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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결정적 장면①] 깻잎장아찌가 뭐라고 눈물이…(모가디슈)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입력 2021.08.02 14:14 수정 2021.08.02 13:53

눈빛을 주목하게 하는 배우 김소진. 영화 '미성년' 스틸컷 ⓒ㈜쇼박스 제공

심금이라는 단어가 있다. 마음속 거문고. 외부의 자극에 따라 미묘하게 움직이는 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표현이다. 외부의 자극, 마치 연주자가 거문고를 타는 것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내듯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심금을 울리다’라는 말이 있다. 마음의 거문고가 무엇인가에 반응해 울렸다는 얘기다. 흔히 배우의 연기나 가수의 노래가, 연출로 완성된 장면과 무대가 우리 마음을 건드려 감동했을 때 쓴다. 연주자는 같아도 사람마다 마음의 거문고는 공명 정도가 달라서 누구는 울리는데 다른 이는 울리지 않기도 하고, 울릴 때도 서로 다른 곡조가 나온다.


배우 가운데 유난히 심금을 울리는 이들이 있다. 그것이 연기력 판단의 유일한 기준도 아니고 가장 중요한 기준도 아니지만, 심금을 울리는 배우에게는 특별한 무엇이 있다. 깊은 진심이 있고, 진심을 전할 줄 아는 표현법이 있고, 진심을 우리 마음 깊숙이 전달해 거문고를 켤 줄 아는 재능이 있다.


개인적으로 나의 마음속 거문고는 여자 배우 가운데 김혜자, 배두나, 정유미, 이정은의 연주(공명한 기억의 순서에 따른 호명)에 소리를 낸다. 더 많은 배우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그렇다. 김소진 배우도 그중 한 명이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하정우 주연의 영화 ‘더 테러 라이브’(감독 김병우)에서 테러 현장을 전하는 방송기자로 처음 보았는데, 눈에 확 띄었다. 어, 누구지? 무슨 신인이 저렇게 연기를 잘해? 신인도 당연히 연기 잘하는 배우 많다. 하지만 작품에 출연해 본, 카메라를 거쳐 대중 앞에 서 본 경험의 양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잘하는 연기를, 몇 번 해본 적 없음에도 펼쳐낼 수 있다면 그게 대단하고 놀라운 거다.


김소진에 의해 내 마음의 거문고가 요동친 기억 중 하나는 영화 ‘미성년’(감독 김윤석)에서다. 미희는 딸 하나 데리고 오리백숙 집을 운영하는 사장이다. 열아홉 나이에 아이를 낳아 혼자 키워온 당차고 똑 부러지는 성격의 그녀, 대원(김윤석 분)의 사랑 속에 늦게나마 볼 빨간 청춘을 보내고 있다.


영화 '미성년' 스틸컷 ⓒ㈜쇼박스 제공

그런데 대원이 유부남이다. 십수 년 전 무책임한 남자로 인해 미혼모가 됐던 미희는 이번에도 전화기 너머 착잡한 목소리의 대원에게서 무책임을 당한다. 그저 태중 아이를 생각해 악착같이 생부를 잡으려는 엄마의 모습이 아니라 다시 한번 무책임한 사랑에 무너지는 여자의 가슴이 심금을 울린다. 어린 나이에 윤아(박세진 분)를 키우기도 했는데, 삼십 대 후반의 나이에 아이 혼자 키우는 게 겁나는 미희가 아니다. 그저 마음 하나 외엔 바란 게 없었는데도 떠나가는 사랑에, 남자의 사랑과는 인연이 먼 인생에 삶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이다.


그 무너짐을 김소진은 숨죽여 처절하게 연기했다. 발광이 아니라 안으로, 가슴속으로 절망을 끌어안고 폭발한다. 어떠한 아우성보다 아프다. 뜨거운 연기보다 큰 감동을 차가운 연기로 맛볼 수 있다.


목숨을 건 탈출, 버금가는 긴장감을 선사하는 깻잎장아찌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김소진이 김윤석과 다시 호흡을 맞췄다. 영화 ‘모가디슈’(감독 류승완, 제작 덱스터스튜디오·㈜외유내강,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에서다. 우습다 할 수 있는 감상 포인트인데, ‘미성년’에서 못다 이룬 사랑을 ‘모가디슈’에서 부부의 연으로 한을 푼 것 같아 흐뭇했다. 그것도 그냥 부부가 아니라, 조용히 그러나 살뜰히 서로를 챙긴다. 주 소말리아 한국대사의 아내 김명희는 어떠한 순간에도 남편 걱정에 여념이 없고, 남편 한신성(김윤석 분) 역시 다감한 손길로 아내의 안전을 우선한다.


