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 않고 듣는 무용 공연도 가능”…확장하는 공연계 배리어프리 문화
입력 2022.01.19 13:24
수정 2022.01.19 10:24
무용극 '피스트' 시·청각 장애인도 즐기는 배리어프리 영상 제작
보지 않고 듣는 무용 공연도 가능할까?
지난 17일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에 따르면 2021년 사회적경제기업 사업개발비 지원사업으로 ‘제4회 배리어프리콘텐츠 영상 공모전’을 진행해 무용 공연인 ‘피스트’를 선정했다. 순수무용 공연도 시각·청각장애인이 관람할 수 있도록 배리어프리버전 영상을 제작한 국내 최초 사례다.
모든컴퍼니의 ‘피스트’는 지난해 8월에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상연된 작품으로, 국내에서 민간 예술단체 단독으로 제작하는 무용공연 중 공공극장과 협업으로 음성해설을 시도한 첫 사례작이었으며, 사운드플렉스가 음성해설 제작 및 터치투어를 맡아서 진행했다. ‘무용음성해설’이란 시각장애인들도 무용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움직임과 스토리 등을 예술적으로 묘사하는 작업이다. 시각장애와 무용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다.
이번 영상화를 통해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은 물론, 청각장애인도 관람할 수 있도록 안무 의도가 담긴 내레이션을 추가로 삽입해 수어자막버전으로 제작했다. 사운드플렉스 강내영 대표가 화면해설대본을 집필했고, 이경구 안무가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수어자막버전의 대본과 내레이션은 김모든 안무가가 직접 하였으며, 추호성 수어통역사가 함께 했다.
무엇보다 모든 작품에는 설립 취지인 ‘장애인 당사자주의’에 입각해 대본 작성, 모니터링, 수어촬영 및 편집(손말미디어) 등 제작 전반에 걸쳐서 다수의 장애인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배리어프리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공연계에서도 그 영역이 눈에 띄게 확장되고 있다. 사실 국내 공연계의 배리어프리는 이제 막 걸음마 단계를 벗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0년대 들어 1~10편씩 제작되다가 2년여전부터 20여개의 작품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고, 지난해와 올해까지 꾸준히 배리어프리 공연이 제작되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도 배리어프리 공연이 진짜 장애인들에게는 효율성이 떨어진 지적도 있었다. 더구나 무용계는 연극이나 뮤지컬 등의 장르에 비해 배리어프리 공연에 있어서 견고했던 장르였다. 실제로 무용 분야는 타장르 공연보다 늦은 1998년 스코틀랜드 국립발레단에서 음성해설이 처음 시도됐다. 국내에서도 지금껏 연극이나 오페라, 뮤지컬 등의 장르에선 100편에 가까운 배리어프리 공연이 제작됐지만, 무용공연 음성해설은 불모지에 가까웠던 것이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제작된 ‘피스트’ 배리어프리 영상화 사업에 무용계의 관심이 쏠리는 것도 당연하다.
‘피스트’의 화면해설대본을 집필한 강내영 대표는 저시력인 화면해설작가로, 케이블방송 및 배리어프리영화, 글로벌기업 N사 스트리밍 프로그램 등 지난 10여 년간 200여 작품, 총 2000여 편의 화면해설대본을 집필하고 제작에 참여한 이력이 있다. 무용음성해설은 2020년 탈춤극 ‘오셀로와 이아고’를 배리어프리버전으로 제작한 경험을 토대로 무용음성해설가 워크숍 강의를 맡은 것이 계기가 됐다.
공연 관계자는 “배리어프리의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건 꽤 됐지만, 이걸 실제 공연에 적용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배리어프리 공연의 가장 중요한 것은 ‘벽’을 느끼지 않게끔 하는 것인데, 그 작업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면서 “다만 무용공연을 비롯해 모든 장르의 공연들이 배리어프리와 관련한 지속적 네트워킹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워크숍 등을 통해 전문가를 양성하고, 극장 시스템 등도 함께 발전한다면 분명 국내 배리어프리 공연에도 의미 있는 시도들이 많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