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초점] “인맥 채용 이대로 괜찮나”…여전히 높은 영화계 진입장벽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1.06.22 13:52
수정 2021.06.22 13:56

인맥 통한 채용 해마다 증가 추세...지난해엔 50% 넘겨

"인맥 아닌, 공평한 구인구직 공고 이뤄져야"

영화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인맥으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물론 영화계뿐만 아니라 예체능계에선 다른 전공계열보다 상대적으로 인맥, 즉 선후배나 동료 등의 추천·소개로 발을 들이는 경우가 많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최근 내놓은 2020년 영화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이 같은 영화계 풍토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보고서에 따르면 스태프의 채용경로로 관련 ‘동료 또는 선후배를 통해’가 54.8%로 가장 많았다.


이어 ‘상급자의 결정·지시’에 따른 경우가 18.7%, ‘인터넷 등 온라인 광고를 통해’ 12.1%, ‘시나리오나 제작사, 캐스팅 등 세팅이 좋아서’ 4.8%, ‘오프라인 채용 광고를 보고’ 4.2% 등으로 뒤를 이었다. ‘가족 및 친인척을 통해’라는 응답은 1.8%였고, ‘영화스태프 직업교육을 통해’는 1.1%로 조사됐다. 기타의 내용으로 ‘학교추천’(교수)을 통해 작품에 참여했다는 응답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 보고서는 “스태프의 채용경로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가족 및 친인척을 통해’와 ‘동료 또는 선후배를 통해’ ‘상급자의 결정·지시에 따라서’라는 응답은 전체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나타냈다”며 “스태프의 작품 참여 경로, 즉 채용절차가 보다 투명하고 공개적인 방식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해당 보고서에선 ‘영화 스태프로서 근로조건 개선·직업만족도 향상을 위해 필요한 사항’이라는 항목을 통해 스태프들의 주관식 응답 내용을 실기도 했다. 여러 답변 중 눈길을 끈 건 “지인(인맥) 네트워크로 일을 하는 게 아닌 공증된 경력을 제시(확인)하고 능력 검증을 받아 능력 있는 스태프가 능력에 맞는 페이를 받고 능력 없는 스태프는 퇴출 되도록 시스템이 잘 도입되었으면”이라는 답변이다. 또 다른 응답자도 “인맥 타파. 정당한 경력 인정을 통한 영화 제작 전반의 불합리함과 불공정함 해소”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지난 3월 충북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집행위원장의 조카를 올해 2월 단기 계약직에서 상근직으로 특채하면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집행위원장의 친 조카인 A씨는 2015년부터 영화제 기간 3~5개월간 단기 계약직으로 근무하다가 삼촌인 집행위원장이 취임하면서 올해 정식 팀장급으로 임용됐다. 또 부집행위장의 여 조카인 B씨 역시 올해 초 서울 영화제 사무국 웹담당으로 보름간 출근하다가 부집행위원장의 조카인 것이 알려지자 스스로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영화 관계자는 “촬영 현장에 촬영팀과 제작팀, 조명팀 등 다양한 파트가 있다. 보통 팀원을 관리하는 감독들이 있는데, 새로운 팀원을 구할 때 지인을 통해 하는 경우가 많다. 직접 참여했던 프러덕션에서도 이와 같이 현장 스태프를 채용했다. 사실 업계 사람들은 ‘그게 왜?’라는 반응이다. 이런 인식들이 이미 만연한 상태라 영화계 입문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일자리 혹은 취업을 위한 공평한 구인구직공고와 열린 문이 필요하다. 주변사람의 소개가 아닌 이력서를 통한 정식 구인, 구직이 이루어져야 공평하다고 생각된다. 기회를 잡고 싶어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구인글을 올려도 결국 아는 사람을 통하여 인원을 보충하는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다만 현장을 관리하는 이들 입장에선 이런 지적 자체가 “현장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지적했다. 한 관계자는 “큰 규모의 영화제 등은 채용 기준의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공개 면접으로 채용 과정을 거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단발적인 프로젝트 성향이 강한 영화 촬영 현장 스태프의 경우는 항상 시간에 쫓기기 때문에 인맥 채용이 많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인맥 채용과 더불어 최근엔 영화 정보 사이트 등을 활용한 채용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통 급하게 사람을 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모르는 사람을 구하는 것보다 믿고 쓸 수 있는 지인 중 관련 능력을 갖춘 사람을 부르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당장 필요한데 이력서를 받고 면접을 보는 등의 채용과정을 거칠 수는 없는 노릇”라고 하소연했다. 결국 현 영화 현장에선 사실상 인맥 채용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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