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이슈] '방과 후 설렘'으로 본 아이돌 오디션의 퇴보
입력 2021.12.07 13:42
수정 2021.12.08 01:08
'믹스나인' 비판받은 한동철 PD, 복귀 요란했지만…시청률, 1회 1.9%→2회 1.7%
오디션 프로그램 낮은 시청률, 고민 필요할 때
수년간 쏟아진 아이돌 프로그램들이 진화 없이 제자리 걸음 중이다. 엠넷 '프로듀스 101' 시리즈가 한국식 아이돌 트레이닝 시스템과 투표로 인한 데뷔조 발탁, 참가자를 연습생과 기존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까지 폭을 넓히며 개인간의 서사를 구축해 화제성과 대중성을 한 번에 잡은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제2의 프로듀스 101'를 만들기 위해 JTBC '믹스나인', KBS2 '더 유닛', 엠넷 '아이돌 학교' 등 꾸준히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등장했지만 '프로듀스 101'과의 뚜렷한 차별점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오디션 프로그램의 피로도만 높였다. 결국 현재까지 제2의 아이오아이, 워너원는 탄생하지 않았다.
특히 2019년 방송한 '믹스나인'은 오디션 프로그램 역사상 발탁된 멤버를 데뷔시키지 못하는 사상 초유의 실패작으로 남았다. 9명의 계약 기간은 데뷔 일로부터 4개월 이상, 세계 15개 지역을 투어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시청률이 1%대를 맴돌며 프로그램이 주목받지 못했고, 각 멤버들의 소속사와 이견을 좁히지 못해 데뷔가 무산됐다. 이 프로그램을 제작했던 YG엔터테인먼트와 한동철 PD는 대중에게 질타를 받아야 했다.
'프로듀스 101'은 아류작들의 연이은 실패로 오디션 프로그램의 선봉장을 지키는가 했지만 뒤늦게 제작진의 투표 조작이 발각돼 쌓아올렸던 모래성이 무너졌다.
안준영 PD, 김용범 CP 등은 지난 2016년부터 시작된 '프로듀스' 시즌 1~4 생방송 경연에서 특정 후보자에게 유리하도록 시청자들의 유료 문자 투표 결과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됐고, 각각 징역 2년, 1년 8개월을 선고 받았다. 이에 엠넷은 투표 조작논란에 대해 사과하고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얻은 과거 수익과 향후 예상 수익 300억원을 음악 생태계 지원을 위한 펀드·기금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엠넷의 '아이돌 학교' 역시 투표 결과를 조작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지난해 불구속 기소돼 책임프로듀서(CP)가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국민들이 뽑는 아이돌 그룹이라는 타이틀이, 제작진에 의한 사기극이었다는 사실에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공정성이 문제가 됐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향한 신뢰가 회복되기도 전에 다시 오디션 프로그램을 내놓기 시작했다. 결과는 이전 아이돌 프로그램만큼 반향을 일으키지도, 시청률을 확보하지도 못했다. 엠넷 '아이랜드'는 0.8%, '걸스 플래닛999: 소녀대전'은 0.8% SBS '라우드'는 2.7%로 막을 내렸고 현재 방송 중인 MBC '야생돌'도 0~1% 시청률을 오가고 있다.
'믹스나인'으로 체면을 구긴 한동철 PD 역시 MBC '방과 후 설렘'으로 쇄신을 시도했다. 제작 전에 다양한 언론플레이로 흥행 분위기도 충분히 만들었다. 그러나 '방과 후 설렘'의 상황은 이전 실패한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등교전 망설임'이라는 프리퀄 프로그램까지 제작하며 '방과후 설렘'에 열과 성을 쏟고 있았지만 1회 1.9%, 2회 1.7%를 기록하며 대중에게 첫인상을 제대로 각인시키지 못했다.
프리퀄 '등교 후 망설임'을 통해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가 연습생들의 멘탈을 관리해, 경쟁에 지친 연습생들의 마음을 다독인다는 점, 오디션 시작 전 자연스럽게 연습생들의 이름과 얼굴을 알릴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좋은 전략이다. 그러나 고작 시청률 1%대를 내기 위한 전략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 '방과 후 설렘'은 데뷔조 선정을 위한 투표를 네이버 '방과후 설렘' 콘텐츠 홈 투표, 리얼라이브 어플리케이션에서 가능하도록 만들었는데, 이는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려는 목적'만으로 보기 어렵다. 기업 마케팅, IP 사업 확대 등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평가 과정에서 문제도 발생했다. '방과 후 설렘' 학년별 입학 시험은 언택트 평가단의 75%이상 동의를 얻어야 심사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도록 만들었다. 대중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아이돌 그룹이라는 인식을 주기 위한 방편이지만 여기서도 아쉬움이 드러났다. 1회에서 언택트 평가단이 다소 실력이 부족했던 2학년 김서진, 김예서 연습생에게 문을 열어준 것.
심사위원 전소연은 "문이 열렸을 때 평가하시는 분들이 혹시 소리가 안들렸나 생각했다. 사실 오늘 본 모든 무대 중에 화도 안날 정도로 최악이었다. 평가하는 분들도 그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2회에서는 기계 오작동으로 인해 박효림, 유재현, 김리나, 김수혜로 구성된 국민여동생팀에게 두 번 상처를 줬다. 처음에는 박효림, 유재현이 탈락이었으나 기계 오작동을 알게 된 후 국민여동생팀은 다시 무대 위에 올라 성공과 실패를 견뎌야 했다. 합격한 유재현, 김리나, 김수혜는 동료에 대한 미안함에 눈물을 쏟고, 박효림은 두 번이나 탈락자로 호명되며 무대를 홀로 떠나야 했다. 심사위원 옥주현 역시 기계 오작동으로 인해 박효림에게 두 번 상처준 것에 대해 분노와 눈물을 보였다. 부모님까지 참관시키며 이런 장면이 연출된 점을 두고 잔인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지금 방송되고 있는 '방과 후 설렘'이 연습생들의 꿈과 희망을 담보로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은 충분히 했는지, 시청자들은 실제로 오디션 프로그램의 변화에 대해서 체감하고 있는지 미지수다.
프로그램의 낮은 시청률에 대해 온라인으로 화제성과 영향력이 옮겨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0~1%대의 시청률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유튜브 조회수가 높은 것도 아니다. 5일 방송한 2회 방송 내용 중, 유튜브에 올라온 멤버들의 무대 풀영상 조회수가 대부분 5만회 이하고, 1만회도 안되는 영상들도 존재한다. 몇몇 영상이 50만회가 넘기도 했지만, 최근 아이돌 관련 영상 횟수를 보면 많은 숫자라 평하기 어렵다. 이들 영상이 올라와 있는 유튜브 채널 MBC엔터테인먼트 구독자는 849만명이고, MBC 공식 종합 채널 엠뚜루마뚜루 구독자는 82만명이다.
향후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 어떤 포맷으로 등장할 지 예측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는 대중의 시선도, 업계의 기대도 더 이상 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퇴보하는 프로그램 포맷을 흥미진진하게 볼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