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어가는 아이돌①] “아이돌 산업, 상처받기 최적화된 곳”
입력 2021.04.29 13:00
수정 2021.04.29 13:24
국내 아이돌 육성 시스템, 아이돌 정신 고통의 주범
"화려한 빛이 있는 곳엔 그림자도 있어"

지난해 국민건강보험 진료데이터에 따르면 우울증 등 기분장애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101만명이었다. 이는 2016년 77만명보다 24만명 가량이 증가한 수치다. 특히 연령대로 보면, 20대가 전체의 16.8%로 가장 많았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코로나19로 인한 극심한 청년 취업난, 원격 수업과 비대면 생활 문화 확산으로 집에만 머무는 시간 증가, 밤낮이 바뀌는 생활 등이 20대의 우울증을 부추긴 것으로 해석한다.
특히 연예계, 그 중에서도 청소년들이 중심이 되는 아이돌 산업은 심리 전문가들 사이에서 ‘상처받기 최적화된 곳’으로 통한다. 보통 해외 팝 시장에서는 탁월한 재능이 있는 원석을 발굴해 데뷔시키는 것과 달리, 국내 기획사들은 오디션을 거쳐 뽑힌 연습생을 수년에 걸쳐 노래와 춤, 연기, 언어 등을 트레이닝하고 그 안에서의 경쟁을 통해 팀을 조합한 뒤 음악 시장에 내놓는다.
이 과정에서 연습생들은 매월 성취도를 평가받은 끝에 데뷔조에 뽑히고, 팀워크와 바쁜 스케줄을 빠르게 소화하기 위해 대부분 숙소 생활을 시작한다. 이때부터 사실상 아이돌의 사생활은 없다. 시간과 큰 자본이 투입되다 보니 성공과 인기 유지를 위해 회사나 가수 모두에게 엄격한 관리가 요구된다. 이러한 아이돌 육성 시스템이 지금의 케이팝(K-POP)의 위상을 높였지만, 반면 아이돌의 정신적 고통도 커지게 한 주범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실제로 아이돌 가수들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그로 인해 활동을 중단하는 사례도 점점 늘고 있다. 지난해 트와이스 정연 미나, 볼빨간사춘기 안지영, 오마이걸 지호, 현아, 이달의소녀 하슬, 몬스타엑스 주헌 등이 심리적 불안 증세를 호소하면서 활동을 중단한 바 있다. 또 강다니엘과 세븐틴 에스쿱스도 같은 이유로 활동을 중단했다가 복귀했고, 최근 뉴이스트 아론도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많은 아이돌 가수들이 심리적 불안에 노출되어 있는 이유는, 엔터산업의 구조적인 문제가 기반 한다. 연습생 시절부터 치열한 경쟁 중심의 구도에 놓여 있다 보니 심적으로 과할 정도의 스트레스와 불안감, 좌절감, 자존감 결핍 등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연예인이지만 그 스포트라이트를 받기까지의 과정에서 이미 수많은 상처들을 마주해야 하는 직업인 셈이다. 정상의 위치에 올랐다고 그 상처가 모두 치유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정상에 있는 아이돌에겐 완벽이 강요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혹독한 질책이 따른다.
인터넷상 악성 댓글, 즉 익명의 악플 역시 아이돌을 병들게 한다. 악플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스타이기 때문에 이겨내야 한다는 말처럼 무례한 말이 또 있을까. 실제로 이젠 우리 곁을 떠난 설리나 구하라, 종현 등을 통해 악플의 심각한 문제를 봐왔음에도 여전히 같은 잘못은 반복되고 있다.
이미지로 먹고 사는 연예인은 이런 악플과 경쟁을 강요하는 시스템을 보호 장치 없이 온전히 받아내야 했다. 보여줘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아파도 드러내지 못하고, 좋은 모습만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고 결국 혼자 이겨내야 하는 처지다. 그러나 치유되지 못한 아픔이 번지면서 우울증이라는 병에 갇히게 된다. 이야기를 할 창구는 많지만, 진짜 자신의 속마음을 터놓기 힘든 직업이 바로 연예인이다.
다수의 아이돌 그룹이 소속된 기획사 관계자는 “화려한 빛이 있는 곳엔 그림자도 있다. 치열한 경쟁으로부터 오는 중압감, 생명력이 짧아 해체 후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물론이고 각종 논란에 대한 스트레스 등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는 아이돌이 많다”면서 “특히 작은 실수에도 과도한 비난이 따르는 직업의 특성상 정신적 압박은 더 크다. 본인을 싫어하는 불특정 다수의 앞에 선다는 게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다. 때문에 적절한 대중과의 거리 유지도 필요하다. 과거와 달리 대중과의 소통이 중요시 된 현재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아이돌이 더 많아진 것도 사실”이라고 짚었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심리적 건강 문제에 있어 소속사 차원에서 치료를 권하거나, 활동을 중단하는 등의 분위기는 이미 조성됐다고 말한다. 한 가요 기획사 홍보사 관계자는 “요즘은 무리한 스케줄을 강요하거나 아티스트가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듯한 모습이 보이면 팬들이 먼저 지적하는 시대가 됐다. 여전히 일부 기획사에선 아이돌을 하나의 상품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기획사가 상담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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