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웃는 남자’ 유소리 “데아와 함께 저도 성장했어요”
입력 2022.08.29 16:22
수정 2022.08.29 16:22
데뷔 1년여 만에 '웃는 남자' 여주인공 '데아' 역 캐스팅
"박은태·박강현·박효신과 호흡, 매번 새롭고 행복했다"
"공연 초반 공황장애 겪어...선배 배우들 도움으로 이겨내"
배우 유소리에게 뮤지컬 ‘웃는 남자’는 큰 기회인 동시에 큰 도전이었다. 단국대 뮤지컬학과에 재학 중인 그는 지난해 뮤지컬 ‘명성황후’ 앙상블로 데뷔해 같은 해 ‘프랑켄슈타인’에서도 앙상블로 무대에 올랐다. 그는 세 번째 작품인 ‘웃는 남자’에서 첫 주연을 따냈다.
당초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어린 시절부터 한 기획사의 연습생 생활을 하던 그는 힘든 시기를 보내고 꿈을 접어야하는 상황까지 내몰렸다. 심지어 음악을 그만두고, 다른 직업을 택하려던 시기였다. 그러던 차에 평소 뮤지컬을 좋아하던 친언니의 제안으로 뮤지컬 배우라는 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고 덕분에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만약 뮤지컬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상상도 안 가는 일이에요. 너무 감사하죠. 특히 이번 ‘웃는 남자’를 하면서 제가 뮤지컬을 정말 좋아한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됐어요. 대선배들과 함께 하게 돼서 너무 큰 영광이었고 객석에서만 보던 작품에 직접 출연한다고 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어요. 모든 게 어렵기도 했죠. 심지어 걷는 것조차도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걱정도 많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큰 키워드는 ‘배움’이었던 것 같아요. 공연이 끝난 지금도 여전히 배워야할 게 많지만 이 작품을 통해 분명 성장한 걸 느껴요.”
"보이지 않는 데아 아닌, 잘 듣고 잘 느끼는 데아 만들었죠"
유소리는 지난 6월부터 약 두 달여 동안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한 ‘웃는 남자’를 통해 아이와 같은 순백의 마음을 가진 인물로, 앞을 보지 못하지만 영혼으로 그윈플렌을 바라보며 그를 보듬어 주는 ‘데아’ 역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사실 처음엔 데아라는 캐릭터를 분석했다기 보다 ‘카피’로 시작했다고 하는 게 맞을 거예요. 이미 좋은 레퍼런스들이 있고 앞선 시즌에서 (이)수빈 언니가 연기한 것도 있잖아요. 그래서인지 사실 ‘내 것’이 없다고 느껴졌어요. 이후엔 조금씩 제 생각이 들어가게 됐고 작은 디테일들을 추가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만든 데아는 밝고, 명랑하고, 사랑을 많이 받는 소녀이길 바랐어요. 그래서 관객들로 하여금 데아가 이 공동체 안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죠.”
실제로 ‘데아’에게서 가장 중요한 건 ‘관계’였다. 데아의 성격은 극중 가족들, 마을 구성원들로부터 형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성 설정이 무엇보다 핵심이 돼야 했다. 유소리 역시 이 부분에 집중했다. 극중에서 그런 것처럼, 실제로도 동료 배우들이 유소리의 데아를 함께 만들어갔다.
“제가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라 먼저 다가가는 걸 어려워해요. 그런데 너무 감사하게도 언니·오빠들이 처음부터 살갑게 대해주셨어요. 사실 이번 ‘웃는 남자’에서 아역 배우를 제외하곤 제가 제일 막내더라고요. 흔히 말하는 막내의 모습이 전혀 없는 저에게 먼저 대화를 걸고, 장난을 걸어주신 거예요. 걱정이 많았는데 ‘막내 버프’가 있더라고요(웃음).”
외적인 부분에서도 신경 써야할 부분이 많았다. 눈이 보이지 않는 데아를 연기하기에 앞서 연출진은 유소리에게 ‘어둠속의 대화’라는 전시 관람을 제안했다. 해당 전시는 로드 마스터를 따라 시야가 차단된 어두운 공간에 연출된 숲, 바다, 시골, 카페 등을 촉각·청각 등의 다른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체험형 전시다.
“전시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사실 처음엔 ‘눈이 먼 데아’에 집중해 강박적으로 공부를 했던 면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전시를 보고, 공연을 거듭하면서 어느 순간 ‘앞이 보이지 않는 게 크게 중요한 요소일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작품 속에선 데아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본질’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그래서 ‘앞이 보이지 않는 데아’라는 설정보다 ‘더 잘 듣고, 잘 느끼는 데아’를 만들려고 했어요.”
배우들이 무대에서 교감을 하는 요소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눈’이다. 하지만 눈 먼 데아를 연기하는 유소리의 입장에선 그 중요한 요소를 가져갈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적잖이 어려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유소리는 이런 핸디캡을 영리하게 이겨냈다.
