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싱가포르 '이면합의' 추인 요구하나
입력 2021.10.09 04:01
수정 2021.10.08 23:29
"트럼프·김정은, 싱가포르서
연합훈련 중단·종전선언 이면합의"
북한이 조건부 종전선언 가능성을 시사하며 통신연락선을 복원해 남북관계 개선 여지를 밝힌 배경을 두고 다양한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완전히 조율된 대북정책'을 펴기로 한 한국과 미국을 이간질해 이익 극대화를 꾀하고 있다는 평가에 힘이 실리는 가운데 북한이 지난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당시의 '이면합의' 추인을 기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끈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전 국립외교원장)는 지난 6일 개최된 국방대학교 주관 동북아안보정책포럼에서 "북한이 아주 중요한 테스트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이면합의를 언급했다.
김 교수는 "싱가포르에서 4가지 공개합의 이외에 2가지 중요한 이면합의가 있었다"며 "하나는 한미연합훈련 중단(취소), 다른 하나는 종전선언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약속했던 부분"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북한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지난 7월 담화에서 연합훈련 취소를 요구한 데 이어 지난 9월 담화를 통해 조건부 종전선언을 거론했다며 "싱가포르 회담을 추인한 미국에 공개된 부분(합의)만 추인한 것인지 이면합의까지 추인한 것인지 묻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합의 당사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조차 이행하지 않은 이면합의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용인할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019년 6월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 당시에도 김 위원장에게 연합훈련 취소를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해 가을 훈련은 진행됐다.
김 교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7년 말부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및 핵실험 중지 약속을 지키고 있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정상으로서 두 가지 사안에 대해 합의한 만큼 미국이 들어줄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4년 가까이 미국을 겨냥한 군사행동을 삼간 만큼 그에 상응하는 미국의 보상, 즉 선제적 제재완화 등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미국은 '조건 없는 대화'에 북한이 호응하길 바란다며 대화재개를 위한 유인책에 거듭 선을 긋고 있다. 이란핵합의(JCPOA) 등 전 세계 각국과 협상을 벌여야 하는 미국으로선 북한에 대한 선제적 양보가 '나쁜 선례'로 남을 수 있어 원칙론을 견지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김 교수는 미국에 싱가포르 이면합의 추인을 요구하고 있는 북한이 조건부 종전선언을 내세워 문재인 정부의 대미 외교력을 시험하고 있다는 평가도 내놨다.
그는 "종전선언은 아주 애매한 것"이라며 "한미 해석이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체제 '출발'이라는 입장이지만, 미국은 '출구'로 간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선언 이면합의 이후 △정전체제 무력화 △주한미군 철수 등을 우려하는 미국 내부 반발에 직면해 관련 논의에 적극성을 띠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정은 위원장이 우리 특사들에게 '종전선언을 하더라도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미국의 우려를 해소했음에도 종전선언이 안 됐다"고 강조했다.
이렇듯 종전선언 성사를 위해선 워싱턴 조야의 뿌리깊은 '대북 불신'을 해소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최근 김여정 부부장의 조건부 종전선언 수용 입장이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는 평가다.
김 교수는 김 부부장이 최근 발표한 담화를 통해 종전선언 가능성을 시사하면서도 주한미군 철수 등을 언급해 "가시를 넣었다"고 지적했다. 종전선언 '출구' 성격을 띠는 미군 철수 문제를 전제조건, 즉 '입구'에 내걸어 논의 진척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비약일지 모르겠으나 미국이 '종전선언을 할 경우 북한(김 부부장) 발표대로 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느냐'고 우리나라에 이야기할 것 같다"며 '미국 설득 가능성'에 대해 "김여정 부부장이 우리를 테스트하고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