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탑 앞에서 저지당한 윤석열…"상처받으신 모든 분들께 사과"
입력 2021.11.11 00:12
수정 2021.11.10 22:21
첫 지역 일정으로 1박2일 광주 방문
홍남순 변호사 생가, 5.18 묘역 찾아
'전두환 옹호' 발언 관련 "사과드린다"
"상처받으신 국민께 이 마음 계속 가져가겠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0일 광주를 찾아 거듭 고개를 숙였다. 그는 자신의 '전두환 옹호' 논란 발언에 대해 "상처받은 분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이날 그에게 항의하기 위해 찾은 시민단체들에 대해서도 "그 분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며 "사과를 드리는 마음은 제가 오늘 이 순간 사과를 드리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상처를 받으신 국민들, 특히 광주 시민 여러분께 이 마음 계속 가지고 가겠다"고 강조했다.
첫 지역 일정으로 광주 택했지만…충혼탑에 닿지는 못했다
윤 후보는 이날 국민의힘 후보로 선출된 후 첫 지역 일정으로 광주를 찾았다. 지난 10월 19일 '전두환 옹호' 발언 논란이 터진 이후 22일 만이다. 정치권 데뷔 이후 줄곧 '외연 확장'에 방점을 찍어온 윤 후보가 '전두환 옹호' 발언으로 호남 시민들의 지탄을 받자 이를 수습하기 위해 광주를 찾은 것이다.
그는 광주 첫 일정으로 호남의 대표적 인권 변호사인 고(故) 홍남순 변호사의 생가를 찾아 유족들과 차담회를 가졌다. 유족들은 "광주 전남 지역구민들이 (윤 후보의) 이미지를 다르게 많이 보고 있다. 좀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반겼다.
그러나 이후 방문한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는 일부 지역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아야 했다. 5·18 민주묘지 입구인 '민주의 문'에서는 윤 후보가 도착하기 전부터 한 시민이 서서 "5·18을 부정하는 윤석열은 돌아가라"고 외치며 반발했다.
윤 후보가 국립 5·18 민주묘역에 도착하자 윤 후보에 항의하는 단체들과 지지자들, 취재진, 경찰 등이 뒤섞여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특히 오월어머니회와 광주전남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등은 윤 후보가 추모탑에 헌화하지 못하도록 거대한 플래카드로 저지선을 치며 윤 후보의 앞을 막아섰다.
다만, 윤 후보를 향해 계란을 던지는 등 과격한 모습의 항의나 충돌은 없었다. 스스로 '광주 촛물 시민'이라 밝힌 이들은 "욕하지 맙시다. 계란을 던지지 맙시다. 자작극에 말려들지 맙시다"라는 내용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이 자리에 모인 항의자들을 향해 강경 대응 자제를 요청했다. 윤 후보를 향한 이들의 거친 항의가 자칫 동정표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오월광주의 아들이고 딸"
'민주의 문'에 도착한 윤 후보는 방명록에 "민주와 인권의 오월 정신을 반듯이 세우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후 충혼탑을 향해 약 200미터 정도 나아갔다.
충혼탑을 앞에 두고 인파에 가로막혀 10여 분 간 제자리를 맴돈 윤 후보는 결국 헌화·분향을 포기했다. 전날부터 밤샘 농성을 벌이며 '저지선'을 쳐 놓은 대진연이 끝내 곁을 내주지 않아서다.
윤 후보는 추모탑에서 약 50미터 떨어진 곳에서 묵념으로 참배를 대신했다. 이어 큰 소리로 입장문을 발표하며 광주 시민들에게 사과했다.
윤 후보는 "제 발언으로 상처받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저는 40여 년 전 오월의 광주시민들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피와 눈물로 희생하신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광주의 아픈 역사가 대한민국에 자랑스러운 역사가 됐고, 광주의 피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꽃 피웠다"며 "그러기에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오월광주의 아들이고 딸이다"고 했다.
윤 후보는 "제가 대통령이 되면 슬프고 쓰라린 역사를 넘어, 꿈과 희망이 넘치는 역동적인 광주와 호남을 만들겠다. 지켜봐달라"며 "여러분께서 염원하시는 국민통합을 반드시 이루어 내고, 여러분께서 쟁취하신 민주주의를 계승 발전시키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5·18 정신, 당연히 헌법 전문에 올라가야"
윤 후보는 참배 후 '항의하는 분들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 분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며 "분향은 못했지만 사과드리고 참배했던 게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다"고 재차 몸을 낮췄다.
또 '지금까지 후회한 발언이 없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후회의 문제가 아니라 발언이 잘못됐으면, 그 발언으로 다른 분에게 상처를 줬으면 거기에 대해 질책을 받고 책임을 져야 되는 것"이라며 "후회라는 게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고 답했다.
이날 오전 이용섭 광주시장이 "5·18 민주화운동을 헌법 전문에 실어달라'고 한 발언에 대해선 "5·18 정신은 자유민주주의 정신이고 우리 헌법 가치를 지킨 정신이기 때문에 당연히 헌법 전문에 올라가야 한다고 주장해왔다"고 강조했다.
앞서 윤 후보는 지난달 19일 부산에서 당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호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고 말해 '전두환 옹호'라는 지탄을 받았다.
이후 논란이 커지자 윤 후보는 사흘 만에 유감을 표명했으나, 성난 민심이 가라앉지 않자 직접 광주를 찾았다.
한편, 윤 후보는 이날 저녁 전남 목포로 이동해 오는11일 오전에는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을 방문한다. 이후 경남 봉하마을로 이동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는 것으로 1박 2일 광주 방문 일정을 마무리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