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윤, 왜 탈락했을까?…이제 박범계는 누굴 선택할까?
입력 2021.04.29 21:34
수정 2021.04.29 22:39
법조계 "재보궐 선거로 민심이반 목격…친정권 검사 마냥 고집하기 어려웠을 것"
"검사의 기본은 정치적 중립…상식적인 위원이면 이성윤 반대는 당연"
박범계, 이르면 30일 후보 1명 제청할 듯…김오수·조남관 '주목'
유력한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되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결국 검찰총장 후보 추천 명단에 포함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검찰 핵심 요직으로 파격 승진을 거듭하는 등 '친정권 실세 검사'로 불리며 탄탄대로를 걸어왔지만, 지나친 친정부적 행보가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추천위)는 29일 법무부 정부과천청사에서 회의를 열고 검찰총장 후보로 김오수 전 법무부차관, 구본선 광주고검장, 배성범 법무연수원 원장, 조남관 대검찰청 차장을 추천했다. 이 지검장은 추천위 회의에서 표결까지 거쳤지만, 과반수 찬성을 얻지 못해 최종 후보군에 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법조계에서는 여권이 각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지검장의 차기 총장 임명을 강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임기 막바지인 현 정부 입장에서 정권을 향한 검찰의 칼날을 막으려면 친정부 성향이 검증되고 입증된 이 지검장을 지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윤석열 트라우마'가 있는 현 정권으로서는 달리 선택이 없어 보였다.
이 지검장은 그동안 주요 사건을 지휘하는 과정에서 친 정권 성향을 수차례 보이면서 여권의 신임을 얻은 반면, 검찰 조직 내에서는 신망을 잃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검찰 수장이 돼도 조직 통솔이 불가능하고 임명 철회나 사퇴 요구가 빗발치면서 오히려 정권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칫 지난 4·7 재보선에서 확인된 정부 비판 여론의 불씨를 되살릴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또한 이 지검장은 김학의 불법출금 사건 수사에 외압을 가했다는 의혹이 점점 더 짙어졌고, 검찰이 사실상 기소 방침을 굳혔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현직 검찰총장이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나가 후배 검사의 추궁을 받는 전례 없는 사태가 펼쳐질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지검장이 지난 22일 "검찰의 표적수사가 염려 된다"며 검찰수사심의위원회를 소집한 것도 결과적으로는 악수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전국 최대 규모의 검찰청 수장이 검찰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 동시에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를 여론전 및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인 이헌 변호사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국정철학 상관성을 언급한 만큼 이 지검장이 유력해 보였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여권이 재보궐 선거에서 대패하고 민심이반을 목격한 만큼 친정권 검사인 이 지검장을 마냥 고집하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검사의 기본 의무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이라며 "그동안 이 지검장이 친정권 검사로 너무 이름을 날린 탓에 상식적인 위원들이라면 당연히 반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법조계의 시선은 박 장관의 선택에 쏠린다. 박 장관은 이르면 30일 추천위가 내놓은 후보군 4명 중 1명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청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은 내주 중 후보자를 지명하고 국회 인사청문회 등을 거치면 새 총장은 5월 말쯤부터 임기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후보 리스트에 오른 김오수 전 차관은 금융감독원장 후보로 거론됐고 윤 전 총장과 함께 검찰총장 후보자에 오를 정도로 문재인 정부의 신뢰가 두터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친화력이 좋고 지휘·통솔력이 뛰어나 혼란스러운 검찰 조직을 안정화할 적임자라는 게 법조계 안팎의 평가다.
다만 차관 재직 당시 대검과의 갈등을 제대로 중재하지 못하고 정부 편에 섰다는 내부 비판이 많고,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정권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윤 전 총장보다 기수가 3기수나 높아 후속 고검장·검사장 인사 등이 적체될 수 있다는 대목도 약점으로 꼽힌다.
조남관 차장은 윤 전 총장 사퇴 후 검찰총장 직무대행으로서 혼란스러운 검찰 조직을 무난하게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 '개혁의 상징'이란 평가를 받으며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장, 서울동부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다만 윤 전 총장 징계청구 국면에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 '징계를 철회해달라'는 글을 올리는 등 검찰 내 항의 행렬에 동참한 것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배성범 원장은 수사·기획 분야에서 치밀하고 탁월한 능력을 보여 왔다. 현 정부 들어 검사장으로 승진해 대검 강력부장을 거쳤고 이 지검장에 앞서 중앙지검장을 맡으며 조 전 장관 가족 비리 및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수사를 총괄했다. 추 전 장관 인사 때 고검장으로 승진했지만, 수사와 무관한 법무연수원장직으로 발령나 '좌천성 승진' 아니냐는 평이 나왔다.
구본선 고검장은 대검 대변인, 대검 형사부장 등을 거쳐 지난해 1월 추 전 장관이 단행한 첫 검찰 인사에서 고검장으로 승진해 대검 차장검사를 지냈다. 검찰 내에서는 정책 결정 능력이 탁월하며, 성품이 긍정적이고 성실하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