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PL법 대수술 ②] 모호했던 SW사고 책임·권리 분명히…업계 "지나친 부담"
입력 2021.05.17 06:00
수정 2021.05.17 14:10
‘구글 안드로이드 오류·애플 배터리 게이트’ 재발 방지 근거 마련
PL법 개정안, SW 제조물 책임 포함…임베디드 SW로 구체화되나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이 이달 중 소프트웨어(SW)에 제조물 책임을 부과하는 ‘PL(Product Liability)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가운데 그동안 이용자가 피해를 봐도 제대로 보상이 이뤄지지 않았던 애플리케이션(앱)·서비스 오류로 인한 피해 구제가 가능해질지 주목된다.
1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PL법 통과 시 애플의 아이폰 배터리 성능 고의 저하나 구글 안드로이드 오류에 따른 피해 사례도 제조물 배상 책임에 포함시킬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될 전망이다.
이른바 ‘안드로이드 웹뷰 오류 사태’가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지난 3월 23일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사용하는 스마트폰에서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실행 오류로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카카오톡이나 네이버 앱 등이 먹통이 됐다.
구글은 오류 발생 인지 후 7시간이 지나서야 공지문을 올렸고 이용자에게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오류는 ‘웹뷰’와 ‘크롬’ 앱을 업데이트하는 방식으로 해결됐으나 이미 앱을 삭제하고 다시 설치해 데이터를 유실한 피해자가 속출했다. 기기 자체의 오류로 인지하고 삼성전자 스마트폰 서비스센터 등에 방문하는 등 피해를 본 이용자에 대한 보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SW 문제는 현행법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전기통신사업법 33조 2항에서는 서비스가 중단됐을 때 해당 사실을 고지하고 손해배상 기준·절차 등을 알리도록 했지만 무료 서비스에 대해선 예외가 적용된다.
하지만 SW에 제조물 책임이 부과되면 피해 보상 주체가 보다 명확해지고 이용자 보호가 강화될 수 있다.
특히 안드로이드 OS와 같이 기기 자체에 내장된 임베디드(embedded·내장형) SW의 경우 하드웨어(HW)와 분리해서 보기 어려워 PL법에 명시적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판례상으로는 임베디드 SW를 제조물로 간주해 제조사에 책임을 물은 경우가 있지만 현행 PL법에 정확히 명시되지 않아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송태호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는 “현재도 임베디드 SW가 문제를 일으키면 통상 제조물 설계상에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본다는 것을 판례를 통해 알 수 있다”며 “다만, SW 설계상 결함을 인정받으려면 대체 설계를 어떻게 해야 했을지, 이를 실제 적용했더라면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지 등에 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SW가 PL법에 포함되면 이런 것들을 주장함에 있어서 좀 더 수월해진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애플의 ‘아이폰 배터리 게이트’와 같은 사태에서도 PL법 적용으로 소비자를 보호하는 안전장치가 마련될 수 있다.
배터리 게이트는 애플이 2017년 사용자에게 어떤 공지도 없이 배터리 노후도에 따라 SW 업데이트를 통해 제품 성능을 고의로 낮춘 사건이다. 애플은 구형 아이폰에서 배터리 노후화로 예상치 못하게 전원이 꺼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해명했지만 새 모델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이같은 일을 벌였다는 의심을 받았다.
애플은 구형 모델 배터리 성능 조절 과정이 투명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사과하고 문제가 된 모델에 대해 배터리 교환 서비스를 제공했다. OS 업데이트를 통해 성능 저하 부분도 제거했다.
이후 세계 각국에서 배터리 게이트에 대한 소비자 집단 소송이 잇따랐고 국내에서도 이와 관련된 소송이 진행 중이나 3년 넘도록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과거까지 학계에서는 SW를 제조물에 포함해야 한다는 ‘적용설’과 제외해야 한다는 ‘배제설’로 나뉘었으나, 최근에는 인공지능(AI)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SW에 대한 제조물 책임 적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부가 2012년 PL법 개정에 착수하면서 SW에 제조물 책임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한 사례도 있으나 업계 반발 등으로 무산됐다.
이후 자율주행차·전기차·커넥티드카 등 미래차 분야에서 SW로 인한 사고 위험이 커진 만큼 현행 PL법상으로는 책임 소재에 논란이 있어 이를 정리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는 2017년 발간한 ‘SW 제조물책임 관련 법제 현황 조사연구’ 보고서를 통해 “AI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SW 자체의 독자적 기능이 증대되고, 그 결함으로 인한 손해도 늘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이어 “SW가 완제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 차 늘어감에 따라 SW가 마이크로칩이나 특정 디바이스에 임베디드(내장)된 경우 제조물성을 인정하는 견해가 유력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적용 대상에 대한 명확한 기준 정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번에 발의되는 개정안은 제조물의 정의에 모든 SW를 명시적으로 포함시켰다. 김영식 의원실은 현재 법안에 들어갈 구체적인 내용을 마련하고 있는 단계로 업계 등에서 다양한 의견을 청취 중이다.
향후 법 적용 범위를 제조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임베디드 SW 등으로 한정할지 여부 등 법안 세부 내용은 논의 과정을 통해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면 지난 5일 밤 2시간가량 먹통이 된 메신저 ‘카카오톡’처럼 이용자가 별도로 다운로드받아 이용하는 앱 서비스에서 발생한 오류의 경우 스마트폰에서 실행되는 SW라는 이유만으로 제조물 책임을 부과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이 있다. 이용자 개별 피해 규모를 어떻게 산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SW업계 전문가는 “카카오톡과 같은 서비스 등 모든 SW를 제조물 책임에 포함하는 것은 당초 PL법 취지와 맞지 않을뿐더러 피해 대상이나 규모를 입증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현실적으로는 이번 개정안이 임베디드 SW를 포함하는 형태로 좁혀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이번 개정안에 정보기술(IT)기업이 아닌 업무연관범위 내에서 SW를 제조할 수 있는 모든 기업이 포함될 경우 대상 기업은 2019년 기준 190여개(대규모기업집단에 속하지 않는 연매출 3조원 이상 기업)에 달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진흥정보 사회로 가고 있는 현시점에서 SW를 제조물 범위에 포함해야 한다는 논의는 꼭 필요하다”며 “다만 무형물인 SW 전체를 제조물로 규정하는 방안은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개발 의지를 위축시킬 수 있는 만큼 법 개정 이전에 다각적인 검토가 절실할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