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의원을 개에 비유하는가
입력 2022.12.19 07:07
수정 2022.12.19 07:07
“민주당, 슈퍼챗에 춤추는 유튜버”
“척구폐요 아나?” 응수한 네티즌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의 발로?
양향자 무소속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복당신청을 철회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올렸었다. 지난 5월 18일 밤에 쓴 더불어민주당과의 결별선언문이었다. 날이 밝으면 6.1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될 터였다.
그는 “제가 입당했던 민주당은 지금의 민주당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당을 떠나야 했던 의혹(지역사무소 보좌관의 직원 성폭행 사건과 관련된 양 의원의 2차 가해 논란=필자)이 법적 소명되었지만 제가 돌아갈 당은 이제 없다”라고도 했다. 작심하고 올린 이글에는 시쳇말로 민주당을 향한 ‘뼈 때리는’ 지적과 충고가 담겨 있었다.
“민주당, 슈퍼챗에 춤추는 유튜버”
“많은 국민이 우려하는 법안을 172명 국회의원 전원이 발의한다. 대선에 패배한 당대표이자 ‘586 용퇴’를 외쳤던 586세대의 맏형(송영길)이 사퇴한 지 20일 만에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해도 반대하지 않는다.”
“패배한 대선 후보(이재명)가 한 달 만에 정계 복귀하고, 연고도 없는 지역에 출마하고, 보궐선거 후보가 지방선거 선대위원장을 맡는, 이런 기이한 모습에 박수를 친다.”
“지방선거 완패를 막으려면, 지금이라도 송영길과 이재명 두 분은 사퇴해야 맞다.”
“‘개딸’(이재명 극성 지지자)에 환호하는 민주당의 모습은 ‘슈퍼챗’(후원금)에 춤추는 유튜버와 같다.”
양 의원은 지난 6월 26일 국민의힘 반도체특위 위원장직을 수락했다. 그리고 지난 16일, 그가 대표 발의한 ‘국가첨단전략산업법’이 산자위를 통과했다. 국민의힘 당내 특위 위원장직을 맡긴 했지만 입당은 않고 무소속 의원으로 있다. 미국발의 지구적 반도체 전쟁 와중이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살아남고 이겨내야 한다. 입법측면에서 이 전쟁을 지원하고 승리를 견인할 역할과 책임 가운데 큰 부분이 그에게 지워져 있다. 소속정당이나 진영에 상관없이 존중을 받아야 할 인사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그런데 한 때는 같은 당에 속했던 김남국 의원이 18일 페이스북을 통해 ‘가구향리폐(家狗向裏吠)’라는 말로 양 의원을 비난하고 나섰다. 집에서 기르는 개가 집안을 향해 짖는다는 뜻이다. 이틀 전 양 의원이 페이스북에 “복당 안한다는데 복당 불허? 이재명 대표님, 이런 게 ‘정치 보복’이다. 민주당, 뒤끝 작렬이다”라는 글을 올린데 대한 한 ‘처럼회’ 멤버의 맹렬한 대응이다.
양 의원은 항변을 할 만했다. 16일 김의겸 민주당 대변인이 박지원 전 국정원장 복당 보류 사실을 발표하면서 심사 중인 대상자에 양 의원 이름도 포함시켰다. 이미 공개적으로 복당 신청을 철회한 바 있는 양 의원이 이 점을 들어 반박하자 김 대변인은 오후에 추가 입장문을 통해 해명했다.
“척구폐요 아나?” 응수한 네티즌
“양 의원의 복당 문제는 지난 15일 중앙당당원자격심사위원회에서 ‘복당불허’로 심사결과가 나왔고, 이 결과가 16일 최고위원회에 올라왔다. 양 의원이 SNS 등을 통해 복당을 철회했으나, 문서로 접수된 것은 아니어서 ‘복당불허’로 심사결과가 올라온 것이다. 당헌당규상 복당 신청과 철회 모두 문서로 이뤄지도록 돼있다.”
자신의 오전 발표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말인 모양이다. 민주당의 절차가 그럴지는 모르지만 양 의원은 당 소속이 아니다. 그렇다면 양 의원의 입장에서 경과를 밝혀 주는 것이 도리다. 말실수, 혹은 착오였다면서 사과하면 될 일을 이처럼 빙빙 돌려 대는 것이 그의 언어습관이 된 듯하다.
