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적막감만 감도는 故 김문기씨 빈소…유족은 침묵했다

이배운 기자 (lbw@dailian.co.kr)
입력 2021.12.25 06:47
수정 2022.02.25 17:56

고개 저은 유족들 "더 이상 언론에 드릴 말씀 없다"

"회사에서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인데" 고인의 호소

23일 오전까지도 성남도공 화환은 안보여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이 지난 21일 성남도시개발공사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가운데, 경찰 관계자가 현장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3일 오전 뒤늦게 찾은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처장의 빈소는 적막감만 감돌았다.


유족들은 전날 고된 하루를 보내며 쌓인 피로가 적지 않았던 듯 별실에서 쉬고 있었다. 빈소 앞에는 30여개의 근조화환만 쓸쓸히 줄지어진 가운데, 고인의 근무처였던 성남도공의 화환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장동 개발 로비 특혜 의혹 관련 수사를 받던 김 처장은 안타까운 선택을 내리기 직전까지 성남도공을 깊이 원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지난 10월 한 언론과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게 된 데 "회사에서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인데, 지금은 나보고 다 알아서 하라고 한다. 아무도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가슴이 미어진다"며 심정을 털어놨다. 분당에 위치한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유난히 무거웠던 이유다.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빈소에 들어가 고인의 영정에 묵념했다. 고인과 직접적인 인연은 없지만 안타까운 넋에 조금이라도 위로를 보태고 싶은 마음이었다. 피로한 몸을 끌고 별실에서 나온 상주와 부인은 여전히 슬픔을 씻어내지 못한 듯 붉게 충혈된 두 눈에 눈물만 머금고 있었다.


전날 "이 정권, 이 나라 이 현실이 원망스럽다" "형은 실무자로서 일한 것밖에 없다"며 고인의 죽음에 비통한 심정을 금치 못하던 유족들은 이날 침묵을 지켰다. 부의함을 지키는 고인의 처제에게 조심스럽게 심경을 물어봐도 "더 이상 언론에 드릴 말씀이 없다" "다른 유족분들도 아무 말씀을 드리지 않을 것"이라며 힘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현장을 방문한 기자들 사이에선 누구보다도 세상에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은 유족들이겠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존재를 의식한 탓에 말을 아끼려는 것 아니겠느냐 라는 얘기들이 흘러 나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2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 참석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이 후보는 여권의 대통령 후보인데다 열성 지지층을 구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폭 연루설, 독단적·폭력적 성향 등 각종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유족들로서는 부담을 느낄 수도 있는 대목이다.


특히 이 후보는 성남시장 재직 당시 김 처장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등에 의해 10박 11일 해외 동반 출장한 사실이 드러나고 사진까지 공개됐음에도 그와의 인연을 거듭 부인했다. 그러다가 김 처장 사망의 책임을 촉구하는 여론이 들끊자 "한때 부하 직원이었고 제가 하던 업무에 관여된 분이니까 전혀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겠다"며 기계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이를 전해 들은 고인의 넋과 유족들이 어떤 심정일지 헤아리기 어려운 부분이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장례식장을 떠나면서도 "회사 일을 했는데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앞으로 어떤 일이든 앞장서서 할 수 있겠는가"라는 고인의 생전 마지막 호소가 귓가에 맴돌았다.


윗선으로 가는 길목도 아니고, 저만치 한참 남겨둔 고비에서 벌써 두 명의 안타까운 목숨이 세상을 등졌건만 여야는 여전히 대장동 의혹 특검법 도입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말로는 "특검 도입이 시급하다"며 목청을 높이고 있지만 특검 임명과 수사 범위, 대상 등을 놓고 100일 넘도록 공회전만 반복하는 상황이다. 살아남은 자들이 고인의 원통함을 더욱 배가시킨듯 동장군의 위세가 셌다.

이배운 기자 (lbw@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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