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사라지지 않는 과거, 인종차별
입력 2022.03.03 14:01
수정 2022.03.03 13:13
영화 ‘안테벨룸’
3월 21일은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이다. 1966년 UN은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이 날을 정했고 덕분에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인종차별주의적 법과 관습이 폐지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는 많은 인종차별의 관행들이 남아있다. 세계영화의 산실인 할리우드도 예외가 아니다. 그동안 미국 영화계에서 유색인종들은 영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인종차별에 대해 경종을 울려 왔다. ‘노예 12년’, ‘히든피겨스’, ‘그린 북’ 등 인종차별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 계속 만들어지는 것은 이에 대한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도 인종차별에 대한 목소리를 높인 또 한 편의 영화 ‘안테벨룸’이 개봉했다.
미국 남부의 목화농장에서 노예로 일하는 이든(자넬 모네 분)은 동료들과 탈출을 시도하다가 실패해 인두로 허리에 낙인을 찍히는 벌을 받는다. 얼마 후, 새로운 들어온 흑인 노예들이 탈출을 종용하지만 이든은 때를 기다린다. 침대에서 잠든 이든은 성공한 작가 겸 박사이자, 흑인 인권 운동을 이끄는 베로니카로 깨어난다. 그녀는 자신이 책 홍보를 위해 출장을 떠나 강연을 마치고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납치를 당해 노예농장으로 끌려오게 된 것을 깨닫게 된다.
영화는 끝나지 않은 인종차별의 메시지를 담았다. 미국의 남북전쟁 시기 목화밭에서 노예로 일하고 있는 흑인들은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린다. 행여 도망이라도 치면 잔인하게 고문을 받거나 죽임을 당한다. 심지어 흑인 여성의 성은 백인에 의해 착취당하고 흑인 남성의 인권은 백인들의 가학행위로 유린당했다. 영화의 도입부, ‘과거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을 뿐더러 지나가지도 않았다’라는 윌리엄 포크너의 문구를 인용한 것은 아직도 인종차별이 심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해결되지 않고 과거부터 존재해왔던 인종차별, 영화 ‘안테벨룸’은 흑인 인종차별과 여성차별의 목소리를 드높인다.
백인우월주의 문제도 지적한다. 영화의 전반부가 흑인 노예의 처참한 삶을 그렸다면 후반부는 베로니카가 왜 과거로 돌아갔는지를 다룬다. 지금도 여전히 백인이 우월하다고 믿는 사람들 눈에 흑인 인권 운동가 베로니카는 눈엣 가시였다. 상원의원과 동료들은 흑인들을 이용해서 노예시대를 다시 재현하고자 했다. 목화농장은 남북전쟁을 재현해 낸 공원의 일부였다. 베로니카와 같은 흑인들을 납치해 노예시대를 재현한 공원에 몰아넣은 것이다. 영화는 백인이 흑인보다 우월하다는 가치를 고수하고 있는 백인들에게 비판을 가한다.
공포와 스릴러 장르로 효과를 극대화했다. 영화 ‘안테벨룸’의 제작진은 '겟 아웃'과 '어스'의 제작자 레이먼드 맨스필드와 숀 매키트릭으로 이번 작품에서 다시 한 번 의기투합했다. 영화의 줄거리나 메시지는 현재까지 인종차별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으로 단순하지만 그 전달방법은 간단치 않다. 과거와 현재의 공간적 크로스오버를 통해 스토리를 전개하며 강렬한 비주얼은 물론 상징과 은유를 통해 상당히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최근 한국영화와 드라마가 미국 할리우드에서 선전하고 있다. 영화 ‘기생충’을 시작으로 며칠 전에는 ‘오징어게임’이 미국배우조합에서 주는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그러나 인터뷰 과정에서 한국과 동양인을 비하하는 질문이 나와 논란이 된바 있다. 여전히 미국 내에서는 흑인을 비롯해 유색인종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남아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 ‘안테벨룸’은 미국 노예농장을 통해 세계적으로 다시 급증하고 있는 인종차별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우리 또한 이러한 차별과 혐오에서 자유로운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양경미 /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