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키워드-공연] 뮤지컬 4000억 시대, 임윤찬 신드롬, 뮤지컬 티켓 15만원 돌파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2.12.29 13:02
수정 2022.12.29 13:02

뮤지컬계 넘어 사회면까지 장식한 ‘옥장판 사태’

22년 역삼 시대 끝...마곡시대 연 LG아트센터

올해 공연계는 코로나19로 인한 침체기를 완전히 벗어난 한 해였다. 5월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를 기점으로 각 장르의 공연들이 잇따라 열렸고 그 중에서도 뮤지컬은 연간 티켓 판매액이 4000억원 규모를 넘어서면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활발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밴클라이번 국제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우며 스타덤에 오른 임윤찬을 비롯해 연주자들이 해외 각종 콩쿠르에서 낭보를 전하면서 ‘K클래식’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피아니스트 임윤찬 ⓒ뉴시스
올해 뮤지컬 티켓 판매액 사상 최고치…클래식계는 임윤찬 신드롬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올해 공연 티켓 판매액은 5426억원(이하 28일 기준)을 기록했다. 지난해(3069억원) 대비 약 77% 증가한 수치다. 특히 뮤지컬 장르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올해 뮤지컬 티켓 판매액은 4133억원에 달한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약 80%가량 증가한 것으로, 티켓 판매액이 4000억원을 넘긴 건 올해가 처음이다.


공연계에서는 대중음악 콘서트 등이 아직 팬데믹의 여파를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관객들이 뮤지컬로 몰렸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예년 봄·가을에 실험적 창작뮤지컬, 여름·겨울에 대규모 라이선스 공연이 열리던 것과 달리, 올해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해제와 함께 ‘아이다’ ‘데스노트’ ‘웃는 남자’ 등 대형 공연들이 쉴 새 없이 열리며 관객들을 불러 모았다. 더구나 스테디셀러인 ‘마틸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영웅’ ‘스위니토드’와 신작 ‘물랑루즈!’ 등의 대작 뮤지컬들이 내년 초까지 공연하면서 티켓 판매액에도 가속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클래식계의 선전도 빼놓을 수 없다. 방역수칙 완화로 해외 유명 연주자와 해외 악단들의 내한공연이 증가하고, 임윤찬, 조성진 등 스타 연주자들의 공연이 이어지며 활기를 띄었다. 특히 임윤찬은 지난 6월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한 후 아이돌 못지않은 팬덤을 형성하며 신드롬급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임윤찬은 물론 한국 젊은 연주자들의 유명 콩쿠르에서 낭보를 전해왔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장 시벨리우스 콩쿠르), 첼리스트 최하영(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피아니스트 이혁(롱티보 국제 콩쿠르), 첼리스트 한재민(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이 잇달아 수상했다. 이 덕에 클래식계에서는 드라마, 영화 등에 이어 ‘K클래식’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뉴시스
뮤지컬계 숙원 사업 ‘공연법 개정안’ 통과…해외 진출 가속


올해 초에는 뮤지컬계의 숙원 사업이었던 공연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기도 했다. 그간 뮤지컬 업계에서는 뮤지컬 분야가 공연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파급 효과가 크고, 한류 콘텐츠로서의 성공 가능성이 가시화됐음에도 각종 지원 사업에서 연극의 하위 분야로 분류되는 등 소외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개정안에서는 ‘공연’의 정의 규정에 ‘뮤지컬’을 ‘공연’의 예시 중 하나로 명시해 ‘뮤지컬’을 공연법상 독립 분야로 인정했다. 아울러 공연장 안전 의무를 신설·강화해 공연장 안전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한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는 “뮤지컬 시장의 성장에 따른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했던 과정”이라며 “국내 뮤지컬 시장의 경제적 규모는 연간 4000억원에 달하고 최근엔 창작뮤지컬의 해외 수출도 활발해진 상황이다. 뮤지컬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필연적으로 가야할 길”이라고 반겼다.


실제로 공연법 개정안이 시행된 이후 국내 뮤지컬의 해외 수출은 더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5·18을 다룬 뮤지컬 ‘광주’는 지난 10월 뮤지컬의 본고장인 브로드웨이에서 쇼케이스를 열었고, 창작 뮤지컬 ‘마리 퀴리’는 일본으로 라이선스를 수출해 내년 3~4월 도쿄와 오사카에서 현지 배우와 스태프가 참여해 무대에 오른다. 동명의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창작뮤지컬 ‘사랑의 불시착’도 일본 진출을 타진 중이다. ‘인간의 법정’은 국내 초연에 앞서 중국 뮤지컬 제작사와 중국 판권 계약을 맺기도 했다.


