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욱의 야단법석(野壇法席)] 오징어게임 대신 장만옥(張曼玉)
입력 2021.10.12 07:19
수정 2022.06.19 22:41
나라 안팎에서 온통 오징어게임 얘기가 진동하고 주변에서도 강력한 다시보기 권유와 유혹이 쇄도했지만 이번 한글날 연휴 필자가 애써 찾아 본 영화는 ‘열혈남아(熱血男兒)’와 ‘화양연화(花樣年華)’였다. 지난달 추석에 우연찮게 본 ‘첨밀밀(甜蜜蜜)’에서 첫 사랑의 성장통과도 같았던 장만옥과 실로 오랜 만에 조우했고 그 애틋한 잔상(殘像)이 몇날 며칠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천녀유혼(倩女幽魂)’에서 만난 왕조현에 대한 유별난 흠모로 다른 여배우에게는 쉽사리 곁을 내줄 수 없었던 필자에게 열혈남아의 장만옥은 당대 최고의 ‘책받침 여신’을 단숨에 몰아내고 새로운 점령군이 됐다. 놀랍게도 필자는 열혈남아를 우리나라에서 처음 상영할 때 영화관에서 직접 봤다. 32년 전인 1989년 10월의 어느 날, 그 시절 유행하던 스노우진 청바지를 한껏 차려입고 무스로 고정시킨 머리칼을 연신 쓰다듬으며 화양극장 안으로 껄렁거리며 들어갔던 한 고등학생이 필자였다. 당시만 해도 주윤발로 대표되는 홍콩 느와르물이 동네 3류 극장에까지 나물처럼 넘치고 시도 때도 없이 상영되던 시절이라 총싸움도 별로 없고 이름 없는 신예 감독(이 감독이 지금은 홍콩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거장, 왕가위이다)의 데뷔작이라는 혹평에 내 돈 주고 볼 일은 거의 없었는데, 근처 건국대 앞에서의 저녁 약속을 앞두고 시간이 남아 혼자 보러 간 기억이 생생하다.
다시 본 열혈남아의 매기(Maggie Cheung, 장만옥의 영어이름)는 더 이상 성룡의 들러리가 아니었다. ‘폴리스 스토리’에서 하루 종일 우스꽝스럽게 넘어지며 징징거리던 장만옥이 성룡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자 이미 외모부터 서사(敍事)가 넘쳤다. 막 젖살이 빠진 고전적인 얼굴에 특유의 도도함을 얹고 미스 홍콩 출신의 우월한 기럭지로 슬리퍼를 질질 끌던 이 25살의 청순녀에게 남심(男心)은 여지없이 저격당했다(이로부터 20여년 후 ‘건축학개론’에서 수지를 처음 봤을 때만큼 충격이었다). 데뷔 초의 장만옥은 토끼같이 놀란 한 가지 표정만으로 연기한다고 조롱과 야유에 시달렸지만 이 영화를 통해 여리여리한 섬세함과 폭발적인 임팩트를 모두 갖춘 연기파 배우로 거듭난다. 15년 후 ‘클린’으로 칸의 여왕이 된 장만옥에게 평론가들은 “이미 완성된 연기력을 스스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동양 최고의 배우”라는 극찬을 보내게 되는데, 그 시작을 아비정전(阿飛正傳)이 아닌 열혈남아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도 영화사에서 회자되고 수많은 중년들의 가슴에 멍들어 있는 ‘공중전화박스 키스씬’은 이제는 아득해져 그저 똑같은 색깔로만 떠오르는 우리들의 눈부신 젊은 날 그 자체였다.
