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헬로스테이지] 억압된 현실, 록 사운드가 주는 카타르시스…뮤지컬 ‘리지’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2.05.15 14:36
수정 2022.05.15 11:37

6월1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189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대저택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보든 가(家)의 막내딸 리지가 자신의 부친과 계모를 도끼로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의심을 받지만, 리지의 언니 엠마와 친구 앨리스 러셀, 그리고 보든 가의 가정부 브리짓 설리번이 증인으로 나선다.


당시 ‘리지 보든 사건’은 미국 전역에 알려지며 사회를 충격에 빠트렸고 정황상 리지가 범인일 가능성이 컸지만 물적 증거가 발견되지 않으면서 풀려났다. 이 사건은 여전히 미국 역사상 가장 미스터리한 영구 미제 사건으로 기록돼있다.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리지’는 이 충격적인 ‘리지 보든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1990년 단 4곡짜리 실험극으로 시작한 뮤지컬은 20년 가까이 시간을 들여 2009년 미국 뉴욕에서 초연됐다.


추리 스릴러의 형태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작품에서 ’범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애초에 그리 중요하지 않다. 통상적으로 진범 찾기로 이야기를 꾸려가는 흔한 스릴러 작품과는 결이 다르다. 뮤지컬 ’리지‘는 이미 명확히 진범을 드러내면서 이 끔직한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그 배경과 구조에 집중한다.


특히 그간 엉화 ‘리지(2018)를 제외하곤 해당 사건을 모두 피상적으로 그려왔지만, 뮤지컬은 가부장적 제도 안에서 성적 학대 정황 등을 묘하사면서 권력의 은밀한 면을 부각시킨다. 우리 사회에서도 심각한 성 착취에 대한 지배·폭력을 연상케 하는 지점이다.


이 억압에서 벗어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건, 록 음악이다. 여성 4인만 등장하는 ‘리지’가 관객들과 교감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극장을 꽉 채우고도 남는 강렬한 록 넘버를 배우들의 가창력으로 시원하게 소화하면서 잠시나마 권력의 억압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해방구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때문에 가장 중요한 건 배우들의 가창력이다. “‘리지’의 배우들은 성량뿐 아니라 연기력, 무대 장악력, 카리스마까지 갖고 있다. 네 명이 폭발하는 사운드를 낼 때는 100명이 소리를 내는 것 같은 시너지가 난다”고 말했던 양주인 음악감독의 자신감은 무대에서 매번 증명되고 있다.


‘리지 보든’ 역엔 전성민·유리아·이소정, ‘엠마 보든’ 역은 김려원·여은, ‘앨리스 러셀’ 역은 제이민·김수연·연정, ‘브리짓 설리번’ 역은 이영미·최현선이 각각 맡아 극을 이끈다. 6인조 라이브 밴드의 파워풀한 연주도 힘을 보탠다. 특히 1막에서의 고전적인 옷을 벗고 2막에서 현대적 의상으로 갈아입으면서 시각적인 쾌감까지 선사한다.


‘리지’는 6월1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된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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