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욱의 야단법석(野壇法席)] ‘별의 순간, 윤석열’ 지나 ‘한동훈의 시간’
입력 2022.03.18 05:06
수정 2022.06.11 01:09
문재인 정부 ‘좌천의 아이콘’ 한동훈 검사장, 차기 서울중앙지검장 전망 놓고 설왕설래
윤석열 당선인 측근이 文정부 적폐수사? 엄정하게 해도 ‘보복 프레임’서 빠져 나오기 힘들어
공개적으로 한동훈 지지하는 尹, 강행할 듯…정치적 부담 고려해 수원지검장·남부지검장도 거론
당선인, 2019년 인사참화 교훈 삼아야…성공한 대통령 되려면 ‘윤석열 사단’ 철저한 관리 절실
어찌 보면 해괴한 일이다. 대통령 당선인이 나오자마자 당선인 측근의 인사를 놓고 이렇게까지 서초동이 들썩거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문재인 정부 ‘좌천의 아이콘’ 한동훈 검사장(사법연수원 부원장)이 차기 윤석열 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에 관한 설왕설래이다. 헌정 사상 첫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다음으로 주목받는 검사라고 하더니 허언(虛言)이 아니었다.
특수통 칼잡이 한동훈은 최근 2년을 제외하곤 꽃길만 걸었다. 스스로도 “저 같이 사회에서 혜택 받고 살아온 사람”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강남 8학군 출신의 서울 법대 졸업, 만 22세 소년등과, 입봉부터 서울중앙지검, 재벌 저격수,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적폐수사 선봉, 서울중앙지검 3차장,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딱 여기에서 멈췄으면 좋았을 것을, 2019년 ‘조국 일가 수사’에 손 댄 이후 나락의 길로 접어들어 4번의 좌천을 겪었다. “사냥개를 원했다면 나를 쓰지 말았어야 했다”고 강변했지만 외눈박이 정권의 노회한 여장관의 칼춤에는 역부족이었다.
한동훈 검사장의 서울중앙지검장 불가론(不可論)은 그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측근이라는 점에서 비롯됐다. 당장 더불어민주당의 주장을 보면, 법원조차도 두 사람의 관계를 ‘특별관계’라고 인정해줄 정도니 검찰의 중립, 독립을 훼손하고 검찰을 정치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조야에서는 이미 윤 당선인이 언론인터뷰를 통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적폐 수사를 공언한 상태에서 한 검사장이 아무리 증거에 따라 엄정하게 수사를 해 본들 과연 절반의 국민들이 그렇게 봐줄 것인가, ‘보복 프레임’에서 빠져 나오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말 제대로 파헤치고 수사하고 싶다면 오히려 한 검사장만큼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빠져주는 것이 윤석열 정권을 돕는 길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민주당 일각에서는 여소야대 정치지형 운운하며 적폐수사 자체가 힘들 것이라는 다분히 희망 섞인 전망도 내놓고 있지만, 서슬 퍼런 정권 초 정치적 부담은 있을지언정 좌표 찍은 우리의 검찰이 있는 것 없는 것 탈탈 털어 감옥 보냄에 있어 걸림돌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조금만 눈 밝고 귀 밝은 사람이면 익히 알고 있겠지만, 윤석열 당선인의 인사에 대한 소신은 유독 강하다. 누구의 말을 잘 안 듣는다.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었던 사람을 당선되자마자 비서실장으로 앉힌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사실 누구 말을 잘 들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다. 그런 윤 당선인이 “왜 한동훈 검사장을 무서워 하냐? 정권에 피해를 많이 입어서 중앙지검장 하면 안 되는 거냐? 거의 (외압에도 정권에 대한 수사를) 독립운동처럼 해온 사람”이라며 “한 검사장이 중앙지검장이 되면 안 된다는 얘기는 일제 독립운동가가 정부 중요 직책에 가면 일본이 싫어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논리랑 똑같은 것이다”고 공개적으로 쉴드(shield, 방패)를 쳐놓았기 때문에 뜻을 접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한동훈 검사장이 검사 인사를 주도하는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장돌뱅이 2년 한파를 어떻게 견디었는데, 매번 국회에 가서 두들겨 맞아야 하는 자리로 갈 성 싶지는 않다. 아울러 윤석열 당선인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준다는 차원에서 수원지검장이나 서울남부지검장 임명도 거론되고 있다. 전자는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 등 이재명 전 대선 후보와 관련된 각종 사건이 수원지검에 산적해 있다는 이유도 있다. 특히, 과거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에 올랐을 때 최측근인 ‘소윤’ 윤대진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의 서울중앙지검장 기용이 유력했지만 정치 공세를 우려해 수원지검장으로 보낸 전례가 있다. 후자는 남부지검이 서울의 재경지검 중에서는 서울중앙지검 다음으로 꼽히고 있고, 금융사건이 많아 기업수사를 잘하는 한 검사장에게 제격이라는 이유에서 회자되고 있다.
