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도 여론조사로 하자고 할 건가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2.02.14 08:00
수정 2022.02.21 06:59

안철수의 최후통첩식 단일화 제안

대선출마 포기했다던 사람의 집착

그간에 얻은 점수는 다 버리라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13일 후보 등록을 한 직후에 야권 후보 단일화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차기 정부의 혁신 과제를 국민 앞에 공동으로 발표하고 이행할 것을 약속한 후 여론조사 국민경선을 통해 단일화를 하고, 누가 되든 러닝메이트가 되면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야권이 단일후보를 낸다면 당선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


그런데 ‘여론조사’에서 걸린다. 이제까지 각자가 노력한 것은 다 무로 돌리고 여론조사를 통해 야권의 주자를 결정하자는 것이다.

안철수의 최후통첩식 단일화 제안

“저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모든 조건을 수용하기로 결단함으로써 정권교체 기반을 만든 사람이다. 그 결과 제가 아닌 국민의힘 후보가 시민의 선택을 받았고 야당이 정말 오랜만에 승리할 수 있었다. 그때 합의한 문항과 방식이 있다. 따라서 단일화 경선 방식을 두고 다시 원점에서 논의할 이유는 없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오세훈 시장의 승리를 자신의 공으로 포장한 것은 좀 과했다. 그는 국민의힘에 입당해서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 달라는 오 시장의 제안을 끝까지 거부했다. 기어이 국민의당 후보로 나섰다가 투표 18일을 앞둔 시점에 단일화 룰에 합의했다. ‘모든 조건을 수용하기로 결단’했다는 것도 사실과는 좀 다르지만 그걸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그 때는 이랬다.


1. 보궐선거에 승리해봤자 임기는 1년 3개월도 채 안될 터였다.


2. 그렇기는 하지만 서울시장 선거 당선 가능성은 높아 보였다.


3.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와 단일화 경쟁에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할 만한 상황이었다.


4. 대선 승리의 불확실성은 오히려 높아졌다. 일단 가시권에 든 서울시장직을 확보하고, 그걸 발판으로 차차기 대선에 나선다면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의 효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여겨질 법한 분위기였다. (서울시장이 되면 국민의당은 국민의힘과 합당하게 될 것이었다. 차차기 대선에서는 단일화의 공로까지 인정받아 가장 유력한 야권후보가 될 것이라는 계산을 함직 했다.)


5. 서울시장 보선에 출마하면서 대선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이미 ‘당선되면 시장, 낙선하면 대선 출마’로 진로를 설정했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 추론이다.


그는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국민의힘 오 후보에게 패배했다. 약속했던 합당도 협상을 끌다가 판을 엎었다. 그리고 다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 자신으로서는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여길 것이다. ‘정치인이 식언을 하는 게 무슨 문제냐’는 배짱은 진작 체득했을 테니까.

대선출마 포기했다던 사람의 집착

이번에 그가 빚 받아 내겠다는 기세로 단일화 조건을 제시하고 나선 것은 아주 억지스럽다.


1. 정권교체를 위해 단일화를 결심했다고 하지만 그가 약속대로 대선을 포기했다면 단일화 자체가 필요했을 리 없다. 그는 야권 단일화가 불가피한 쪽으로 상황을 몰아간 후 막판 승부에서 야권 단일후보 자리를 꿰차겠다고 계산했을 개연성이 높다.


2. 후보 지지도 여론조사 결과로는 윤 후보에 어림없이 못 미친다. 그렇지만 윤 후보 측이 단일화를 외면하기는 어렵다. 안 후보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반드시 높을 필요도 없다. 여야의 승부는 1~2% 차로도 갈릴 수가 있다.


