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K TO : ] “내 직업을 끊임없이 알리는 이유는” ··· 20대 카지노 딜러의 시선
입력 2022.06.09 17:58
수정 2022.06.09 17:58
<포스트 코로나 후 ’금빛 활황’ 카지노, 그러나 대중들에겐 ‘퇴폐산업’>
“I go all in.(모두 다 걸게)”
이병헌(김인하 역)이 제 앞에 놓인 칩들을 두 손으로 모두 민다. 상대방도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All in!’을 외친다. 상대방이 펼친 카드는 Q(큐) 풀하우스. 병헌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스친다. 그 역시 자신의 카드를 천천히 펼친다. A(에이) 풀하우스. 짜릿한 일확의 순간이다.
전국 카지노는 현재 13개 법인이 17개 영업장을 운영하고 있다. 카지노는 관광 산업 중에서도 손꼽히는 ‘금빛 산업’이다. 세계 각국에서 카지노 산업은 외래 관광객 유치와 외화벌이 창구로서 기여하는 바가 크다. 국내 카지노 산업은 내국인을 입장하게 하여 영업할 수 없도록 했지만, 폐광지역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근거로 내·외국인 출입이 가능한 카지노는 강원랜드가 유일하다. 지난 2년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외국인 고객 비율이 줄어 관광사업이 큰 타격을 입었음에도 카지노는 빠르게 부활을 준비 중이다. 2017년에 이어 2018년, 2021년까지 전국 각지에서 신규 업장 오픈하면서 거리두기 해제로 인한 보복 소비로 활황을 이룰 거란 전망이다.
그러나 매년 터져 나오는 도박 중독 등 사회 문제로 그 명성이 마냥 빛나진 못했다. 최근 2년간 도박중독치료센터 문을 두드린 사람도 중복을 감안해도 570여 명이 넘었다. 당초 사회 경제 활성화란 건립 취지도 지역민 반대·인적 손실에 비추어 ‘빛 좋은 개살구’라는 지적이다.
<’직업은 그저 직업일 뿐’ ··· 도박장에 매일 출근 찍는 카지노 딜러란>
카지노 딜러는 카지노에서 테이블마다 바카라, 블랙잭, 포커 등의 게임 진행을 돕는 직원이다. 카지노 종사원 수는 지난달 기준 6680여 명이며, 그중 카지노 딜러는 강원랜드만 1217명으로 집계된다. 코로나19 기간 사실상 관광 산업이 축소됐던 시기에도 고연봉을 자랑하는 딜러직은 직업 선호도가 높았다. 지난해 말에도 강원랜드 카지노 딜러 입사 경쟁률이 33%를 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취업이 어려워진 20·30세대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카지노의 이미지 때문일까. 지난 17일 상수역 인근 스튜디오에서 만난 카지노 딜러 오민수(29) 씨는 “사람들이 우리 존재에 대해 잘 모른다. 멋지긴 한데 ‘불법적인’ 직업 같다고 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오 씨는 딜러 업계에 첫 발을 들일 때를 떠올렸다. 그는 “서울 소재 한 관광 공기업에서 근무하던 중 카지노 딜러를 하는 친구를 보고 흥미가 생겼다”며 “나 역시 현장에서 관광 업무를 경험하고 싶어 경로를 틀게 됐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이전 회사가 안정적이어서 부모님은 반대를 많이 하셨다”라면서도 “화려한 곳에서 근무한다고 되려 축하해준 친구들도 있었다”며 웃음을 보였다.
화려해 보이는 면면 뒤에도 고충은 존재한다. 딜러의 업무는 주로 3교대 체제다. 오 씨는 “특히 나이트 타임(22시~6시) 근무는 생체 리듬이 많이 떨어지고 불규칙한 식사로 위장 불량이 온 적도 있다. 여담이지만 시간이 불규칙해 일반적인 연애도 어려울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카지노 딜러라는 업무 특성상 이직의 한계도 존재한다. 오 씨는 “카지노 업계는 워낙 시장 범위가 협소하다.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려면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등 맨땅에 헤딩해야 하는 애로사항도 있다”고 덧붙였다.