ⓒLG아트센터
22년 역삼 시대 끝…LG아트센터, 마곡시대 열렸다


주요 공연장의 변화도 있었다. 강남 역삼동에 22년간 자리하면서 민간공연장으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해왔던 LG아트센터가 마곡시대를 맞게 됐다. LG아트센터는 2001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9개월 동안 공연하는 장기 대관 공연을 처음 시도해 국내 뮤지컬 시장을 키우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밖에도 ‘미녀와 야수’ ‘아이다’ ‘빌리 엘리어트’ 등의 세계적인 라이선스 공연은 물론, ‘영웅’ 등 초연 공연까지 총 867개 작품이 공연됐고, 45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특히 공연계 고질적인 문제였던 초대권 제도를 없애 자연스럽게 예매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1000석이 겨우 넘고, 분장실은 따로 있는 등 애매한 사이즈의 단일 공연장이란 특성은 늘 한계로 지적됐다. 2005년 LG그룹과 GS그룹의 분리로 센터가 있는 LG강남타워가 GS그룹 소유로 바뀌며 처지도 애매해졌다. LG아트센터의 마곡 시대 개막은 이런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첫 걸음이다. 서울식물원 내에 위치한 LG아트센터는 4년 6개월에 걸쳐 약 2500억 원의 공사비를 투입해 건설됐다. 현재 1100석 규모의 극장보다 더 큰 1335석 대극장과 함께 365석 규모의 가변형 블랙박스 극장도 들어섰다. 당초 접근성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마곡의 교통접근성과 성장속도를 고려하면 기존 관객유입은 물론, 신규관객까지 발굴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강서 지역에 새로운 문화중심이 되어 줄 것으로도 기대하고 있다.


뮤지컬 '엘리자벳' ⓒ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계 넘어 사회면까지 장식한 ‘옥장판 사태’


공연계에 좋은 소식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일명 ‘옥장판 사태’로도 불리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공연계를 넘어 사회면까지 도배하는 일이 벌어졌다. 논란의 중심엔 옥주현이 있었다. 한때 절친으로 알려졌던 배우 김호영이 ‘엘리자벳’ 공연에 옥주현의 인맥 캐스팅을 연상케 하는 부정적인 뉘앙스의 SNS 글을 올리면서 공연계가 발칵 뒤집혔다. 옥주현은 김호영을 고소했고, 뮤지컬 1세대 배우들은 입장문을 냈다. ‘엘리자벳’ 측도 인맥 캐스팅을 부인하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발표했다. 그럼에도 옥주현과 함께 공연을 했던 배우와 스태프들이 ‘갑질’ 관련 글을 공유하면서 파장이 커졌다. 결국 옥주현은 고소를 취하하고 양측의 화해로 사건은 일단락됐다.


ⓒCJ ENM
심리적 마지노선 깨졌다…뮤지컬 티켓 최고가 18만원까지


코로나19 이후 모든 전방위적으로 물가가 오르면서 뮤지컬 티켓 가격이 뛰기도 했다. 지난 11일 개막한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VIP 티켓 가격을 16만원으로 올렸고, 지난 16일 개막한 뮤지컬 ‘물랑루즈!’는 최고가가 18만원, 내년 1월 12일 개막을 앞둔 ‘베토벤’도 17만원의 티켓가를 공개했다. 2010년 기준 VIP 좌석 가격은 12만원부터 서서히 상승하다가 팬데믹을 전후로 15만원을 기록했고, 이젠 심리적 마지노선이라고 여겨졌던 ‘VIP석 15만원’도 깨졌다.


사실 올 한 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현상을 고려하면 16만~18만원은 15만원 대비 7~20% 정도 오른 것이다. 제작사들도 코로나 시기에 엄청난 적자를 봤고, 그사이에 인건비와 장비 대여비 등 제작 비용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때문에 관객들은 높은 티켓값이 부담이 되지만, 가격 상승에 어느 정도 납득하는 분위기다. 다만 다른 작품들이 제작비와 무관하게 상승한 티켓가격을 따라가면서 ‘시장 통상 가격’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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