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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식물 열풍③] 고수 마니아 아저씨의 도전, ‘아도겐 일기’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1.05.23 08:00
수정 2021.05.23 18:04

식목일부터 키운 고수, 한 달간의 성장 과정

4월 5일=식목일에 친구에게서 메시지와 함께 선물이 도착했다. ‘고수 키우기 키트’. 평소 고수를 즐겨먹는 나를 위한 친구의 선물이었다. 고맙기도 했지만, 고민이 됐다. 자칭 식물 ‘똥손’인 내가 이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자란다 한들 이 아이를 어떻게 먹지? 그래도 선물을 받았으니, 심어봐야지 결심했다. 씨앗을 심기도 전에 이름부터 지었다. ‘아저씨의 도전’이라는 의미를 담아 ‘아도겐’.


4월 8일=큰 마음을 먹고 ‘고수 키우기 키트’를 열었다. 작은 화분과 흙, 그리고 훗날 아도겐으로 성장할 씨앗들이 담겨 있었다. 식물을 심어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 하지만, 오늘 그 기억을 새로 써보려 한다. 그러고 보니 세상이 참 좋아졌다. 고수 씨앗을 선물할 수 있는 세상이라니. 흙을 화분에 3/4 담은 뒤, 고수 씨앗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놓았다. 그리고 다시 씨앗 위에 흙을 살짝 덮었다. 햇빛이 들지 않는 자취방에서 아도겐은 나에게 ‘생명의 기적’을 보여줄까?


4월 13일=‘아도겐’을 심은지 1주일이 지났다. 여전히 감감 무소식이다. 동네 술집 사장님이 고수 씨앗은 발아까지 시간이 꽤나 오래 걸린다고 하던데, 이럴 줄 알았으면 물 적신 휴지 위에서 발아시킬 걸 그랬나? 빛 한줄기 없는 이 방에서 온힘을 다해 싹을 틔울 아도겐을 위해 자연 조명도 구입했다. 자, 아도겐 힘을 내자. 흙을 뚫고 올라와!


4월 19일=한 생명을 키우는 건, 엄청난 책임감이 필요한 일이다. 혹시나 물을 너무 많이 줘서 싹을 틔우기도 전에 썩는 건 아닌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아도겐에게 다가가 물어봤다 “아직 살아 있는 거지?” 거의 보름 가까이 기척이 없던 아도겐이 흙 사이로 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아도겐이 드디어 발아했다!


4월 20일=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 없듯, 똑같은 식물도 없다. 같은 땅, 조명, 온도, 습도에서 자라난 고수 싹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기운이 없는 녀석들이 있다. 쭉 뻗을 힘이 부족했던 걸까. 땅으로 고개를 처박은 아이들. 유튜브에선 한 구멍에서 2개씩 싹이 자랐다면, 솎아내라고 한다. 모두가 쭉 뻗어 자랄 순 없지 않나. 물을 듬뿍 줬다. 당당하게 일어서는 그날까지!


4월 21일=싹을 틔울 때까지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더니 이젠 무섭게 자라난다. 흔히 쌀국수집에서 먹는 고수 잎을 상상했지만, 낯선 모습이었다. 4분 음표가 마주보고 있는 듯한, 통통 튀는 이 귀여운 ‘아도겐’. 어제보다 조금 더 자랐고, 어제보다 쭉 뻗었다. 이제 곧 잎 사이에서 삐죽한 본 잎이 자라날 것이다.


4월 22일=아저씨의 도전은 오늘도 계속된다. 하루가 다르게 훌쩍 자라나는 아도겐. 햇빛을 먹고 사는 다른 집 고수들에 비하면 성장이 더디지만, 아도겐을 아도겐 그 자체로만 볼 것이다.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아도겐. 환기도 잘 안 시키는 이 방에서 저렇게 묵묵히 자라나고 있다니. 고수는 파종 후 한 달 정도 지나야 재배할 수 있다고 한다.


4월 28일=아도겐의 새싹 사이로 삐죽한 본 잎이 솟아났다. 한 뿌리에서 자라났는데, 잎마다 모양이 제각각이다. 또 한 번의 성장통을 이겨내고 있겠지? 고수 키트를 선물해준 친구가 아도겐이 다 크면 쌀국수를 만들어 준다고 했다. 그런데 널 어떻게 먹지? 천천히 자라다오. 오래오래 함께 하자.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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