“지금 상황은 ‘처럼회가 곧 민주당’이다. 어제부터 1만 통 넘는 전화와 문자가 와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복당 못 해도 어떻게 하겠나. 어쩔 수 없다.”
양 의원은 지난 4월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바로 그 처럼회의 유력멤버 가운데 한 사람이 김 의원이다. 이 모임의 몇몇 의원은 국회법제사법위원회 활동 과정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자주 ‘개그 한마당’을 펼쳐왔다. 일반 시민들이라면 창피해서 고개조차 못들 텐데 이들은 언제나 당당하고 늘 공격적이다.
서로 뜻이 안 맞아 감정이 상했다는 점은 짐작할 만하다. 그렇다고 같은 정당에 소속돼 있던 동료 의원을 개에 비유할 일은 아니지 않을까? 정치언어가 이렇게 험해지니까 정치과정도 험악해지는 것이다. 정치는 말에서 시작해 말로 끝나는 소통→상호이해→타협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여기서 ‘말’이란 모든 의사표현 방식의 총칭이다). 험담·악담은 소통자체를 차단한다. 그러니 민주적 정치과정이 성립할 여지가 없다. 국민의 대의원이 민주대의정치의 의의를 부정하는 셈이다.
김 의원의 문자 자랑에 곧바로 “‘척구폐요’ 아는가?”라는 댓글이 달렸다. 척구폐요(跖狗吠堯)는 “도척(큰 도적)의 개가 요임금(성군)을 보고 짖는다”는 말이다. 양 의원이 아니라 어느 네티즌이 해당 기사 댓글로 그렇게 썼다. 김 의원이 갈 데 없는 ‘척구’, 그러니까 도척의 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의 발로?
《사기》 <회음후 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회음후 대장군 한신이 결국 여(吕)황후에 의해 참수를 당했다. 그는 죽음에 이르러 “괴통의 계책을 쓰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한탄했다. 한 고조가 여후에게, 한신이 죽을 때 무슨 말을 했는지 물은 다음 괴통을 체포해 오게 했다. 잡혀 온 괴통에게 고조는 “네가 회음후에게 모반하도록 가르쳤느냐”고 물었다. 괴통이 그랬다고 했다. 고조가 크게 화를 냈다.
“저 놈을 삶아 죽여라,”
괴통이 억울하다며 한 말이 척구폐요였다.
“도척이 기르는 개가 요임금을 보고 짖은 것은 요임금이 어질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개는 본래 자기 주인이 아닌 사람을 보면 짖게 마련입니다. 그 당시 저는 한신만을 알았을 뿐 폐하는 알지 못했습니다.”
주인이 바뀌면 새 주인을 위해 짖는 개라는 뜻이 된다. 김 의원에게는 아주 모욕적일 수 있는 비유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격’이 되고 말았다.
김 의원은 양 의원을 가리켜 이런 말도 했다.
“정치탄압? 정치보복? 지나친 자의식 과잉으로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총선 출마하면서, 광주시장 경선·최고위원 출마하면서 했던 모든 말들도 그 자리를 탐해서 했던 거짓말로 생각된다. 제대로 속았다.”
이렇게 동료 의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지였던 사람을 거칠게 비난한 까닭은 뭘까? 처럼회 규약(만약 그런 게 있다면) 상의 의무인가? 아니면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의 발로인가?
양 의원이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 대표를 민주당의 ‘계륵’이라며 이렇게 권고한 바 있다.
“이 대표는 민주당을 사랑하는가. 사랑한다면 떠나라.”
김 의원이 이미 그때부터, 제대로 양 의원에게 되치기를 함으로써 당 대표에 대한 충성심을 확인시킬 수 있는 기회를 노려왔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다 양 의원이 ‘정치보복’이라는 지적까지 하자 기회는 이때다 해서, 동료 의원을 ‘주인보고 짖는 개’로 매도한 것인가? 설마 그런 생각까지는 안 했다고 여겨지지만 어쨌든 의원이면 의원다운 언어를 구사하도록 노력해 주면 좋겠다.
단언컨대 ‘악언(惡言)’은 ‘악정(惡政)’을 낳고 ‘선언(善言)’은 ‘선정(善政)을 낳는다. 악취 나는 언사 속에서 향기로운 정치가 생겨날 리 없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