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욱의 야단법석(野壇法席)] 대장동은 살아있다

양창욱 기자 (wook1410@dailian.co.kr)
입력 2022.01.30 00:07
수정 2022.03.17 23:23

오랜 세월 검찰의 양대 산맥은 특수부와 공안부였다. 서슬 퍼런 군사독재시절에는 당연히 대공수사의 공안부가 힘을 얻었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경찰과 안기부에서 떨어져 나온 기능들이 검찰에 집중되면서 특수부는 본격적으로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부패 척결이라는 순기능과 전(前) 정권에 대한 보복 수단이라는 역기능의 완장을 동시에 차게 된 것도 이때부터이다. 특수부 중에 특수부, 특수부의 꽃이라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인지수사와 직접수사를 통해 검찰총장의 별동대 역할을 수행하며 말 그대로 꽃길만 걸었다. 그러나 대검 중수부의 기획수사와 정치수사를 성토하는 비난도 갈수록 집요해져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4월 전면 폐지된다. 그리고 그로부터 6년 후 온갖 악다구니에 시달리던 특수부도 기능이 대폭 축소되고 이름마저 반부패강력수사부로 바뀌게 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자신이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에는 박근혜 정권 적폐수사의 선봉으로 악착같이 활용한 뒤 장관 입성 전후로 칼끝이 자신을 향하자 검찰개혁의 명분하에 여지없이 쪼개버렸다는 논란이 파다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전 민정수석, 윤석열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한 몸인 시절, 과거 정권 특수통들에 대항해 ‘윤석열 사단’을 발탁하고 모든 것을 의지했지만 윤석열과 갈라선 뒤에는 결국 특수부 자체를 없애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중앙지검과 대검, 법무부 트라이앵글만 뱅글뱅글 돌던 윤석열 사단의 특수통 적자(嫡子) 4인방이 지방으로 좌천되거나 한직으로 밀려났고, 지난 45년 동안 기업과 공직비리의 행간을 무소불위로 주유하며 수많은 검사들 지향이자 검찰 권력의 요체로 군림했던 특수부의 시대는 그렇게 저물어갔다.


그래서 지난해 9월 중앙지검의 대장동 수사팀이 특수통들을 중심으로 꾸려졌다고 했을 때 세인들의 관심은 집중됐다.(몇 달 후 이른바 ‘쪼개기 회식’ 논란으로 결국 사표를 쓴 총괄 부장검사를 제외한 구성원들 대부분이 특수통이었다.) 비록 거덜 난 둥지에서 잔해(殘骸)처럼 떠돌다 친정권 성향 수장들의 깃발 아래 헤쳐 모였겠지만 ‘빼어난 칼잡이’의 후예라는 기대감마저 감출 수는 없는 까닭이었다. 그러나 수사 초기부터 성남시와 시장실에 대한 ‘늑장 압수수색’이라는 부실수사의 멍에를 뒤집어쓰더니,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핵심으로 불리는 정진상 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비서실 부실장의 소환 연기 요청에 무려 두 달이나 응해줄 때는 “무릎을 꿇었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정 부실장은 이 후보 스스로가 직접 인정한 가장 오래된 측근이자 구속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입단속’을 도모했다는 의혹을 받는, 그 무엇보다 대장동 사건의 실체를 규명할 윗선 수사의 ‘마지막 키맨’으로 꼽히고 있었다. 결국 수사팀은 수사에 착수한 지 107일 만에, 공소시효(2월 6일)를 3주 정도 앞두고 비공개로 소환해 뒷북조사를 펼쳤지만 “면죄부를 주려는 요식 절차”라는 힐난만이 넘쳤다.


설상가상으로 유한기 전 성남도공 개발사업본부장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앞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유동규 전 본부장에 이어 대장동 사업 주무를 맡았던 김문기 개발1처장마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되면서 수사팀의 당혹스러움은 극에 달했다. 특히 김 처장은 초과이익 환수 조항이 삭제된 경위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인물로 추정돼 아쉬움을 더했다. 한 1미터쯤 팠는데 별로 나오는 게 없자 초조하고 욕먹는 게 두려워진 검찰이 옛 버릇 그대로 별건(別件)을 털 준비를 하다가 사고가 난 게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제기됐다. 대장동 개발업자들의 로비 대상으로 언급된 ‘50억 클럽’ 의혹 규명도 곽상도 전 의원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제자리걸음만 걸었다. 경찰이 최윤길 전 성남시의회 의장을 구속하자 눈치가 보인 검찰이 부랴부랴 곽 전 의원의 구속영장을 재청구하고 나섰지만 법원의 영장심사는 내달 4일까지 연기된 상태이다. 여야 대선 후보들이 박빙의 호각세로 한 끗 싸움을 벌이는 지금이야말로 가만히 엎드려 눈알만 굴리는 게 검찰의 생리라며 정말 제대로 수사할 것으로 기대했다면 순진한 것이라는 야유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러나 대장동은 쉽사리 죽지 않았다. 새해 들어 매주 월요일, 넉 달이나 ‘아랫선 수사’에만 몰두했던 검찰과 대장동 5인방 변호인단의 첨예한 공방이 펼쳐지는 공판에서 여전히 살아있었다. 대선 정국의 국민적 관심 속에 무엇보다 증인이 많고 구속기간이 제한됐다는 이유로 매주 열리게 된 재판에서는 비록 새로운 내용들이 도드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되짚고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정국을 널뛰게 하는 유의미한 증언들이 쏟아졌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지시한 방침에 따른 것”, “위에서 찍어 누르는 것처럼 여겨졌다” 등의 진술은 현재까지 대장동 5인방의 배임액을 1827억 원이라고 파악한 검찰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고, “해당 이익은 고위험을 감수한 투자의 결과이지 배임의 결과가 아니다”는 변호인단의 반박을 더욱 궁핍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지금 외모만 봐서는 도저히 성악을 했다고 믿겨지지 않는 인사에서부터 지상파 방송사 기자였던 아내에게 사표까지 쓰게 만들었다는 인사, 기사 한 줄 안 쓰고 그 오랜 세월 서초동에서 거들먹거리기만 했다는 인사까지, 피고인들의 푸른 수의 이전에 떠돌던 흉문까지 떠올리고 나면 공판의 흥미는 배가됐다.