“저 역시 처음엔 너무 불편했어요. 무의식적으로 (상대 배우의)눈을 보게 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처음엔 초점 없이 연기를 했어요. 그런데 듣고,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제 시각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줄어드는 걸 경험했어요. 시각적인 것에 휘둘리지 않으니까 자연스럽게 제 몸도 더 잘 들리고, 느껴지도록 바뀌더라고요.”
작품에선 데아의 상대 캐릭터인 그윈플렌과의 호흡도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다. 유소리는 그윈플렌 역의 박강현·박은태·박효신과 감정신을 연기하면서 매번 다른 영향을 받고, 항상 새로운 느낌으로 연기했다고 말했다.
“넘버 하나만 들어도 세 분의 차이가 정말 크다는 게 느껴져요. 예를 들면, ‘나무 위의 천사’ 넘버에서 강현 오빠는 표현을 많이 해주는 그윈플렌이에요. 감정에 적극적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저도 강현 오빠와 비슷하게 극적인 장면을 만드는 느낌이에요. 은태 오빠와 연기할 때는 제가 보호를 받는 듯한 느낌이 강해요. 아무래도 아이가 있으셔서 그런지 부드럽고 자상한 그윈플렌이죠. 그래서 제가 더 기대게 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효신 오빠는 불안정한 모습을 통해 모성애를 자극하는 그윈플렌을 보여주는 것 같고요. 누구 하나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다 좋고 매번 새로워요(웃음).”
"한 계단 오른 기분...선항 영향력 끼치는 배우가 목표"
‘웃는 남자’는 코로나19 여파로 공연이 중단되는 이슈도 있었다. 예기치 못한 휴식은 유소리에겐 어쩌면 꼭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그의 이미지와 음색이 극중 데아와 잘 어울린다는 칭찬은 그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결국 공연 초반 그 부담의 무게에 짓눌려 공황장애까지 겪었던 유소리다.
“다행히 공황장애는 금방 사라졌어요. (김)소향 언니가 공황장애를 가졌다는 말에 저보다 더 마음 아파하셨고, (신)영숙 언니도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두 분 모두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하셨고 여러 방법들을 많이 알려주셨어요. 어쩌면 이 작품이 저에게 트라우마, 후유증으로 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덕분에 무대에서 편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코로나19로 공연이 중단됐을 때 대상포진이 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었는데 그 휴식이 저에겐 정말 필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선배들의 말을 곱씹어볼 수 있는, 그리고 제 자신을 다시 정비할 수 있는 시간이 됐어요.”
그가 극중 가장 어려운 장면으로 꼽는 건 그윈플렌이 마을을 떠난 것을 알게 된 데아가 오열하는 씬이었다. 그윈플렌에게 마음을 고백한 이후, 갑자기 맞닥뜨린 이별의 사실을 알게 되면서 데아의 감정이 순식간에 전환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유소리는 이 장면 역시 휴식을 통한 ‘내려놓음’으로 몰입이 가능했다고 말한다.
“처음엔 너무 생각이 많았어요. 약 3시간에 걸친 공연 동안 무엇 하나 놓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 보니 오히려 역효과가 나더라고요. 일주일 정도 쉬는 기간 동안 저를 비워내고, 다시 무대에 올랐는데 부담을 내려놓고 나니까 그 어려웠던 감정신이 쉽게 풀리더라고요. 확실히 제가 하고자 하는 부분이 전달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두 달여의 공연 기간 동안 많은 감정들이 소용돌이 쳤던 만큼, 유소리에게 이 작품은 잊기 힘든 주연 데뷔작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스스로 부담을 내려놓는 방법을 찾고, 극중 인물에 몰입하는 과정을 겪어내면서 그에게도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분명히 한 단계를 오른 듯한 느낌이 있어요. ‘웃는 남자’를 통한 배움은 제 인생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경험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배우로서의 성장뿐만 아니라 저라는 사람을 바꿔준 작품이기도 해요. 팀 안에서 큰 사랑을 많으면서 제 안에 여유가 생기고, 주변에 관심을 갖는 사람으로 만들어줬어요. 저의 어두운 면들을 바꾸고 싶었는데 ‘웃는 남자’를 통해 조금은 꽃이 핀 느낌이랄까요?(웃음)”
“‘웃는 남자’를 통해 배움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는 유소리는 자신이 경험한 과정을 통해 얻은 결실로 또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안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의 변화에 대한 놀라움에서 그치지 않고, 그 행복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다.
“저에겐 변하지 않는 가장 큰 목표가 있어요. 정말 유명하고 큰 사람이 돼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무대 위에서는 물론, 무대 아래에서도 꾸준히 봉사를 하고 소외된 계층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싶어요. 사실 지금도 해외 봉사나 재능기부는 계속 하고 있지만 사회적 목소리를 내면 ‘선한’에서 그치고 ‘영향력’이 없더라고요. 하하. 배우로서 더 노력해서 이젠 ‘영향력’도 가질 수 있도록 할 거예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