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손보사, 자본 5조원 증발 위기 벗어났다
입력 2021.05.20 06:00
수정 2021.05.18 10:44
금감원, K-ICS서 비상위험준비금 전액 자본 인정키로
손보업계, 10조원 중 절반 실종 우려 탈출하며 '안도'
보험사들에 대한 새 자본 규제를 마련하고 있는 금융당국이 손해보험사들의 비상위험준비금을 전액 자본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예기치 못한 리스크를 대비하고자 쌓는 돈을 절반만 자본으로 인정하는 건 제도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일자 금융당국이 전격적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가뜩이나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17) 시행을 앞두고 재무 상태 개선에 어려움을 겪던 가운데 10조원에 달하는 비상위험준비금 중 5조원에 달하는 돈이 자본에서 증발할 위기에 처했던 손해보험업계로서는 부담을 한시름 덜게 됐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신지급여력제도(K-ICS)에서 손보사의 비상위험준비금을 회계상 기본자본으로 분류할 방침이다. 금감원은 이런 내용 등을 담은 세부 시행 방안을 두고 내부 모니터링과 테스트를 진행한 뒤 K-ICS를 본격 도입할 때 해당 사안을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K-ICS는 2023년 보험부채 시가평가를 골자로 하는 국제회계기준(IFRS17) 시행과 함께, 국내 보험업계에 적용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준비 중인 신규 자본 규제다. IFRS17 적용으로 강화되는 자본력을 국내 보험사들이 잘 따라갈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한 자세한 가이드라인이 담길 예정이다.
그 동안 손보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이 K-ICS에서 보험사의 비상위험준비금을 회계상 기본자본이 아닌 보완자본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관측에 논란이 계속돼 왔다. 비상위험준비금이 보완자본이 되면 보험사의 자본력 산정에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K-ICS 아래서 보완자본은 보험사가 필수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요구자본 계산 시 절반까지만 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서다.
보험업계에서는 예상하기 힘든 돌발 변수에 대비해 쌓는 비상위험준비금을 손보사의 자본력 약화 요인으로 만드는 방식은 K-ICS의 목적과도 맞지 않는다는 불만이 제기돼 왔다. 비상위험준비금은 손보사가 재난 등 예측을 뛰어 넘는 거대 손실에 대응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와 같은 자금이다. 통상적인 사고에 대한 보험금 지급을 위해 적립하는 일반 책임준비금과 별도로 구분된 항목이다.
금융당국은 현장의 문제제기를 받아들여 K-ICS 시행안에 비상위험준비금을 보완자본이 아닌 기본자본에 포함시키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비상위험준비금 전액을 손보사 자본으로 잡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손보사들이 적립하고 있는 비상위험준비금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9조7842억원에 달한다. 만약 우려대로 비상위험준비금이 보완자본으로 분류됐더라면 이 중 절반 가량은 자본으로 인정받지 못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같은 시점 46조6798억원인 손보업계의 총 자본을 고려했을 때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삼성화재와 DB손해보험, 현대해상 등 ‘빅3’의 비상위험준비금만 4조5105억원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대형사들로서도 상당한 타격일 수 있었다.
하지만 금감원의 이번 결정으로 손보사들은 큰 걱정거리를 덜게 됐다. 가뜩이나 보험사의 재무 부담을 키울 IFRS17을 앞두고 자본력 개선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손보업계로서는 숨통이 트이는 대목이다. 손보사들의 지난해 말 평균 지급여력(RBC) 비율은 234.2%로 전분기 대비 13.5%p나 낮아졌다. RBC 비율은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제 때 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숫자로, 보험사의 자산 건전성을 평가하는 대표 지표다.
금감원 관계자는 "IFRS17의 표준과 업계의 요구사항 등을 적극 반영해 손보사 회계에서 비상위험준비금을 모두 자본으로 삼을 수 있는 기본자본으로 분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