3. 정말 정권교체를 위해 단일화가 필수적 대안이라고 인식했다면 우선 합당을 하거나 국민의힘에 입당한 다음 후보 경선에 나섰어야 했다. 그런데 그의 생각은 달랐다. 국민의당의 당연직 후보(?)로서 기다리기만 하면 ‘야권 단일화’ 제의든 읍소든 올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4. 상황이 도와주느라고 여당 후보와의 경쟁력에서는 자신이 윤 후보에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여러 번 나왔다. 야권 단일후보 지지율에서도 윤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로 단일후보를 결정하자고 큰소리치며 나설 이유와 명분이 갖춰진 셈이다.


국민의힘 측에선 난색을 표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지지율 끌어올리기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제 그 과정 다 무시하고 두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로 야권 단일 후보 결정하자고 하느냐는 반감이 생길만하다.


안 후보는 국민의힘이 거부감을 드러내자 “더 이상 제가 할 말은 없다”고 했다. 연합뉴스가 전하기로 그는 “여기서 이게 안 되면 어떻게 되고 이런 시나리오는 전혀 없고, 이제 국민의힘이 답할 차례”라고 잘랐다. 윤 후보가 “고민해보겠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고 언급한 데 대해 안 후보는 “이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제안이다. 확실한 것은 저는 이제 더 이상 할 말은 없다”라고 받았다. 후보 단일화 제안을 최후통첩식으로 한 것이다.


정권교체를 위해 야권후보 단일화를 하자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결례다.


“내 말에 따르든가 아니면 포기하든가”라는 말 아닌가.

그간에 얻은 점수는 다 버리라고?

여론조사로 단일후보를 결정하자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전에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고 하겠지만 그 때 안 대표도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 정말 서울시장 자리를 최종적 목표로 삼아 경쟁했다면 그런 방식으로 합의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여론조사로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는(그것도 당선이 확실시되는 단일 후보) 방식이 관례화하면 민주선거제도와 정당제도의 의의는 심각하게 퇴색된다. 당장 그간의 대선 선거운동 그 자체도 무의미해지고 만다(이러다가는 대선도 여론조사로 치르자는 주장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안 후보에게도 출마의 자유, 출마의 권리가 있다. 그 자유와 권리는 마땅히 존중돼야 한다. 야권 후보 단일화에 응해야 할 의무는 없다. 후보로 나선 이상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소속 정당과 지지자, 그리고 자신에 대한 도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후보가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 있다. 정말 정권교체를 국민적 시대적 명령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그 명령에 따를 각오가 돼 있다면 자신이 정치하는 방식을 진지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애초에 그는 “단일화는 없다. 100% 완주한다”고 단언했다. 그러다가 후보 등록까지 마친 상태에서 갑자기 단일화를 제안하고 나선 까닭이 뭔가?


“만만히 보지마! 나는 완주의 의지가 확고하다.” 그런 결기를 보여주기 위해 등록부터 한 것인가? 정권교체를 위해 자신이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단일화 선수를 친 것은 아닌가? 야권의 분열로 혹시라도 정권교체가 좌절될 경우를 대비한 명분 확보용 제스처인가? 민주당 이 후보와의 경쟁력에서 자신이 윤 후보보다 우세하다는 여론조사 결과들에 고무되어 정말 단일후보 자리를 꿰차자는 것인가?


단일화는 유력 후보들 간의 정치적 담판으로 이루는 게 순리다. 이미 수없이 실시된 적합도·경쟁력 여론조사의 결과를 버리고 다시 단일화만을 위한 여론조사를 따로 하자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다. 지금까지의 일관된 추세와는 다른 결과, 그러니까 이변을 기대하기 때문이지는 않은가? 그게 아니라면 안 후보는 이런 식의 제안은 하지 말아야 한다.


야권 후보 단일화는 ‘확실한 정권교체’의 필수조건이다. 이걸 위해서라면 윤 후보나 안 후보 공히 자기희생의 각오를 가져야 한다. 다만 이변으로 결과가 좌우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간의 성적이 그대로 결정에 반영되어야 옳다. 40km까지 앞서 달린 선수의 자리를 빼앗아 마지막 2.195km만 뛰고 1등으로 마라톤 결승선에 들어가겠다는 생각 같은 것은 애초에 버릴 일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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