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원진아의 즐거운 도전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1.12.31 10:32
수정 2021.12.31 10:32

올해만 세 작품 선보여

"유독 도전하고 배웠던 한 해"

갓 출산한 자신의 아이가 정체불명의 존재로부터 죽음을 선고받은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누구도 감히 쉽게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 처한 '지옥'의 송소현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원진아에게 미지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고민은 하지 않았다. '지옥'이 초자연적 현상으로 인해 벌어지는 인간들의 모습이 지금과 다르지 않아 현실에 던지는 질문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도전은 틀리지 않았다. '지옥'은 지난 11월 공개된 후 하루 만에 전 세계 넷플릭스에서 1위를 차지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지금 커뮤니티가 많이 발전된 세상이라 벽이 허물어지고 우리가 같은 시간을 살아갈 수 있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생각해요. '지옥' 속 세상이 우리나라에서만 느끼는 현상이 아니라는 거죠. 인간이라는 사회에서 살아가며 한 번쯤 살아가는 걸 고민하는 인간의 감정으로도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즐겨주신 것 같아요."


송소현은 남편 배영재(박정민 분)와 함께 지옥에서 죽음을 선고받은 아이를 지키려 고군분투한다. 초반 혼란스러워하다 결국 아이를 데리고 새 진리회를 찾아가지만, 그들의 의중을 눈치채고 기꺼이 아이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다. 원진아는 복합적인 감정에 짓눌린 송소현을 어떻게 접근했을까.


"사실 아직 모성애를 느끼기 스스로 힘들어요. 글과 상상력에 기대려고 했어요. 원진아라는 사람이 이런 상황을 겪었다면 감당하기 힘든 혼란스러운 감정은 뭘까를 고민했죠. 그리고 대본에 감정들이 구체적으로 쓰여 있었어요. 그래서 그걸 읽고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했죠. 사실 우리는 모성애가 강요되는 시대를 살았잖아요. 엄마란 역할이 필수로 거쳐야 하는 것처럼 당연시 그려져왔고요. 사실 그런 것들에 대한 생각을 평소에 하지 않았는데 '지옥'을 촬영하며 많이 느꼈어요. 저는 소현이가 모두가 상상하는 엄마의 모습이 다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이를 얻은 기쁨도 있겠지만 산후우울증이 오는 엄마도 있겠지요. 그런 복합적인 감정을 섞이면서 소현이라는 인물이 나온 것 같아요."


일부 시청자들은 소현이 아기가 죽음을 선고받자 외면하려는 모습이나, 남편에게 바로 알리지 않거나, 답답한 마음에 새진리회를 찾아가는 행동을 보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평을 내놓기도 했다.


"처음부터 몰입이 안 된 건 없었어요. 무엇이든 해보려는 행동들이 이해가 안 된다기보단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여졌어요. 영재에게 바로 알리지 않았던 건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쉽게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오히려 하룻밤을 지옥처럼 보냈을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었어요."


그가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캐릭터는 정진수다. 정진수는 나약한 자신을 보호하고자 한 선택과 생각들로 인해 세상을 선동하는 무서운 괴물이 되고 말았다.


"고지를 받은 후 죽기까지 3일이라는 시간도 굉장히 고통스러울 것 같은데 하물며 정진수는 20년이잖아요. 자신의 죽음을 알고 20년이란 긴 시간을 보호자도 없이 견디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정상적인 성인이 할 수 있는 판단을 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지옥에 집어삼켜지고 세상을 선동한 인물이 된 과정이 안타깝고 불쌍해요."


연상호 감독은 '지옥' 촬영 전 배우들을 모두 모아놓고 어떻게 촬영을 진행할 것인지 자세하게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원진아는 연 감독의 촬영 전 브리핑이 생소하지만 꼭 필요했던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촬영을 하면 할수록 연 감독에 대한 신뢰도는 높아져갔다.


"생소하지만 꼭 필요했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감독님과 작업하며 자유로움을 많이 느꼈어요. 정해져있는 틀에 맞춰 연기를 한다기보단 배우 스스로가 느끼는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편하게 해주세요. 감독님 스스로도 배우들의 표현 방식에 기대감을 갖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더라고요. 배우들에게 어떻게 해달라고 디렉팅을 하기보단 어떤 부분이 좋다면서 신뢰를 보여주신 게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조금 더 확신을 가지고 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원진아는 '지옥'에 참여한 배우로서 만일 자신이 '지옥' 속 인물과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제가 그런 상황이라면 과연 타인의 입장을 생각하며 바르게 살수 있는 사람일까란 생각을 해봤어요. 사실 저도 '지옥' 속 사람들처럼 나의 일이 아니길 바라며 혼란스러워했을 것 같아요. 제3자를 통해 그 모습을 보니 얼마나 나약하고 건강하지 못한 행동들인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됐죠."


올해 원진아는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냈다. JTBC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옥', 그리고 지난 29일 개봉한 영화 '해피 뉴 이어'까지 다채로운 모습으로 대중과 만났다. 코로나19로 작품 공개가 미뤄지는 상황이 비일비재하지만, 다행히 원진아는 예정대로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


"현재 상황 때문에 힘들고 지칠 수 있지만 일을 계속하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극복해 보려 해요. 코로나19로 인해 플랫폼의 구애받지 않고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상황이 일어났는데, 그 안에서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원진아는 데뷔 초반, 칭찬을 받아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강박 때문에 스스로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현재는 작품을 하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으며 강박은 내려놓고 연기를 즐기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이 같은 마음가짐을 유지하며 배우 원진아로서 다채로운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가려 한다.


"올해는 유독 안 해본 것들을 시도하고 몰랐던 걸 배우는 과정이 많았어요. 고통스럽기도 하고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도 배우라는 직업을 하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행운 같은 상황이 이어졌어요. 앞으로도 어떤 작품을 하든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성장하는 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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