한동훈 검사장의 흔적을 더듬고 귀환을 예측하다 보면,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한 가지 흑역사에 도달한다. 2019년 인사참화(人事慘禍)이다. 마구잡이 압수수색과 별건 수사, 공공연한 피의사실 흘리기 등 가히 서초동 백정들의 난도질로 불렸던 적폐 수사의 포상으로 ‘윤석열 사단’은 검사장과 중간 간부 주요 보직들을 싹쓸이 했다. 4명의 수사 대상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50명이 넘는 검사가 사표를 썼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반말하기 좋고 입의 혀처럼 구는 중앙지검의 최측근들을 길 건너 대검으로 고스란히 데려갔고, 이는 결국 나라를 두 동강 내었던 ‘조국 사태’에도 상당수의 검사들이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았다. ‘대통령 윤석열’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라면 ‘윤석열 사단’은 일부러라도 한 5년 숨어 있어야겠지만 그 이후 추미애·박범계 장관 시절에 당했던 본전 생각이 나서라도 ‘자율 거세’는 힘들지 싶다. 결국 윤석열 당선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 수사지휘권 폐지나 독립 예산편성 등의 선물을 기어이 검찰 손에 쥐어줄 요량이면 비용을 제대로 치러야 할 것이다.
법조계에서 한동훈 검사장을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은 보았어도 그를 무시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만큼 검사로서 출중한 실력을 지녔고 성과와 성취도 눈부시다. “진영에 상관없이 강자의 불법에 더 엄정했고, 국민에 충성할 뿐 검찰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그의 사자후(獅子吼)도 믿고 싶다. 다만, 과잉수사와 먼지털이 수사의 본좌였다는 꼬리표만큼은 뗄 수 없다. 율사이고 법률가라면 해보다가 안 되면 접을 줄도 알아야 한다. 털고 또 털어 기어이 상대를 극단으로까지 몰아가는 것은 설사 자기 봉헌(自己奉獻)에 가까운 헌신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납득하기 힘들다. 혹여 확증 편향에서 기인한 완벽주의나 지나친 공명심의 소산(所産)이었다면 병든 열정일 수 있다. 완전한 인간은 이 세상의 지도로는 찾을 수 없다. 존재하지 않기에 지향으로만 머문다. 어떤 종교에서든 외도의 음해와 공격으로 정법이 흔들리거나 삿된 견해가 횡행할 때면 좌복을 털고 분연히 일어나 결연하게 맞서는 ‘눈 푸른 납자’들이 늘 있었다고 한다. 가장 동물에 가까운 직업군이라는 정치인들이나 이제는 기레기로 더 많이 읽히는 기자들, 그리고 이들을 욕하면서도 이들 외에는 친구가 없는 검사들까지 이 모두에게 향기로운 꽃 한 송이 피워줄 누군가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