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시장 '칩4 동맹' 변수...韓 새우등 터질라
입력 2022.07.25 10:51
수정 2022.07.25 13:21
경기 침체로 하반기 전망 악화에 미·중 경쟁 눈치까지
미국엔 기술, 중국엔 시장 있는데...난감한 상황
정계·업계 "그럼에도 칩4 동맹 참여해야" 기조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동맹 '칩4' 참여 여부를 놓고 정부 차원의 고심이 깊어지는 가운데 국내 반도체 업계 주요 기업들도 난감한 모습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반도체 산업의 하반기 전망이 악화된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중 패권 경쟁 사이에도 끼게 됐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한국에 내달 말까지 '칩(chip)4' 참여 여부를 결정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지난 3월 반도체 공급망 형성을 위해 자국과 한국, 일본, 대만이 참여하는 '칩4'를 처음 제안했다. 반도체 산업에서 중국에 대한 수위 견제를 높이기 위한 일환이다.
미국은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설계 기술을 가졌고 일본은 소재·장비에 특화됐다. 여기에 한국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의 제조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대만 역시 TSMC와 같은 반도체 위탁 생산 회사를 가지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4개국의 기술, 생산, 공급 등을 한데 모아 글로벌 반도체 공동체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중국'이라는 반도체 산업의 거대한 시장의 반발이다. 칩4 동맹이 불거진 지난 주부터 중국은 관영 매체를 통해 한국 정부와 기업들을 향해 연일 압박을 가하고 있다. 지난 21일에는 사설에서 "중국은 한국 반도체 산업 최대 시장", "이렇게 큰 시장과 단절하는 것은 상업적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등의 사실상 '칩4 불참 종용' 메세지를 내놨다.
기업 입장에서는 '미국 vs 중국' 이라는 선택지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가 어려운 입장이다. 미국엔 기술이 있고, 중국엔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기술을 포기하면 산업 경쟁력을 잃게 되고 시장을 잃으면 경쟁력 있는 기술이 자칫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중국은 한국의 전체 반도체 수출액 가운데 약 39%(홍콩 포함 시 60%)의 비중을 차지하는 시장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시안과 우시에 각각 반도체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대중 의존도가 높은 산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을 배제한 이번 공급망 동맹 참여는 국내 반도체 산업 생태계에도 큰 충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최근 낸드 플래시 가격 하락도 예상되는 시점에서 칩4 참여 압박까지 겹치면서, 국내 주요 기업들의 하반기 실적이 악화될 가능성도 높다. 최근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3분기 낸드플래시 가격의 하락폭이 기존 예상(3~8%)보다 더 떨어진 8~13%에 이를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같은 가격 하락세는 4분기까지 이어진다는 관측도 뒤를 잇고 있다.
이처럼 '잃을 것이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미국의 칩4 참여 요구를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국이 반도체 제조 및 장비 원천 기술을 보유한 국가이기에 장기적 관점에서 미국과의 협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최근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2000억 달러를 들여 9개 공장을 새로 짓는다는 투자계획이 미국 현지 언론 등을 통해 공개됐다. 삼성전자 측은 "구상일 뿐 구체적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앞서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투자를 늘린 삼성에 감사한다"고 직접적으로 삼성전자를 호명했다. 미국 측이 자국과의 장기적인 관계를 강조하며, 칩4 결정 압박을 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는 대목이다.
정부는 국익에 우선해 결정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여당을 중심으로 한 정계에서는 "칩4 동맹에 가입하되 우리가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향자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속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70%에 달해 미국·중국이 무시할 수 없는 수치"라고 강조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 역시 이같은 수치를 언급하며 "한국이 생산한 반도체가 없으면 중국도 전자제품 생산에 큰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며 "무조건적인 보복 조치를 취하기는 중국 측에도 어려움이 있다. 다만 반도체가 아닌 다른 산업군에서 큰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정부가 우리 입장을 잘 이해시키는 쪽으로 노력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