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기업 코스프레 경연장이 될 조달시장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1.08.28 08:10
수정 2021.08.26 10:24

與 대선주자, 'ESG 4법' 국정운영 의제로 제시

연기금 운용·공공기관 경영·공공조달에 ESG 반드시 고려

ESG, 정부주도 땐 경영간섭 우려

제21대 국회에서 권력을 움켜쥔 민주당은 ‘3종세트 법률’에 재미를 붙인 모양이다. 이들 3종세트 법률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우리 생활 곳곳에 스며들었다.


‘공정경제 3법’으로 포장된 ‘기업규제 3법’ ‘부동산 임대차 3법’으로 알려진 ‘부동산 벼락거지 3법’, ‘상생연대 3법’으로 포장된 ‘상생강요 3법’이 민주당이 만든 대표적 3종세트 법률들이다. 3종세트만 있는 줄 알았더니 이젠 4종세트가 나오게 생겼다. ‘ESG 4법’이 그것이다.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전 민주당 대표는 지난 8월 4일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투자를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이른바 ‘ESG 4법’을 대표 발의했다. 공공기관운영법, 국가재정법, 국민연금법, 조달사업법에 ESG요소를 반영·강화하는 내용이다.


언론들은 “기업경영과 자본시장에서 화두로 떠오른 ESG 이슈를 선점해 자신의 경제슬로건인 ‘신경제’를 부각시키겠다는 의도”로 풀이했다. 다분히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법률이라는 뜻이겠다. 정치와 경제의 길은 다른데, 정치가 경제를 인질로 삼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내용을 보니 모두 ESG요소를 고려하여야 한다는 ‘의무’ 뿐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그렇듯이 ESG도 기업의 자발성에 기초를 두어야 실효성이 있다. 법률로 억지로 강요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많은 기업들이 ESG의 중요성을 알고 있고, 기업의 미래를 걸고 ESG 구축을 위해 절박하게 뛰고 있다. 그것으로 이미 충분한데, 무리한 입법 아닌가. 특히 문제되는 법안은 ‘조달사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다.


현재 공공 조달 시 기업의 ESG 준수 여부 등 반영은 조달청의 재량사항이다. 그런데 조달사업법 개정안에 따르면 공공 조달 시 기업의 ESG 준수 여부 등의 반영을 의무화하고 있다.


국내 시장이 좁아 관급공사 또는 관급사업에 기업의 사활을 걸어야 할 한국기업의 처지에서, 관급공사 입찰탈락은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다. 관급공사를 수주하기 위해서는 기업으로서는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앞으로는 ESG에 열중할 수밖에 없다. 그럼 ESG 점수를 어떻게 높일 수 있나?


전 민주당 대표의 과거 발언을 소환해 보자. 그는 지난 1월 28일 “이익공유제·사회연대기금의 형성에도 ESG 평가를 통해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 투자 여부를 결정하거나, 공공조달에 반영하거나 하는 (식으로) 유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답이 있다.


사회연대기금 등 기금에의 출연이 ESG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다. 때마침 지난 2월 26일 민주당 유동수 의원이 ‘사회연대기금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국무조정실장의 허가를 얻어 ‘사회연대협력재단법인’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이 재단은 법의 목적 달성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ㆍ공급하기 위하여 ‘사회연대기금’을 설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사회연대기금은 ‘정부 외의 자’가 출연 또는 기부하는 현금이나 물품, 그 밖의 재산으로 조성하도록 되어 있다. ‘정부 외의 자’의 기부란 기업의 기부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이 이들 기금에 출연하면 당연히 ESG 중 S(social·기업의 사회적 책임 점수) 부분에 높은 점수를 받게 되겠지만, 기부에 참여하지 않은 기업들은 S점수가 낮게 나올 수밖에 없다.


의무반영사항인 ESG 총점이 낮게 나오면 위 조달사업법 개정안에 따라 정부조달 입찰 자격이 없어지거나 낮은 점수로 입찰에서 탈락할 수 있다.


상생연대기금만이 아니다. 이미 주요 기금으로 농어촌상생협력기금, 과학기술진흥기금, 국민체육진흥기금, 근로복지진흥기금, 남북협력기금, 대외경제협력기금, 문화예술진흥기금, 양성평등기금 등 수십 가지나 있다.


이들 기금은 모두 정부 외의 자의 출연으로 조성하도록 되어 있다. ESG를 구실로 자발적 기부로 포장된 기부금 강요가 횡행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앞으로 또 어떤 기금이 만들어질지 누가 아는가. 이런 기금들에 기부하면 사회공헌이라 해서 ESG 점수가 높아지고, 높은 ESG 점수는 조달사업에 진입하기 위한 수단이 될 터이니, 기부금 출연은 세금보다 더 무서운 준조세가 된다.


국민 세금으로 이루어진 조달대금을 좋은 일 한 기업에게 쓰자는 것은 얼핏 보면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달물품은 품질이 우선되어야 한다. ESG를 강조하다보면 기금출연이 강요되고, 조달시장에서 품질이 아닌 누가 더 착한기업인가 여부로 평가받을 우려가 크다. 기업은 겉으로 보여지는 이미지에 집착하게 되고 조달시장은 착한기업 코스프레 경연장이 되고야 말 것이다.


글/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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