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배우발견②] 유재석 후배? 배우라니까!…‘런닝맨’ 하차 굿!(싱크홀)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입력 2021.08.15 09:49
수정 2021.08.19 16:43

지난 2010년 7월 방영을 시작해 10년이 넘도록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SBS 예능 ‘런닝맨’을 시청하다 보면 이광수의 정체성을 놓고 유머 소재로 활용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방송인을 넘어 개그맨이라 부르기도 하고 ‘유재석의 후배’라는 거부하기 힘든 수식어로 ‘개그맨 도장’을 찍으려는 도발들에 TV 안의 출연진도 밖의 시청자도 웃는다.


이광수가 기린 같은 외형에 배신의 아이콘을 더해 국내는 물론이고 ‘아시아의 프린스’가 된 것은 사실이다. 아시아 각국의 공항에 이광수가 도착하는 장면, 마중 나온 인파가 그의 방문을 열렬히 환호하는 모습을 볼 때면 ‘그래, 이광수 런닝맨 출연 잘했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상상 이상의 인기와 부를 가져다준 ‘런닝맨’을 이광수는 지난 6월 하차했다. 지난 2월 교통사고로 오른쪽 발목 골절을 당해 철심을 박았음에도 수술 2주 만에 다시 ‘런닝맨’에 복귀했고, 프로그램 특성상 몸을 돌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철심 제거 수술을 받는 이참에 제대로 재활에 집중하겠다는 게 이유였다.


이유는 재활과 자기관리였지만, ‘이제 개그맨이 아니라 본업인 배우로 복귀하고 싶습니다’라고 밝힌 적 없음에도 개인적으로 두 손을 들어 환영했다. 당연히 신체의 기능을 원활히 하는 것도 중요하고, 10년을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소진된 연예인으로서의 에너지와 매력을 재충전하는 자기관리의 쉼표도 필요한 시기였지만, 좀 더 많은 작품에서 ‘배우 이광수’를 볼 수 있겠구나 싶은 기대감에서 비롯된 반가움이었다.


이광수의 ‘런닝맨’ 하차를 반긴 이유는 사실 아주 간단하다. 이광수가 좋은 배우이기 때문이다. 작품에 임하는 자세가 진지하고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열정이 커서 어느 배우보다 성실하게 자신의 역할에 집중해서 연기했다는 게 스크린에서 보인다. 차기작이 기다려지는 배우인데 하나의 작품이 끝나면 그는 항상 ‘런닝맨’으로 돌아갔다. 예능이 ‘친정’처럼, 배우가 ‘여행’처럼 굳어지는 상황이 팬으로서 아쉬웠다.


‘런닝맨’ 출연 직전까지 봤던 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 인나를 연기하는 배우 유인나와 함께 마찬가지로 광수라는 이름을 쓰며 커플로 등장했을 때, ‘어디서 저런 독특한 배우가 나왔나, 참 열심히 한다’ 싶어 눈에 확 띄었다. 그 뒤로 생각보다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조연으로 등장했고 배우 일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음에도, ‘런닝맨’이 가져다준 ‘배신의 아이콘’이라는 지배적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인지 웬만한 연기를 해서는 기억에 남지 않았다.


이광수가 배우임을 잊으려야 잊을 수 없고,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 없는 캐릭터를 지난 2014년 만났다. 영화 ‘좋은 친구들’(감독 이도윤). 배우 이광수는 주지훈과 짝을 이룸에 있어 너무 자연스럽게 잘 어울렸고, 지성과 주지훈과 둘도 없는 ‘세 친구’로 어깨를 나란히 해도 손색이 없는 연기를 펼쳤다. 모든 비극이 내 입방정이 부른 참상인가, 내 판단 착오로 인한 재앙인가 싶어 울부짓던 민수. 한 치의 예능 기운도 묻어 있지 않은 정극 연기를 훌륭히 소화했다.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감독 육상효)에서의 연기도 일품이었다. 마음도 착하고 수영도 잘하는 동구는 머리는 비상하지만 몸을 쓸 수 없는 형 세하(신하균 분)의 손과 발이 되어 준다. 친형제도 아니면서 ‘책임의 집’이라는 민간 보호시설에서 함께 자란 사이면서, 세하가 너무 동구를 이용하는 게 아니냐는 비난을 부를 만큼 동구는 헌신적이어야 했고 동시에 동구의 진심과 자청에서 비롯된 ‘협업’이었음을 진심으로 설득해야 하는 연기였는데, 배우 이광수는 해냈다.


개봉 당시 기준으로 ‘9년 차’ 런닝맨이었던, 보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는 예능인이 지적장애를 지닌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베테랑 예능인 이광수에게서 풍기는 웃음기를 제대로 지우지 못하면 자칫 ‘희화화’의 우를 범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영화 초반, 관객이 런닝맨 이광수를 지우고 배우 이광수, 동구 이광수를 얼른 받아들여야 그다음으로의 진행이 가능하기에 배우 이광수의 어깨가 무거웠다. 괜한 걱정이었다. 이광수의 정체성은 배우임을 확인시킨 또 하나의 작품이 됐다.


