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바쁜데… 잇따른 예약취소에 속타는 車업계

편은지 기자 (silver@dailian.co.kr)
입력 2023.01.11 13:45
수정 2023.01.11 16:34

제네시스 G90.ⓒ현대자동차

"지금 계약하시면 4달이면 나와요. 원래는 1년 가까이 걸렸던 모델입니다. 계약 해두시면 더 짧아질 수도 있습니다."


현대자동차 대리점에 제네시스 G80 가솔린 모델의 출고기간을 문의하자 돌아온 대답이다. 기아의 경우에도 현재 10개월 이상 걸리는 모델들의 납기가 더 단축될 수 있다며 설득을 이어갔다.


완성차업계가 긴장의 끈을 바짝 조이고 있다. 빠른 출고를 내세워 소비자들의 환심을 사고 있지만, 이면엔 고금리로 인해 계약취소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11일 현대자동차 대리점에 따르면 이달 인기모델 대부분의 출고기간이 줄었다. 납기일이 가장 길었던 제네시스 GV80의 경우 기존 30개월 이상 소요됐지만 이달 들어 18개월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제네시스 G80의 경우에도 기존 10개월에서 4개월로, GV70도 18개월 이상 기다려야했지만 14개월로 줄었다.


기아 역시 마찬가지다. 최고 인기모델인 쏘렌토 하이브리드의 경우 기존 18개월에서 이달 17개월로 1개월 줄었고, 가솔린과 디젤모델의 경우엔기존 10개월에서 5개월, 4개월로 대폭 줄었다. 스포티지 하이브리드 역시 14개월에서 12개월로 짧아졌다.


반도체 수급난으로 최근 2년간 긴 출고기간에 지친 소비자들이 많았던 만큼 빨라진 출고일을 앞세워 영업에 열을 올리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현대차 대리점 관계자는 "제네시스 GV80 같은 고가 모델은 이번 달엔 18개월이지만 금리가 인하되지 않으면 올해 납기일이 계속 줄어들 수도 있다"며 "예상보다 빨리 차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길게는 2년 이상까지 기다려야했던 인기 차종들의 출고 기간이 앞당겨진 것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금리 때문이다. 차량을 할부로 구입하는 소비자가 많은 만큼, 금리가 높아지면 소비자들은 매달 내야할 할부금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실제 현대캐피탈 M 할부금리는 이달 들어 7.5~8.7%로 조사됐다. 제네시스 모델의 경우엔 9.0%까지도 뛴다. 국내 주요 5개 카드사의 자동차 할부 금리 범위 역시 7%를 넘어섰다. 지난해 초만 하더라도 자동차 할부금리는 2%대였다.


서울의 한 대리점 관계자는 "금리가 너무 올라서 부담을 느끼는 고객이 많다"며"금리가 8%를 넘어서면 취소 건수가 더 많아질 것 같다. 이번달만 해도 70명 넘는 고객이 계약을 취소했다"고 말했다.


이에 완성차업계에선 노심초사하는 분위기가 감돈다. 금리 인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계약 취소가 지속될 경우 내수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현대차의 경우 올해 내수 판매 목표를 지난해보다 5만대 많은 78만대로 잡았다. 이 가운데 금리 인상으로 인한 예약 취소가 지속되면 판매 목표 달성에도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현대차, 기아의 경우엔 아직까지 수요가 쌓여있지만 쌍용차, 르노코리아, 한국GM의 경우엔 상황이 더 뼈아프다. 안그래도 부진한 내수판매 성적이 더 악화될 수 있어서다.


르노코리아, 쌍용차, 한국GM 등 '르쌍쉐'의 지난해 내수판매는 각각 쌍용차 6만8666대, 르노코리아 5만2621대, 한국GM 3만7237대였다. 이들은 금리 인상 이전부터 '빠른 납기'를 내세워 소비자들을 유혹해왔지만, 금리가 치솟으면서 이마저도 어려워졌다.


지난해 경기 침체 여파로 쉽지않은 한 해를 보낸 완성차업계는 올해 금리인상으로 시름이 더 깊어질 전망이다. 기준금리가 지속적으로 상승함에 따라 자동차 할부금리 역시 조만간 8%를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수급난이 완화됐다고는 하지만 이로 인해 출고 시기가 대폭 앞당겨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고물가, 고금리 등으로 소비자 부담이 높아지면 올해 자동차 구매 수요는 예년보다 더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편은지 기자 (silve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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