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5년 단임제였으니 망정이지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2.05.23 08:00
수정 2022.05.23 14:47

권력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

퇴임 후에도 홍보욕구는 여전한가

10분 통화에 전 안보실장까지 배석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작년 1월 20일(현지시각) 조 바이든 새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하는 대신 에어포스원을 타고 플로리다의 자기소유 마러라고로 리조트로 가버렸다. 트럼프 말고도 후임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거부한 대통령은 또 있었다. 제17대 대통령 앤드루 존슨이 그 사람이다. 신임 대통령 율리시즈 그랜트와 공화당에 대한 감정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하원에서 탄핵소추를 당한 경험도 공유했다. 트럼프는 재임 중 두 번이나 하원의 탄핵소추를 겪었지만 상원의 탄핵 결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존슨의 경우 상원에서 단 한 표 차로 탄핵을 모면했다.

권력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

퇴임 이후의 정치 욕심에서도 이들은 닮은꼴이다. 트럼프는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셀프 퇴임식을 갖고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돌아올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2024년 대선에 재도전하겠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암살 당함에 따라 그 직을 물려받은 존슨은 1896년 대선에서 어느 당으로부터도 공천을 받지 못해 재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두 번의 실패 끝에 1875년 1월 테네시주의 연방 상원의원이 되는 데 성공했다. 다만 그의 의정생활은 5개월에 그쳤다. 그해 7월 31일 갑자기 사망했기 때문이다.


재임 중 탄핵소추를 당한 미국 대통령은 이들 뿐이 아니다. 빌 클린턴도 상원의 부결로 기사회생했다. 퇴임 후에 상원의원이 아니라 대통령 선거에 도전한 사람도 있었다. 제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3선에 도전했다. 자신의 후임 윌리엄 태프트에 실망해서 1912년 3선에 도전했지만 공화당의 지명을 못 받았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진보당을 만들어 그 후보로 나섰다. 대선 결과는 민주당 후보 우드로 윌슨의 승리였다. 놀라운 것은 루스벨트가 현직 대통령이던 태프트를 누르고 2위를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율리시스 S. 그랜트 18대 대통령도 세 번째 출마를 희망했지만 공화당 지도부의 충고로 단념해야 했다. 그는 장군으로서는 성공했으나 대통령으로서는 엄청난 실패를 거듭했다. ‘훌륭한 절도(竊盜)의 시대(Ear Of Good Stealings)’라는 것이 그의 재임기에 대한 평가다(윌리암 J. 라이딩스 外, 위대한 대통령 끔찍한 대통령, 김형곤 역).


문재인 전 대통령 시절을 돌아보면 특히 다행으로 여겨지는 헌법 규정이 있다. 제70조와 제128조②항이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


문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은 대표적 포퓰리스트였다. 노 전 대통령이 리더십이 진로 개척형이었다고 한다면 문 전 대통령의 그것은 ‘팬덤 추수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노 전 대통령은 야당에 대해 대연정을 제안할 정도의 문제해결 의지와 배포를 가졌었다. 반면 문 전 대통령은 극렬지지자들과 더불어민주당의 기세에 눌려 무리와 탈법으로 얼룩진 검수완박 입법 과정을 방관했다(한 가지씩 예를 들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퇴임 후에도 홍보욕구는 여전한가

만약 그가 4년 중임제 하의 대통령이었다면 아마 대한민국은 다시 장기집권 악순환의 초입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의 권력의지보다는 극렬 팬덤이 상황을 그쪽으로 몰아갈 개연성이 높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것 다해”라는 구호로 뭉친 지지세력 아닌가. 문 전 대통령은 당초 권력의지가 약한 정치인으로 평가받았지만 일단 집권에 성공하자 급속히 권력의 매력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였다. ‘적폐청산’의 칼을 들고 전 정권, 전전 정권을 단죄하는 그 쾌감이, 대단했을 법하다.


8년쯤 집권하게 되면 권력의 관성이 그를 쉽게 놔줄 리 없다. 그 점에서 5년 단임제는 제동장치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했다고 할 만하다. 괜히 의심하는 게 아니다. 과거엔 어땠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고난 이후의 그는 독선·독단적 국정운영 행태로 일관했다. 지지세력, 측근 참모들, 그리고 집권당의 무조건 적 찬사와 추종에다 너무 높은 여론조사 지지율에 고무되어 자제력을 내려놔 버렸을 것이다.


