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일의 역주행] SSG 정용진 구단주의 유쾌한 어그로
입력 2021.05.01 07:00
수정 2021.05.01 14:48
SNS 통해 롯데 신동빈 회장 직접적으로 저격
의도적인 언행, 야구판 새로운 흥행 요소 기대
“내가 도발하니까 야구장에 왔다.”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이 때 아닌 유통 라이벌 롯데 신동빈 회장을 정면으로 지목해 공격했다. 어찌된 일일까.
앞서 정 부회장은 지난 28일 음성 기반 SNS ‘클럽하우스’를 통해 야구팬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이 자리에서 “동빈이 형은 원래 야구에 관심이 없었는데 내가 도발하니까 제스처를 취했다”라며 신 회장이 경기 막판 자리를 뜬 것에 대해서는 “야구를 좋아하면 나가지 않는다. 야구를 좋아했다면 지금까지 야구장에 그렇게 오지 않을 수는 없다”고 꼬집었다.
한국 프로스포츠는 대기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특히 프로야구와 프로축구가 출범했던 80년대는 지금과 같은 시민 구단 형태의 창단을 꿈도 꿀 수 없었고 정부의 ‘3S 정책’과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해 대기업이 나서야 했다.
이렇다 보니 대기업에서는 프로 구단들을 홍보 또는 사회 기부 형태로 인식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또한 어쩌다 기업 총수가 경기장을 방문할 때면 삼엄한 경비 속에 매우 경직된 모습만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정용진 구단주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는 SSG 랜더스를 창단시킬 때부터 적극적으로 팬들과 소통하는 모습이며, 구단주라는 직책에 걸맞지 않게 일명 ‘어그로(관심 끄는 행위의 속어)’를 끄는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당연히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격한 환영의 분위기다. 경색되었던 야구판에 긍정적 바람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야구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넘쳤던 구단주들은 많았다. 하지만 정용진 구단주와 같이 적극적으로 전면에 나서 ‘판’을 뒤흔든 이는 아무도 없었다.
프로스포츠는 ‘스토리(이야기)’가 있을 때 더욱 큰 흥미를 자아내기 마련이다. LG와 두산은 잠실구장을 같이 쓰고, 전국구 인기팀 LG와 롯데, KIA는 2000년대 초반 동반 부진하며 ‘엘롯기 동맹’을 형성했다. 2000년대 말에는 SK(현 SSG)와 두산의 명품 라이벌전도 있었다. 이와 같은 스토리 라인은 흥행으로 이어진 직접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만약 정용진 구단주의 도발에 신동빈 회장이 응수한다면 다시 한 번 커다란 이슈몰이가 가능하고, SSG와 롯데는 곧바로 라이벌 관계에 놓이게 된다. 이를 바라보는 팬들은 팝콘을 튀기며 두 구단의 자존심 싸움을 즐기면 된다. 정 구단주의 ‘의도적 어그로’가 KBO리그에 또 다른 흥행요소로 자리 잡을 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