동시에 김명희 여사는 마치 본인이 절반의 대사인 듯 대사관 식구들을 통솔하고, 호스트로서 한국대사관을 찾은 북한 대사관 일행을 손님으로 극진히 대접한다. 품행이 가지런하고 우아하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손질하지 않은 파마머리 정도는 김명희의 기품을 앗지 못한다. 김명희를 연기하는 김소진의 아우라면 충분하다.


신파 없는 역사에 류승완 감독의 전공과목 액션을 더한 블록버스터 ‘모가디슈’에서, 억지로 감동과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 ‘모가디슈’에서 그래도 눈물을 참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북한대사 부인 배영숙 여사(박명신 분)와 남한의 김명희 여사가 어우러진 장면으로, 배우 김소진과 박명신의 합주가 심금을 울린다. 탈출 액션의 쾌감, 신선한 형태의 카체이싱 못잖게 영화 ‘모가디슈’를 빛내는 장면이다.


한국대사관에 온 손님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식량이 부족하고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은 가운데 정성으로 마련한 밥상, 남과 북이 다 같이 둘러앉은 밥상이다. 김명희 여사는 손님 쪽으로 좋은 반찬을 밀고, 한신성 대사는 밥 한술 뜨는 것으로 어색함을 물리고 허기진 배를 달래는 식사의 시작을 알린다.


밥 먹는 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김명희 여사가 본인 앞쪽의 깻잎장아찌에 젓가락을 댄다. 누구나 그렇듯 깻잎 꼭지를 집는데, 흔히 그렇듯 잘 떼어지지 않는다. 그때, 반대편에서 조금 멀리 팔을 뻗어 깻잎장아찌 바로 아래 장의 꼭지를 잡아주는 이가 있다. 배영숙 여사다. 김명희가 들어 올리고, 배영숙이 잡아준다. 남이 끌어올리고, 북이 눌러 받친다. 서로 힘의 방향을 반대로 하는데, 그게 서로를 돕는 결과가 되다. 남과 북이 원래 어떤 사이였고 어떤 관계여야 하는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김명희와 배영숙의 평범한 인간적 배려가 남북의 합심으로 읽히는 의미가 부여되는 것은 시나리오에서 출발한 류승완 감독의 기막힌 연출이 빚어낸 결과다. 그런데. 별것도 아닌 일상 행동이 뭐라고, 깻잎장아찌가 뭐라고, 대사 한 마디 없는데 눈물이 나는 건 두 배우의 눈빛 연기 덕이다. 특히 우리영화다 보니 대한민국 대사 부인의 얼굴에 카메라가 좀 더 오래 머무는데, 김소진 배우 특유의 심금 울리기 신공, 깊은 눈빛이 빛을 발한다.


깊은 눈빛으로 심금을 울리는 배우 김소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장면에 대해 김소진은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알 수 없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던 기억입니다. 정확히 그 감정이 무엇이었다라고 단정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다만 분명한 건, 어떤 이데올로기를 떠올리지 않았어요. 사람 대 사람, 그저 그 사람을 바라보았고 그 안에서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소통을 하려 했습니다.”


내가 먹고자 하는 깻잎을 잘 뗄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 그저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사람과 사람의 합심. 그 순간 배우 김소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소통을 다 했다. 그리고 우리는 형언하기 힘든 복잡하고 깊은 눈빛, 그러나 따스한 것만은 분명한 눈빛을 보게 됐다. 진심은 통한다, 김명희와 배영숙 사이에도, 배우들과 나 사이에도, 영화와 관객 사이에도.


생각과 감정을 글로 적는 걸 직업으로 한 사람이 참 부족하고도 무책임한 얘기지만, 왜 눈물이 났고 멈추지 않았는지 정확히 표현하기 어렵다. 분명한 건, 마음의 거문고가 반응했다는 것이고 뜻하지 않은 배영숙의 행동에 반응하는 김명희의 눈빛이 잊히질 않는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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