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인질'의 히든카드 김재범, 진가는 이제부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1.08.30 08:33
수정 2021.08.29 15:33

1000대 1 캐스팅 둟고 최기완 역 낙점

데뷔 18년 차 배우


김재범은 2004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해 총 80여 작품의 뮤지컬과 연극 무대에 올랐다. 무대 위에서는 주연을 맡아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인지도가 높았지만, 스크린에는 영화 '마차 타고 고래고래'와 '데자뷰' 두 번 밖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이 경력은 황정민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새로워야 했던 '인질'에서 김재범을 최기완으로 살게 했다. 많은 경험을 통한 연기력과 신선한 마스크. 필감성 감독과 황정민이 놓칠 리 없었다.


'인질'은 어느 날 새벽, 증거도 목격자도 없이 납치된 배우 황정민(황정민 분)의 이야기를 담은 액션 스릴러다 김재범은 인질범 조직의 리더 최기완으로 등장한다. 10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인''인질'에 캐스팅 됐다. 뛰어난 캐릭터 소화력으로 황정민의 관록에 지지않는 에너지로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평이다.


김재범은 '지하철 1호선' 공연으로 인해 친분을 맺은 황정민의 추천으로 '인질'의 오디션에 참여하게 됐다. 지난날의 경험을 통해 기대가 높을수록 실망이 크다는 걸 체감했기에 이번에도 역시 큰 기대를 갖고 있지 않았다.


"오디션은 엄청난 기대감을 가지고 임하면 허탈함과 상실감이 커서 될 거란 생각을 잘 안 해요. 불합격하는 게 당연한 거라는 생각으로 가죠. 안 그러면 버틸 수가 없어요. 1차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2차에 갔는데 정민이 형이 계시더라고요. 대사도 편하게 맞춰주셔서 점점 내가 이 팀에 합류돼 함께 연습하고 있단 느낌을 받았아요."


'인질' 캐스팅 합격 통보를 받고 김재범은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영화 프로모션 특성상 황정민 외 다른 배우들은 공개하지 않는단 방침에 따라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가족뿐이었다.


"영화 출연 사실을 부모님과 아내에게 바로 알렸는데, 그게 끝이었어요. 하하. 다른 사람에게 말은 못 하고 아내에게 했던 이야기 또 하고 또 하고 그랬죠. 지금은 속 시원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 기쁘네요."


앞서 언급했듯 무대 연기에는 익숙했지만 영화 연기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다. 국내 톱배우 황정민 주연 영화에 그와 맞대결을 펼치는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아 열정과 의지는 넘쳤지만 혹시라도 민폐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앞섰다.


"잘 알지 못하는 영화 연기에 대한 부담감이 컸어요. 무대는 18년째 오르다 보니 어떻게 하면 내가 잘 보일지 알고 있는데 영화는 그게 부족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부담을 전혀 느낄 필요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나 혼자 하는 게 아닐뿐더러 주위에 많은 분들이 도와주고 조언해 주셨어요. 내가 왜 걱정했지 싶더라고요."


최기완은 황정민을 납치하는 납치범들의 우두머리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팀원들에 대한 의리와 죄책감도 없다. 네 명의 빌런들이 모두 각자 다른 모습으로 긴장감을 만들어내야 했기에, 김재범은 그 점에 주목했다.


"'내가 빌런 대장이니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모든 걸 다 보여주리라'라는 마음이었거든요. 그런데 나 혼자만의 작품이 아닌 5:1의 쌍무이잖아요. 다섯 가지 힘이 하나로 뭉쳐야만 힘을 발휘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빌런 캐릭터들과 차별을 뒀어요. 특히 2인자의 염경훈과는 성격이 확 달라 보여야 했죠. 염경훈이 불같고 동적이라면 저는 서늘하고 정적으로 연기하려 했어요."


김재범은 최기완을 체화하기 위해 범죄자 다큐멘터리나 프로파일링 등이 범죄 심리를 분석한 영상을 자주 찾아봤다. 보통 캐릭터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자신과 비슷한 것들을 찾아내기도 하지만, 최기완만큼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최기완의 자존감은 근본이 없어요. 그는 그냥 그런 사람인 거죠. 최기완을 연기하려고 파면 팔 수록 '내가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되는구나'란 생각을 많이 했어요. 범죄자를 일반 상식으로 이해하기 너무 어렵더라고요. 모든 걸 내 기준으로 두면 안 되겠다도 느꼈죠. 내 기준이 아닌 그들의 생각으로 캐릭터에 접근해보려고 했어요."


최기완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다. 특히 싸늘한 눈빛이 긴장감을 조성하는데 한몫했다. 김재범은 어려서부터 지적받았던 자신의 삼백안이 이번엔 도움이 됐다고 웃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데 눈이 일반적이지 않단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학생 때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지나가길래 그냥 쳐다봤는 데 화를 내시더라고요. 그땐 이유를 몰랐는데 자라면서 알았죠. 제가 눈동자가 작아서 그냥 바라만 봐도 째려보는 눈빛처럼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딱히 어떻게 바라봐야겠다고 계산을 하거나 하진 않았어요. 눈빛이 많이 무서웠다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좋은 게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결론적으로는 좋은 점으로 적용했네요."


황정민과 필감성 감독은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기 앞서 김재범을 비롯해 류경수, 이호정, 장재원, 이유미 등과 함께 모여 한 공간에서 연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러 번 합을 맞추고 조율을 했기 때문에 촬영이 시작된 이후, 큰 이견이나 다른 해석 없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저에게는 굉장히 익숙한 방법이라 좋았어요. 공연은 같이 모여서 리딩하고 대화를 하면서 만들어가거든요. 촬영 전에 이 과정이 있다는 게 감사했어요. 이 캐릭터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다른 빌런들과의 차별점을 어떻게 둬야 하는지 등등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그런데 저는 안타깝게도 밖으로 나가서 일을 꾸미는 촬영들이 많아 다른 친구들이 정민이 형을 때리고 목을 조르는 장면들을 마음 졸이며 지켜봤어요.(웃음) 정민이 형이 괜찮으니까 있는 힘껏 때리는 연기를 하라 하더라고요. 서로에게 도움이 됐던 과정이었어요."


18년 동안 연기를 해오며, 이제 그는 공연 외에도 매체 연기를 통해 대중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매번 캐릭터로 보일 수 있는 변화무쌍한 배우 김재범으로 인식되고 싶다.


"오디션을 많이 보지도 않았고, 보게 돼도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무작정 연기가 좋아 무대 위에서 시작했는데, 그 매력에 푹 빠져버렸죠. 무대가 좋으니 다른 곳을 둘러볼 여유나 기회가 적었어요. 이제는 기회가 된다면 무대와 영화 등을 가리지 않고 연기하고 싶어요."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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