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ASML CEO와 '깐부' 맺고 EUV 추가 확보
입력 2022.06.15 20:00
수정 2022.06.15 18:24
네덜란드서 ASML 경영진과 미팅…EUV 장비 공급 확대 등 협의
유럽 최대 종합반도체 연구소 벨기에 아이멕 방문…사업 협력 논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차세대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추가 확보에 성공하면서 유럽 출장의 최우선 목표를 달성했다.
15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1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ASML 본사를 방문해 피터 베닝크 CEO, 마틴 반 덴 브링크 CTO 등 경영진을 만나 양사 간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 부회장과 ASML 경영진은 ▲미래 반도체 기술 트렌드 ▲반도체 시장 전망 ▲차세대 반도체 생산을 위한 미세공정 구현에 필수적인 EUV 노광장비의 원활한 수급 방안 ▲양사 중장기 사업 방향 등에 대해 폭넓게 협의했다. 이번 미팅에는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이 배석했다.
삼성전자는 ASML과의 기술 협력 강화를 통해 EUV를 비롯한 차세대 반도체 생산 기술을 고도화시켜 파운드리 분야의 경쟁력을 키우고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초격차’도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회사측은 이번 회동을 통한 구체적인 EUV 노광장비 추가 확보 내역에 대해 밝히지 않았으나 이 부회장과 베닝크 CEO간 장비 공급 확대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20년 10월 이 부회장의 ASML 본사 방문 등을 통해 친분을 쌓았던 베닝크 CEO는 이번 방문에서도 이 부회장에게 EUV 장비 생산라인을 직접 안내하며 이동 중 귓속말로 농담을 주고받는 등 친근하게 맞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생산라인에서 방진복 차림으로 어깨동무를 하는 모습도 연출했다.
이 부회장은 초미세공정에서의 ‘반도체 초격차’를 위한 EUV 장비 추가 확보라는 막중한 임무를 안고 ASML 본사를 방문했다.
EUV 노광 기술은 극자외선으로 반도체에 회로를 새기는 기술로, 이를 활용한 EUV 장비는 최첨단 고성능‧고용량‧저전력 반도체 생산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 요소다.
이재용 부회장이 공언한 대로 2030년 글로벌 시스템반도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초미세공정에서 파운드리 분야 1위인 대만 TSMC를 넘어야 하고, 그러려면 안정적인 EUV 장비 수급이 뒷받침돼야 한다.
하지만 현재 EUV 장비 생산은 ASML이 독점하고 있고, 연간 생산대수도 한정돼 있다. ASML에게 최대 고객사였던 TSMC를 뚫고 삼성전자가 더 많은 물량을 확보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걸 이 부회장이 해낸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EUV 장비 확보에 직접 나서면서 삼성전자가 ASML 장비 확보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방문을 통해 이 부회장은 ASML로부터의 장비를 확보해 해결사로서의 면모를 보였을 뿐 아니라 삼성과 ASML의 파트너십을 공고히 함으로써 글로벌 네트워크의 진가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부회장과 ASML 경영진은 한국과 네덜란드에서 수시로 만나 기술 로드맵과 중장기 사업 계획 등을 공유하며 전략적 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 부회장은 2020년 10월 ASML 본사를 찾아 미래 반도체 기술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으며, EUV 반도체 생산장비 제조현장을 직접 찾아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에 사용될 신형 장비를 살펴봤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미세화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00년대부터 반도체 제조 공정, 장비 개발 분야에서 ASML과 협력해 왔으며, 2012년에는 ASML 지분 투자를 통해 파트너십을 강화하기도 했다.
2016년 11월에는 베닝크 CEO 등 ASML 경영진이 삼성전자를 방문해 차세대 EUV 기술 개발 현황을 설명하고 중장기 투자 계획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화성·평택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EUV 기술을 적용해 파운드리 고객사 제품과 고성능 D램을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반도체 장비 업계의 ‘절대강자’인 ASML과의 파트너십은 반도체 제조사들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이 부회장의 지속적인 관심과 정성이 있었기에 양사가 전략적인 협력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재용 부회장은 15일(현지시간)에는 벨기에 루벤(Leuven)에 위치한 유럽 최대 규모의 종합반도체 연구소 아이멕(imec)을 방문했다.
이 부회장은 루크 반 덴 호브(Luc Van den hove) 아이멕 CEO와 만나 반도체 분야 최신 기술과 연구개발 방향 등을 논의하는 한편, 최첨단 반도체 공정기술, 인공지능, 생명과학, 미래 에너지 등 아이멕에서 진행 중인 첨단분야 연구 과제에 대한 소개를 받고 연구개발 현장을 살펴봤다.
이 부회장의 이번 아이멕 방문은 미래 전략사업 분야에서의 신기술 개발 및 시장 선도를 모색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삼성은 지난 5월 ‘삼성의 미래 준비’ 계획을 발표하고, 반도체 분야를 비롯해 바이오, 신성장 IT(AI 및 차세대 통신) 등 미래 신사업을 중심으로 향후 5년간 450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아이멕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인공지능 ▲생명과학‧바이오 ▲미래 에너지까지 다양한 분야의 선행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삼성의 미래 전략 사업분야와 궤를 같이 한다.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ASML과 아이멕을 연이어 찾은 것은 삼성이 차세대 기술 개발을 가속화하고 미래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겠다는 또 하나의 신호탄으로 해석하고 있다.
삼성은 ‘메모리 성공 DNA’를 팹리스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 분야에 이식해 진정한 ‘반도체 초격차’를 달성하고자 지난 2019년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의 ‘반도체 비전 2030’에는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기 위해 더 큰 시장과 성장 가능성을 갖고 있는 팹리스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이 필요하다는 이재용 부회장의 위기감과 고민이 담긴 결단이 담겨 있었고, 이 부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그 비전을 현실화시키는 데 중요한 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