새 천년의 시작을 화양연화와 함께 다가온 장만옥은 어느덧 불혹을 앞둔 농염한 여인이었다. 이미 10여년 전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의 영예를 안겨준 ‘완령옥’에서 선보인 치파오는 이 영화에서 장만옥만이 입을 수 있는 옷으로 한층 더 각인된다. 흔히 화양연화를 ‘순간을 영원히 봉인하는 눈빛장인’ 양조위의 영화로 치부하지만 숱한 감정선의 완급을 조율하며 절제된 내면 연기의 본령을 답습한 장만옥이 아니었으면 화양연화가 내뿜는 미장센은 온전히 구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별 의미도 없는 평가이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데 누가 먼저였는지 중요하지 않았던 첸 부인(장만옥 分)과 차우(양조위 分)의 희미한 뒷모습처럼, 그리고 끝내 그 마음을 도모하지 않고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으로 남긴 두 사람의 엇갈린 후일담처럼, 이 영화는 결국 사랑을 잃었지만 찬란한 비밀을 간직하게 된 세상의 모든 연인(戀人)들을 위한 무심한 헌사(獻詞)일 뿐이다. 그 날의 망설임과 서성거림을 기억하는가. 그것으로 넉넉하고 충분하다.
20살에 데뷔해 20년 넘게 영화를 찍은 후 20년 가까이 영화를 찍지 않고 있는 장만옥은 어느덧 환갑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필자가 둘러멘 세월의 무게도 만만치 않아 이젠 손만 뻗으면 반백살이다. 소문난 골초답게 담배 관련 질환으로 병원을 들락거리는 모습이 파파라치들에게 찍히거나 가수의 길을 가겠다며 난데없이 록 페스티발에 참여해 ‘신이 버린 목소리’라는 비난을 받는 등 요 몇 년 그녀에 대한 소식은 반가운 것이 없다. 유난스러운 남성편력으로 영화에서 만난 거의 모든 상대 배우들과 염문을 뿌리고 결혼과 이혼 소식을 번갈아 던져주며 아직까지도 스캔들이 끊이지 않지만, 이 모두가 시들어 추해져서 그런 것은 아니다. 익을 대로 익어서 다시 새로워지려는 것일 뿐이다. 오색 빛깔 속 헝클어진 사자머리와 짙은 화장, 과장된 몸짓까지 장만옥의 최근 근황을 그저 세월의 흔적을 없애려는 몸부림으로 힐난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그녀를 저 지경으로 만든 시간의 강(江)을 함께 건너온 망측한 흉물이 내 방 거울 속에 보란 듯이 버티고 있음을. 하여, 저 무모하고 경우 없는 원망도 결국 그녀를 향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설사 그녀에게 젊음을 운위할 열정과 외모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더라도 사위어 가는 몰락의 황혼이 함부로 그녀를 엄습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녀는 장만옥이니깐.
장만옥의 얼굴에 내린 주름처럼 삶에 있어 올 것은 반드시 온다. 언젠가는 우리의 날도 다하고 우리의 존재는 완전한 무(無)로 홀로 소멸될 것이다. 지나간 것은 무조건 아름답다는 치기는 호사가들의 근거 없는 치장일 뿐 지나온 인생길에서는 돌아가고 싶지 않는 날들이 대부분이다. 우리의 삶에서 진정으로 행복했던 순간들은 손에 꼽기 때문이다. 항상 영광은 짧았고 화려한 날은 빨리 갔다. 남들 상 받을 때 옆에서 박수나 쳐주다 남들 걸어갈 때 뛰어가 겨우 보폭 맞추며 살던 겉절이 인생들에게 두 번의 날개는 없었다. 그래서 화천대유(火天大有) 천화동인(天火同人)의 잡놈들처럼 늘 마음 한 구석에서는 거대한 탐욕의 아사리판을 꿈꿨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남아 있는 날들 중에는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다. 지난 후에야 느낄 수 있다는 화양연화처럼 봄만을 바라보며 견뎌냈던 겨울 같은 시절은 지나보니 언제나 봄이었다. 너무 멀어졌던 꿈들도 어느새 내 안에서 다시 꿈틀거리며 비상(飛上)을 갈망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게 인생은 한 번은, 한 번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여름 같았던 가을은 가고 진짜 가을이 온다고 한다. 곧 지독하게 여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