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금융그룹 리스크 비용 年 5조 돌파 '위기감'
입력 2023.02.19 06:00
수정 2023.02.19 06:00
'위험 대비' 충당금 2조 급증
'금리 충격파' 부실 확산 우려
국내 4대 금융그룹이 대출 부실에 대비해 쌓은 충당금이 한 해 사이 2조원 가까이 불어나면서 연간 5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가파른 금리 인상의 충격파로 리스크 비용이 확대되는 가운데, 금융당국의 거센 압박으로 시장의 충당금 부담은 한층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 이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는 금융지원이 종료되면 대출을 둘러싼 진짜 위기가 고개를 내밀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신한·KB·하나·우리금융 등 4개 금융그룹의 신용손실충당금 전입액은 총 5조1033억원으로 전년 대비 57.0%(1조8524억원) 늘었다. 신용손실충당금은 금융사가 고객들에게 빌려준 돈의 일부가 회수되지 못할 것을 대비해 미리 수익의 일부를 충당해 둔 것이다.
금융그룹별로 보면 우선 KB금융이 쌓은 신용손실충당금이 1조8359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54.9% 증가하며 최대를 기록했다. 신한금융 역시 1조3057억원으로, 하나금융은 1조1135억원으로 각각 31.0%와 109.1%씩 해당 금액이 늘었다. 우리금융이 적립한 신용손실충당금도 8482억원으로 58.0% 늘었다.
금융그룹들의 신용손실충당금 규모는 코로나19 이후 널뛰기를 하고 있는 양상이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타격이 본격화한 직후 대규모 충당금을 쌓았고, 이후 잠시 속도조절 모드에 들어갔다가 지난해 다시 그 규모를 대폭 늘린 모습이다.
실제로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직전인 2019년 조사 대상 금융그룹들의 연간 신용손실충당금 전입액은 2조7511억원 수준이었는데, 이듬해인 2020년에는 4조1070억원으로 1년 새 49.3%(1조3559억원)나 증가했다. 그러다 2021년 3조2509억원으로 전년 대비 20.8%(8560억원) 줄었다가, 지난해 이를 다시 급격히 늘려 잡았다.
금융권의 충당금 확대 배경에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금리가 자리하고 있다. 고금리 여파로 대출을 갚는데 어려움을 겪는 차주가 많아지고, 이런 흐름이 금융사의 여신 건전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사상 처음으로 일곱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이중 7월과 10월은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p)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이에 따른 현재 한은 기준금리는 3.50%로, 2008년 11월의 4.00% 이후 최고치다.
한은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0.25%p 오를 때마가 가계의 이자 부담은 3조3000억원씩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됐다. 지난해 7월까지만 해도 0.50%였던 기준금리가 지금까지 3.5%p 오른 상황을 감안하면, 불어난 이자만 39조6000억원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는 금융당국 주문도 한 몫을 했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상반기 이내 시행을 목표로 특별대손준비금 적립 요구권 신설을 골자로 한 은행업 감독규정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향후 은행의 예상되는 손실에 비해 대손충당금이나 대손준비금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이를 추가 적립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더 큰 고민거리는 추가 악재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2020년 4월부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상대로 시행돼 온 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가 3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어서다. 금융지원 조치 해제 시 수면 아래 억눌려 온 부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올 수 있다는 염려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 등을 중심으로 한 충당금 이슈는 앞으로가 더 문제"라며 "금리 인상기가 끝난 이후 본격적으로 대출 부실이 드러날 가능성이 크고, 코로나19 금융지원까지 종료될 경우 충당금 비용이 눈 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