그다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법정에서의 전갈에 이재명 후보는 예민하게 반응했다. 사실 ‘대장동’이라는 말이 일주일에 한 번씩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이 후보에게는 악재였을 것이다. 더욱이 연초만 해도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에게 10% 이상 앞서고 있던 지지율을 다 까먹은 터라 ‘큰 절’만으로 반등의 기회를 잡기란 역부족이라고 여겼을 것이고 검찰공화국을 다시 쟁점화하면서 대장동 의혹을 빨리 털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국힘을 ‘산적떼’, ‘도둑’에 비유하며 화살을 돌리고, “억울해서 피 토할 지경”, “제가 지면 없는 죄를 만들어서 감옥에 갈 것 같다”, “저는 없는 사실까지 만들어 공격당하고 의심받는데 상대는 있는 사실조차도 다 묻힌다” 등 한동안 정제됐던 발언들도 ‘공격 본능’으로 다시 거칠어졌다. 진보 유튜브 장사꾼들이 ‘김건희 녹취록’으로 지지율을 더 까먹은 뒤에는 눈물까지 보였다.


윤석열 후보도 부동산 개발특혜 의혹이라는 대장동의 본질에서만 벗어나면, 화천대유의 종잣돈이 윤 후보가 주임검사였던 부산저축은행 부실 대출 사건에서 비롯됐다는 공세와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의 누나가 윤 후보 부친의 연희동 주택을 샀다는 점, 또 50억 클럽에 이름을 올린 박영수 전 특검과 윤 후보가 가깝다는 점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 뒤 검찰이 윤 후보 가족·측근 관련 4건의 수사에 더욱 주력하고 공수처가 이른바 ‘고발사주’ 등에 손대면서 자연스럽게 ‘이재명의 이슈’로 갈라치기 된 것이다. 이제 40일도 안 남은 대선 전에 대장동 수사가 마무리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설사 검찰이 무엇인가 쥐고 있다 하더라도 대선 결과가 나올 때까지 토해낼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놔도 반쪽의 국민들에게는 쌍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검찰은 처음부터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 보다는 지지부진 뭉개거나 미루려는 핑계에 더 골몰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대장동 의혹이 처음 터졌을 때 이번 대선 최대의 블랙홀이라는 데 여야는 이견이 없었다. 도저히 질 수 없는 선거였다는 2002년 16대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패배하게 만든 이른바 ‘병풍’ 사건에 필적할 만하다고 여의도는 수근거렸다. 그런데 그 뒤 국힘이 더욱 주목한 것은 ‘BBK 의혹’이었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BBK 실소유주 의혹으로 칼 날 위에 섰고, 당시 서울중앙지검은 대선 14일 전에 이 후보에 대한 무혐의 결론을 발표했다. 그리고 대선 국면에서 BBK 특검 수용을 했던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 당선 이틀 전에 통과된 특검법에 의해 ‘정호영 특검팀’(당시 윤 후보도 이 팀에 속해 있었다.)에게서 재수사를 받고 취임식 4일 전에 다시 무혐의 결론을 얻었다. 거듭된 재수사로 13년 후에 감옥에 갔을망정 이 전 대통령은 홀가분하게 국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국힘의 특검 도입 요구의 명분도 여기에서 기인했다. 대장동 의혹도 대선 전에 특검 수용을 하고 차기 대통령 취임식 전에 결론을 내자는 압박이었다.


그러나 대선 전 특검 합의는 쉽지 않다. 검찰의 지능적인 사보타주 때문이든 국힘의 무능 때문이든 180석 공룡정당의 방패를 뚫기에는 결정적인 한 방이 없다. “이재명이 안 받았을 리가 없다”는 돌림노래에서 한 발짝도 더 못나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대장동은 지금처럼 법정에서나마 마음껏 춤을 추다 곧 있을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한층 더 살아날 듯하다. 어차피 내놓는 공약이나 정책 어젠다 따위는 기억조차 안 되는, 그야말로 차악(次惡)을 뽑는 선거로 불리다 보니 이전투구(泥田鬪狗)식 공방은 피해갈 수 없을 것이고, 검사 윤석열의 취조(取調)와 변호사 이재명의 응수(應酬)가 제법 볼 만 할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이재명 후보가 주장하는 것이 모두 맞다고 하더라도 대장동 의혹이 이 후보의 ‘유능’ 프레임을 깬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렇게 일 잘한다고 큰 소리 치더니 밑의 사람들이 그만큼 해먹을 동안 도대체 뭐했느냐는 추궁에는 이 후보도 할 말이 없을 것이고 치명상을 입었다. 정권 교체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워낙 크고 배우자가 매까지 다 맞아주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입 다물고 숨어다니기만 해도 윤석열 후보가 이기는 선거라는 우스갯소리는 그래서 나오고 있다.


양창욱 기자 (wook141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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