임기 말의 그는 ‘잊힌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거듭했다.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잊히고 싶다는 것은 감정의 유희가 아니면 책임의식의 방기(放棄)다. 문 전 대통령은 퇴임을 실감할 수 없다는 말을 그렇게 표현한 게 아닌가 여겨진다. 하긴 법적 책임을 져야 할 일이 많아서 퇴임 즉시 대중 속에 숨어버리고 싶어 할 수도 있지만 그렇기야 하겠는가. 그런 게 아니라면 잊힌다는 사실에 대한 서운함, 불안감에 쫓겨서 하는 반어적 표현일 가능성이 높다.


정말 망각되고 싶었다면 생뚱맞게 퇴근 퍼포먼스를 하고 군중들 앞에서 퇴임연설을 할 생각 따위는 안했을 것이다. 새 대통령 취임 당일에 서울역, 울산역, 평산마을에서의 환송·환영 행사도 애써 피할 일이었다. 그런데 그는 아주 요란스런 퇴임 행사를 즐기는 듯했다.


그의 새 대통령 취임식 김 빼기는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날 것이라고 퇴임 전부터 광고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같은 사람은 바이든이 문 전 대통령에게 대북특사 역할을 부탁하기 위해 만나려는 것이라고 단정하길 서슴지 않았다.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아주 특별하고 이례적인 일”이라며 “새 정권의 이른바 ‘정치보복’에 대한 하나의 (안전)장치라는 해석도 있다”는 황당한 해석을 내놓기까지 했다. 잊히고 싶다는 사람의 주변이 이렇다.

10분 통화에 전 안보실장까지 배석

그런데 미국 측이, 방한 바로 전날 이 모두를 부인했다. 문 전 대통령 측으로서는 아주 머쓱해진 셈인데 다행히 통화는 이뤄졌다. 문 전 대통령 측은 홍보 욕구를 주체하지 못했다. 21일 저녁 10분간 통화했다는데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민주당 윤건영 의원이 사진까지 곁들여 언론에 뿌린 것으로 보인다.


통화 내용도 장황하게 소개했던데 통역까지 네 사람이 10분 동안에 할 수 있는 대화라는 게 인사와 덕담 말고 뭐 있겠는가. 그 통화를 하는데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최종건 전 외교부 1차관이 배석했다는 것도 준비과잉이거나 허장성세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질 바이든 여사와 손자에게 보낼 선물에다 직접 쓴 편지까지 전했다고도 한다.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두고 보나마나 앞으로 야권 인사들의 양산 출입이 뻔질나게 이어질 게 뻔하다. 그래서 집도 널찍하게 지은 것 같은데, 잊히고자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무래도 아니다. 집이야 본인이 부담해서 지었다고 하지만 경호시설에 국비 62억원 가량 들어갔다고 한다. 경호 인력 65명이 기본적으로 10년, 길게는 15년까지 문 전 대통령 부부를 지켜준다. 1급 비서관 1명, 2급 비서관 2명, 운전기사 1명이 역시 나랏돈 받으며 보필한다.


문 전 대통령 본인은 월 1400만원의 급여를 받는다. 인상률은 현직 대통령의 급여에 연동된다. 소득세도 없다. 받는 금액이 고스란히 순소득이다. 게다가 경호만 빼고, 법적 예우를 받는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유일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있지만 문 전 대통령 재임 시에 형이 확정된 상태다. 경호 이외의 어떤 혜택도 주어지지 않는다.


다시 ‘잊힌 사람’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조력자들에 둘러싸인 데다 날마다 뻔질나게 드나들 정치인·유명인들을 만나야 하는 사람에게 ‘잊힐 자유’가 허용될 리 없다. 그러므로 이제는 허언·식언의 습관도 털어내 버려야 한다. 그간에 미사여구 교언영색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홀린 것만으로도 충분할 테니까.


또 한 가지, 앞으로 양산의 평산마을이 국민 편 가르기·이념대결·포퓰리즘 정치의 본산으로 자리매김 되는 일은 제발 없기를 바란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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