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면 화이자 기회 생기지 않을까? AZ 안 맞을래"…'노쇼'로 버려지는 백신들
입력 2021.04.29 11:20
수정 2021.04.29 18:35
백신접종 시작 이후 지난 27일 기준, 164바이알 분량의 백신 폐기
"정부가 집단면역과 공익 위해 백신접종 권고…부작용·안전성은 정부 책임"
"정부, 백신 부작용 '인과관계 없다'로 대응할 게 아니라 철저하게 인과관계 검증해야"
'혈전 생성' 논란이 불거진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예약을 하고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 '노쇼'(No-Show)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선 현장에서는 백신 노쇼 대체자를 구하기 위해 인력이 동원되다 끝내 대체자를 찾지 못하면 백신이 폐기되고 버려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서울 A의원은 지난 14일 백신 접종 예약자가 무단으로 현장에 나타나지 않아 2명이 맞을 수 있는 백신을 결국 못 쓰고 버려야 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1바이알 당 10~12명 접종 할 수 있고, 한 번 백신을 개봉하면 6시간 안에 사용해야 하는데 A의원은 대체할 접종자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A의원 임상병리사는 "다른 시간대 예약자들에게 전화를 10차례나 했지만 소용없었다"면서 "접종 예약자가 예약한 시간대에만 와도 접종 할 수 있는데 참 아깝다"고 말했다.
28일 오전, 2명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예약자가 B의원에 갑자기 당일 예약 취소를 통보했다. 이 병원 원장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혈전 논란 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취소한 사람이 갑자기 두 명 더 생겼다"며 "남은 백신이 너무 아까워 짜증 날 정도"라고 토로했다. B의원은 이전에도 당일 예약 취소 통보를 받고 남은 백신을 폐기하지 않으려고 청소하던 근로자에게 접종을 권유하기도 했다.
서울 C의원 역시 하루 백신 접종 예약자 가운데 10% 정도는 예약을 취소한다. 다행히 이 병원은 아직 폐기한 백신은 없다. 예약 취소자가 생기면 다른 예약 접종자들에게 당일 병원 방문이 가능한지 등을 확인해 일정을 재빨리 변경하고 있기 때문이다. C의원 원장은 "하루에 노쇼로 전화만 40~50차례 한다"며 "병원에서 일일이 명단을 만들고 전화를 돌리기 때문에 인력 낭비 문제도 심각하다"고 말했다.
현재 각 의료기관들은 이른바 노쇼에 대비해 예비 접종자 명단을 만든다. 접종 대상자가 백신을 맞으러 오지 못할 경우 예비 명단에서 당장 접종 가능한 사람에게 연락을 돌려 접종하는 것이다. 위탁의료기관은 예비 접종자 명단이 아니더라도 접종이 가능하다. 이들은 당장 백신을 맞으러 올 수 없으면 해당 의료기관에 누구라도 즉석에서 등록해 백신을 접종할 수 있다. 이 모두가 백신 접종 과정에서 발생하는 백신 폐기를 줄이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이런 방역 당국의 조치에도 노쇼가 늘어날 수 있다. 현재 백신 접종에 참여하는 위탁의료기관은 약 2000개로 운영되고 있고, 6월에는 1만 4500곳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위탁의료기관이 본격 가동되면 각각의 장소마다 노쇼가 발생할 수 있고, 그만큼 버려지는 백신도 늘어날 수 있다. 지금까지 백신 접종이 시작된 이후 지난 27일 기준, 당일에 쓰이지 못했거나 관리 부주의로 인해 164 바이알 분량의 백신이 폐기된 것으로 확인됐다.
무엇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기피 현상이 큰 문제다. 이런 기류는 예약률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지난 27일 0시 기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대상자인 경찰·소방 등 사회필수인력 접종 동의·예약률은 65.4%에 그쳤다. 보건의료인은 56.1%, 만성신질환자는 37.7%에 불과했다. 지난 2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대상자인 요양병원 및 시설의 65세 미만 종사자의 동의·예약률 95.8%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치다.
전문가들도 이 같은 노쇼 현상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신뢰도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면서 무엇보다 백신에 대한 불안감과 거부감을 해소시켜야한다고 조언한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개인 사유 외에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불안감과 접종을 취소하고 기다리다 보면 화이자 백신을 맞을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는 심리가 있을 것"이라면서 "백신의 문제와 부작용에 대해 국민들과 소통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가 집단면역과 공익을 위해 백신 접종을 권고하고 있는데, 최소한 백신 부작용이나 안전성에 대해서는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현재 아스트레제네카 접종 후 발생하는 여러 부작용으로 불안감이 생길 수밖에 없고, 노쇼의 한 원인이 될 수 있다"면서 "국민들이 백신 접종 시기를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해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정부가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하는데 백신의 부작용 사례들에 대해 '인과관계가 없다'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인과관계를 검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홍정익 추진단 예방접종기획팀장은 "노쇼는 식당에도 있고 진료 예약에도 있다"면서 "앞으로 접종 기관이 1만 개소로 늘어나면 마지막 1~2명 분량 정도 잔량이 남거나, 하루에 1~2명 정도 예약을 못 지키는 분이 있을 수 있어 (폐기되는 백신 분량)의 규모도 커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노쇼로 인한 폐기량 최소화에 목적을 두고 예비 명단과 현장에서 즉석으로 등록해 접종 받을 수 있는 쪽으로 안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