카지노 딜러들은 주로 1시간 동안 20분씩 테이블을 3번 옮겨 다닌다. 테이블마다 오가는 돈 액수에 따라 딜러가 받는 팁도 다르다고 오 씨는 설명했다. 그는 “손님의 기분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따라서 손님이 많이 따지 못했을 때도 ‘축하드립니다’라고 독려하는 편”이라면서 “팁은 개인이 갖지 않는다. 공통으로 모아두는 통에 넣고 관련 부서끼리 공정하게 나눈다”고 설명했다.
<별 손님 다 모이는 카지노? N년차 딜러가 말하는 ‘카지노 썰’>
카지노 딜러들이 현장에서 만나는 외국인 손님은 다양하다. 오 씨는 국적마다 선호하는 게임이 다르다면서 “호탕한 성향의 중화권 손님들은 승패가 빨리 결정되는 바카라를, 계산적인 성향의 일본인 손님들은 승패의 결정권을 가질 수 있는 블랙잭을 택한다”며 “러시아 손님들은 본국에서 ‘화투’만큼 친숙한 룰렛을 선호한다”고 했다. 도박 관련 카페에도 유명 팝 가수는 물론 외국 국적 소유 연예인들의 ‘목격담’도 심심찮게 올라온다. 코로나19로 비행 길이 끊겼던 지난해에는 국내 거주 중인 조선족들이 테이블 자리를 채웠다고 그는 덧붙였다.
소위 ‘밑장빼기’는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치트 행위(cheat)다. 카드를 이용한 사기 기술 중 하나인데, ‘누군가를 속이려 하는 행동’을 두고 사용하는 은어이기도 하다. 오 씨는 이에 대해 칩이나 카드를 직접 만지기 때문에 엄격하게 통제된다면서 “딜러의 상하의에 주머니가 없는 이유다. 딜러들은 수시로 ‘핸드 클리어(Hand clear)’를 한다”고 답했다. ‘핸드 클리어’는 칩을 만지고 나면 테이블마다 부착된 카메라에 손을 뒤집어 보여 ‘돈을 가져가지 않았다’는 표시를 하는 것이다.
또 오 씨는 “영화에서 나오는 자극적인 장면들이 카지노에서도 있을까 생각하시는 데 실제론 없다. 손님들이 카드를 만질 수 있는 횟수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고 답했다.
<”딜러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려면…” 그가 말하는 사회적 변화>
카지노 딜러를 경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매해 동일했다. 경시는 곧 폭력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1월 국회 소통관에서 발표된 ‘제주 신화월드 고객 갑질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노동자 96.2%가 고객으로부터 욕설차〮별비〮하 등의 폭언을 들은 경험이 있다고 했다. 2019년 GKL(그랜드코리아레저) 국정감사 당시에도 딜러 얼굴에 침을 뱉고 욕설하는 등 감정 노동 실태가 밝혀진 바 있다.
오 씨는 “카지노에선 쉽게 돈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흥분하는 분들이 많다”면서 “손님들 간의 폭언 등을 계속 보고 들으면서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딜러도 서비스직이라서 위로를 해주거나 싸움 중재하는 등 유연하게 대처하려 노력한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카지노 딜러는 굉장히 소수가 종사하는 직업이기도 하고, 또 많은 카지노가 내국인이 출입을 못해 가족도 내가 무슨 업무를 하는지 잘 모른다”고 토로했다.
또 “언론이나 유튜브 등 매체에서 카지노 딜러라는 직업을 많이 다루게 되면 딜러를 향한 사회적 시선도 바뀔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라면서 “직업 인식 개선은 사회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나란 개인이 현재 할 수 있는 건 지금처럼 계속 주변에 딜러라는 직업을 소개하고 알리는 일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