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①] 4차 혁명·코로나가 몰고 온 ‘공짜 돈’ 논쟁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입력 2021.08.10 07:04
수정 2021.08.09 17:13

재난지원금과는 다른 기본소득

4차 산업혁명 시대 필요성 제기

찬·반 넘어 우리 사회 화두 될 것

정치·경제 전문가들이 수십 년 갑론을박을 이어온 기본소득이 최근 다시 화두가 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모두 다섯 차례 재난지원금을 경험하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진 탓이다. 특히 내년 대선을 앞둔 후보들이 관련 공약을 내놓고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짜’라는 차원에서 재난지원금과 기본소득은 유사한 모습이라는 시각이다. 동시에 명확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더불어 4차 산업혁명이 속도를 높이고 이에 따라 산업 구조가 급변하는 지금이야말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재난지원금과 무엇이 다르고 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보편적 복지인 기본소득이 논란이 될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개념부터 살펴봐야 한다.


기본소득, ‘경제적 자유’를 위한 도구

홍기빈 전환사회연구소 공동대표는 국제기본소득연구자네트워크 창시자이자 대표 이론가인 할 필리프 판 파레이스(벨기에 루뱅대학교 교수) 주장을 바탕으로 기본소득을 ‘모든 이들에게 실질적인 자유를 제공하게 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홍 대표는 “기본소득은 궁핍에 처한 이들을 사회가 돕는다는 도덕 경제 원리를 배경으로 한 공공부조(public aid)와 다르며 수혜 당사자들이 미래에 당하게 될 각종 리스크를 공유하기 위해 마련하는 사회보험과도 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말 그대로 모든 이들에게 실질적 자유를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개념의 사회정책 범주”라고 정의했다.


홍 대표가 말하는 자유란 일자리로부터의 자유, 즉 경제적 자유를 의미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로봇과 기계 등이 사람 일자리를 대신하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유사한 개념으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BIKN)은 기본소득에 대해 “기본소득은 보편적 복지이자 그 이상”이라며 “모든 구성원의 적절한 삶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보편적 복지이고 단순한 재분배정책이 아니라 사회적, 생태적 전환의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이행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정리하자면 기본소득은 갈수록 심화하는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사회 구성원의 생활을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회보장체제다. 국가가 국민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조건 없이 지급하는 소득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기본소득은 보편·무조건·개별·주기·현금성이라는 5대 원칙을 모두 갖춰야 한다. 누구에게나(보편적으로) 조건 없이 지급하며, 개인에게 주기적으로 현금 지급해야 제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재난지원금과 다른 점이다. 우리가 경험한 재난지원금은 1차 경우 보편적(전 국민)으로 지급했지만 5차는 선별 지원했다. 소상공인 지원금도 모두 선별이다. 소상공인 재난지원금은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경우’라는 조건까지 달렸다. 무엇보다 일회성 지급이라는 게 기본소득과 가장 큰 차이다.


기본소득은 어디서, 왜 탄생했을까?

BIKN은 기본소득 개념이 경제체제의 운영 방식이 보이는 한계로부터 출발했다고 주장한다. 세계적으로 보면 1980년대 이후, 한국에서는 1997년 이후에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에 따른 불안정노동체제와 금융시장 자본주의의 본격화가 기본소득에 관한 관심을 높이게 만든 계기라고 설명했다.


BIKN은 “불안정노동체제는 비용 절감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기업의 전략 속에서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뿐만 아니라 고용 불안에 시달리며, 다른 한편으로 아예 일자리가 없어서 삶의 불안에 시달린다”며 “여기에 더해 기계화와 자동화가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고 말했다.


결국 노동 시장의 불안이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는 뜻이다. 이는 홍기빈 대표가 말한 일자리로부터의 자유와 비슷한 맥락이다. 일자리 위기를 겪는 노동자들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해 그런 위협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BIKN은 1980년대 이후 기본소득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했다고 설명한자. 혹자들은 이보다 앞선 1962년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부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를 꼽는다.


당시 프리드먼은 시장 질서 유지와 국가 운영 효율성을 들어 기존 사회복지제도를 철폐하고 부의 소득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리드먼 주장은 1970년대 유럽으로 전파됐는데 활발한 논의로 이어지진 않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기본소득이 떠오르는 이유

프리드먼 시대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다시 기본소득이 부상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을 꺼내 든다.


이원재 LAB2050대표는 “기본소득제는 경제구조 전환을 염두에 두고 제안된 제도”라며 “생산 과정에서 노동의 역할 변화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자동화가 점점 심화하고 다양한 노동에서 인간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데에 대부분의 전문가가 동의한다”며 “그 변화 속도가 어떨 것인지 그리고 한국적 특수성이 얼마나 나타날 것인지가 문제”라고 덧붙였다.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 변화, 정확히는 인간이 담당할 일자리를 축소하면서 다시 기본소득이 재조명된다는 설명이다.


참여연대도 “예전 같으면 황당한 얘기쯤으로 취급받았을 기본소득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시대적 상황 때문”이라며 “날로 심해지는 불평등과 자동화·정보화·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줄어드는 일자리, 그리고 기후변화와 같은 생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이 바로 기본소득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참여연대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보고서를 인용해 4차 산업혁명으로 현존하는 직업의 47%가 사라질 것으로 예측했다. 호주의 청년 일자리 보고서는 현재 청년들이 진출하는 직업의 70%가 자동화에 의해 심각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바탕으로 제4차 산업혁명은 좋은 일자리와 나쁜 일자리로 구분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참여연대는 “인공지능, 로봇 설계와 관련된 분야 및 인공지능이 아직 침투하지 않은 분야는 좋은 일자리”라며 “다른 한편에서는 싼 임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의 나쁜 일자리로 나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본소득이 줄어든 일자리와 이에 따른 소득 감소를 보완하는 기능만 하는 건 아니라고 강조한다. 사람들에게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경제적 수단임과 동시에 인공지능과 로봇이 만든 생산물에 대한 소비를 촉진하는 기능도 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는 “4차 산업혁명 이후 로봇이 만든 물건을 누가 살 것이냐는 문제가 있는데 실업자, 비정규직, 자영업자들의 낮은 소득으로는 로봇이 만든 물건에 대한 수요가 부족하게 된다”며 "기본소득으로 소득을 높여주고 이렇게 높아진 소득은 수요를 증대 시켜 경제를 지속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기빈 대표가 말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 기본소득의 필요성도 마찬가지다. 홍 대표는 4차 산업혁명 시대 기본소득 논의가 활발한 이유를 3가지로 설명했다. 기술혁신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기보다 노동 자체를 소멸시키는 경향을 보이고 이는 일자리의 불안정성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홍 대표는 노동의 불안정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노동자에게 자신을 강화할 수 있는 ‘활동 자금’이 주어져야 하며 이것이 4차 산업혁명 시대 필요한 기본소득이라고 강조했다.


▲[기본소득②] 재원·역할·효율성…왜 찬성하고 무엇을 반대하나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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