솔직히 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감독 권오광)에서의 연기는 아쉬웠다. 배우로서 중단 없이 매진해 오지는 못한 탓에, 본연의 선함과 유쾌함을 벗어난 이질적 캐릭터에 관한 공부와 연습이 더 필요해 보이는 연기였다. 배우로서 쉽지 않은 결정인 노출의 보람도 찾을 수 없어 안타까웠다. 그래서 더욱 기다려졌다, 차기작이.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영화 ‘싱크홀’(감독 김지훈, 제작 ㈜더타워픽쳐스, 배급 ㈜쇼박스)의 김승현 대리는 이광수를 위해 태어난 캐릭터다. 박동원 과장(김성균 분)이 이끄는 영업 2팀의 에이스로 위도 챙기고 아래도 살피며 중간자 역할을 무척 잘하는 유연한 인물인데, 차도 없고 집도 없어 짝사랑하는 동료에게 고백조차 못 하는 쑥맥 기질도 함께 지녔다.


김 대리가 본래 내 앞가림에 충실한 얄미운 캐릭터였다는데, 그렇게 많은 장면을 촬영도 했다는데 편집됐다. 김지훈 감독의 ‘신의 한 수’이다. 좀 어리바리 행동하는 어리보기였던 남자가 집들이 간 상사 박 과장의 집과 함께 지하 500m로 추락한 뒤, 재난 상황을 겪어 내며 점차 성숙해가는 현재의 모습이 배우 이광수를 위해서도 영화를 위해서도 제격이다.


심지어 ‘싱크홀’의 김 대리는 굳이 ‘런닝맨 끼’를 발라내지 않아도 되는 캐릭터다 보니, 영화 자체가 드라마와 코미디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유쾌한 ‘재난버스터’이다 보니, 배우 이광수는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헤엄친다. 박동원에게 코드를 맞추다가도 입바른 소리도 하고, 인턴 사원 홍은주(김혜준 분)를 구박하다가도 살뜰히 챙긴다. ‘싱크홀’의 러브라인도 이광수에게 맡겨졌는데, 훈훈하게 잘 구워냈다.


주지훈, 신하균, 김성균. 배우 이광수와 함께한 세 배우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배우로서 성실하다, 진지하다, 열심이다. 예능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임하는 태도부터 진짜 배우다. 그리고 좋은 사람이다. ‘나의 특별한 형제’를 함께한 배우 신하균에게 물었다, 이광수는 배우로서, 파트너로서 어떤가요.


“아무리 적게 칭찬하려 해도 부족해요. 저에게는 배우 이광수로 완전히 각인됐고요. 집중력, 몰입도 강해요. 준비성, 성실합니다. 표현력, 아주 표현을 잘해요. 모든 게 배우로서 너무 좋은 걸 가지고 있어요.”


“하나의 이야기를 위해 모인 사람들인데 광수와는 현장에서 좋았기 때문에 사적으로 친해진 부분도 있어요. 저보다는 동구의 감정이 중요한 영화라고 생각했고, 동구가 감정 잘못 타면 자칫 다른 길로 갈 수 있는데 그걸 적당히, 잘 가더라고요. 그래서 관객분들도 눈물 흘리실 수 있는 것일 테고요. 현장에서 그걸 먼저 봤죠, 그러면 저도 긴장하는 거죠, 더 잘해야겠다. 좋은 배웁니다, 앞날이 더 기대되는.”


‘싱크홀’ 현장에서 감독 김지훈이 가장 많이 부른 이름은 이광수였단다. “광수, 이광수”, 칭찬을 독차지한 배경에는 현장에서 휴대전화를 꺼내지 않는 태도도 큰 몫을 했다. 배우 김성균은 “휴대전화를 절대 꺼내지 않더라, 앉아서 늘 대본을 보고 있어서 감독님께서 비교를 많이 당했다(웃음). 나도 숨어서 휴대전화를 봤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관한 이광수 본인의 변은 이렇다.


“현장에서 휴대전화 안 보는 걸로 감독님도 칭찬을 많이 해 주셨어요. 촬영하지 않을 때도 스태프분들은 무언가 준비를 하고 있는데 배우가 딴짓하는 것보다는 같이 이야기라도 나누는 게 함께하는 느낌이 들 거라 생각했어요. (현장에 집중하니) 연기할 때도 더 큰 도움을 받는 것 같습니다.”


“원래 현장에서 휴대전화를 잘 안 보는 편이긴 한데, 초반에 감독님께서 ‘광수가 현장에서 휴대전화 보는 걸 못 봤다. 감독으로서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반강제적으로 볼 수가 없게 됐어요(웃음). 솔직히 몇 번 봐야만 하는 상황도 있었는데 감독님의 그 말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휴대전화를 주머니에서 꺼낼 수가 없었어요. 이걸 해명하지 않으면 저는 앞으로도 평생 현장에서 휴대전화를 못 볼 것 같은데, 오해가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하.”


휴대전화를 열지 않는 배경에도, 칭찬 세례가 이어지자 한 발짝 물러서는 태도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시대 젊은이들의 ‘짠 내’ 나는 애환을 유쾌하게 또 희망차게 그려낸 배우 이광수의 ‘싱크홀’. 순전히 개인적 바람이지만 포털사이트 ‘런닝맨’ 고정 출연진에 아직도 올라 있는 그의 이름이 지워지길, 배우로서의 길에 집중하는 이광수를 보고 싶다. 적어도 배우 이광수에 대한 이 갈증이 풀릴 때까지는.


왜, 배우 이광수 안에는 아직 분출하지 않은 마그마가 그득하고 꺼내 보일 새 얼굴들이 있으니까.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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