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인데 어쩔래" 제도 악용 청소년 '봇물'…"애들이 더 무섭다" 들끓는 여론, 대책은?
입력 2021.05.05 05:00
수정 2021.05.05 12:17
1호 靑민원에 당시 조국 민정수석 "소년법 10가지 보호처분 활성화…어린 학생들의 사회복귀 더 좋은 것"
"소년범죄는 결국 가정에서 비롯된 것…범죄책임 의무 다하지 못한 부모에게도 물어야"
"소년법이 시대의 흐름 따라가지 못해 전면적 손질 불가피…외국에선 소년법 처벌 강화하는 추세"
"최근 차를 훔쳐서 몰다 사람을 치어 숨지게 했는데도 훈방조처…최소 연령 기준 13세로 낮춰야"
"청소년이란 이유로 보호법을 악용하는 잔인무도한 청소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반드시 소년법은 폐지해야합니다!"
2017년 8월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가 문을 연 뒤 처음으로 정부 답변 요건인 20만명 동의를 넘긴 1호 청원은 다름 아닌 촉법소년법 폐지 촉구 청원이었다. 청원인은 "청소년 보호란 명목하에 나쁜 짓을 일삼는 청소년들이 너무나 많아지고 있다"고 주장했고, 해당 청원은 총 29만6330명의 동의를 얻었다.
하지만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청원 답변을 통해 "소년법에 있는 10가지 보호처분 종류를 활성화 시키고 어린 학생들이 사회로 제대로 복귀하도록 하는 게 더 좋은 것"이라며 전면적인 제도 개선 약속 보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는 데 그쳤다.
이후로도 청소년의 강력범죄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아이들이 어른보다 더 무섭다"며 소년법 폐지를 촉구하는 여론이 들끓었고 이와 관련해 20만명 이상이 동의한 청와대 청원도 4개에 달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청와대는 "처벌 강화만이 청소년 범죄 해결의 열쇠는 아니다"는 입장을 견지했고, 현재까지도 전면적인 법·제도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현행 소년법과 형법에 따르면 '형사 미성년자'인 만 14세 미만 청소년은 죄를 지어도 형사 처벌을 받지 않고 보호처분을 받는다. 14~18세의 '범죄소년'에게는 형사처분이 가능하지만, 소년법이 정한 특례에 따라 형이 완화된다. 이는 아동이나 청소년이 합리적인 사고를 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잔혹한 범죄 소식이 잇따라 전해지고, 나아가 "촉법소년인데 어쩔래"식으로 제도를 악용한 사례까지 빈발하면서 소년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성인과 다를 바 없는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수위의 처벌을 받는 것은 정당하지 않고 범죄행위를 더욱 부추긴다는 주장이다.
실제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이 최근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소년부 송치 촉법소년은 모두 8615명으로 2015년 6551명 보다 31.5%나 늘었다. 범죄 유형별로는 절도 4536명, 폭력 2148명, 강간·추행 357명 순이었으며, 방화 32명, 살인과 강도는 각각 1명과 7명이었다.
또한 대검찰청 범죄분석 자료에 따르면 소년범 초범의 비율은 2009년 58.4%에서 2018년 56%로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지만, 3회 이상 재범한 비율은 2009년 12.2%에서 2018년 17.3%로 지속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년범죄가 상습화되며 지능화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의 해석이다.
정부와 국회가 여론을 수렴해 제도 개선에 나선다고 부산을 떨었지만 결과물은 시원찮다. 제20대 국회는 총 42건의 소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출했지만 여론의 요구와 별개인 1건만이 국회를 통과했고, 나머지 41건의 법안은 모두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됐다. 교육부, 법무부 등은 지난해 촉법소년 연령 축소계획을 내놨지만 엄벌주의에 반대하는 국가인권위원회 입장 등에 가로막혔고 결국 무산됐다.
학계에서도 여전히 소년법을 두고 입장이 엇갈리는 분위기다. 청소년에 대한 엄벌은 범죄 감소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반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소년법이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만큼 전면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소년범죄는 근본적으로 가정 문제에서 비롯되는 게 대부분으로, 자녀 관리가 안 되는 상황에서 소년들만 강하게 처벌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결국 소년범 처벌 강화는 부모가 의무를 내버려둬서 생기는 범죄 책임을 아이들에게만 묻겠다는 것인데 그럼 부모에겐 책임이 없느냐"고 반문했다.
이 교수는 이어 "나이를 기준으로 처벌 정도를 따지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가정과 학교에서 교육을 철저히 해야 하고 제도적인 뒷받침이 따라야 한다"며 "소년범들은 일정 기간 후에 성인이 돼서 사회로 복귀하는데 제대로 된 교육도 못 받고 범죄만 배워서 돌아오는 상황이 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반면 이만종 호원대 법경찰학과 교수는 소년법이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만큼 전면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에 비해서 청소년 범죄 죄질이 악랄해졌지만, 소년법은 이러한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외국에선 소년법 처벌을 강화하는 추세인데, 가해자가 소년이란 이유로 범죄 처벌을 국가가 도외시한다면 소년범죄 문제를 온전히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최근 아이들이 온라인을 통해 범죄 수법을 파악한 후 따라하는 모방범죄도 잦아지는 추세로, 범죄 억제 측면에서는 나이를 불문하고 응당한 처벌이 따라야 한다"며 "소년법의 관용이 가해자에게는 행운이지만, 피해자에겐 엄청난 고통의 시간이 될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소년법을 폐지해서 촉법소년을 모두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것은 극단적인 주장"이라면서도 "다만 소년법이 제정된 1958년보다 지금 아이들의 사고방식이나 체격 등은 급격히 달라진 상황이어서 촉법소년에 대한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특히 최근에는 13~14세 사이의 소년들이 차를 훔쳐서 몰다가 사람을 치어 숨지게 하는 등 무거운 범죄를 저질렀는데, 문제는 이 소년들이 훈방 조처되거나 보호처분에 그쳐 촉법소년 악용 사례로 온라인에 전파돼 모방범죄가 양산되는 것"이라며 "최소한의 연령 기준을 13세로 낮춘다면 경고와 함께 범죄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