오프라인 지점 없이 모바일 영업을 중심으로 고객을 받은 만큼 휴대폰 어플리케이션으로 아무 때나 손쉽게 금리인하요구를 알아보는 대출 차주들이 많고, 이로 인해 신청 건수가 불어나면서 수용률이 낮아 보이기 때문이다.


카카오·케이·토스뱅크 등 인터넷은행 3사의 지난해 하반기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은 평균 26.2%에 그쳤다. 하지만 이런 결과가 나온 실질적인 원인은 이 기간 각 은행별로 적게는 10만건에서 많게는 30만건 넘게 발생한 신청 규모 때문으로 봐야 한다. 아직 대형 시중은행들에 비해 대출 규모가 훨씬 작은데도 편리한 앱 덕에 금리인하요구권 신청이 더 많이 이뤄지고 있다는 해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행 고시대로라면 금리인하요구를 어렵게 만들어 둔 금융사가 거꾸로 수용률에서 좋은 성적표를 받을 수 있다"며 "단순한 줄 세우기식 비교로 인한 오해를 막고, 고객 편익이라는 제도 취지에 맞도록 공시를 손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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