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밥그릇 싸움'…올해도 반복되는 변시 합격자수 갈등, 법무부가 제도 개선 나서야
입력 2021.04.23 05:00
수정 2021.04.22 21:12
"1500명에 얽매이기 보다는…응시생 늘면 합격자 늘리고, 의사시험처럼 절대평가 바람직"
"무한경쟁이냐 소수정예냐…둘 다 욕심내니까 어중간한 상황 이어져"
"변시 합격생들 어디에 배치할 지 사후관리 중요…로스쿨 도입 이후 제도적 보완 미흡"

변호사시험(변시) 합격자수를 둘러싼 법조 이해당사자들의 해묵은 갈등이 올해도 반복되고 있다. 결국 '밥그릇 싸움'이라는 비난 속에 전문가들은 법무부가 제도 개선에 적극 나서는 등 본격적인 손질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법무부는 21일 변호사시험 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제10회 변호사시험 합격자를 1,706명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합격자 수인 1,768명보다는 줄었지만 전체 응시생 대비 합격률은 54.06%로 지난해와 비교해 0.76%P 늘어났다.
이에 변호사시험 합격자 감축을 주장해온 대한변호사협회(변협) 등은 "이미 국내 변호사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며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1,200명 이내로 결정하라"고 촉구했다. 반면, 법학전문대학원과 로스쿨 재학생, 변호사시험 응시생 등은 "전체 응시자 대비 60% 이상이 합격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합격자 수를 더 늘려야 한다고 맞섰다.
법무부는 2012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이래 시험 응시생 중에서 약 1500명의 합격생이 나오도록 변시 난이도를 인위적으로 정하고 있다. 이는 로스쿨 입학생 2000명 중에서 75%를 합격시킨다는 취지에서 정해진 기준이다.
실제로 로스쿨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라는 목표 하에 변호사시험의 기본적인 난이도는 사법연수원 1학년 과정 이상을 수료한 자를 기준으로 해 법조인으로서 기본적인 학업 능력을 갖춘 것인지 판단할 수 있도록 출제하는 것이 기본방침이다.
하지만 그해 떨어진 응시생들이 다음해에도 응시하는 경우가 반복되면서 응시생 수는 계속 누적되고 있다. 이에 법무부는 1500명대의 합격자를 유지하기 위해 난이도를 대폭 높여야만 했고 올해 시험 합격률은 54.06%(응시 3156명·합격 1706명)까지 떨어졌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겉으로 내세우고 있는 모든 표면적인 이유들을 걷어내면 변협과 응시생들 싸움의 본질은 결국 밥그릇 싸움이라며, 기성 변호사들의 자기 밥그릇 지키기로 해석하면 이해가 쉽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법무부가 본격적인 제도 개선에 나서지 않는 이상 소모적인 갈등은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인위적인 제한을 둬서 합격자 1500명이란 숫자에 얽매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응시생이 늘면 그만큼 합격자 수를 늘리거나 의사시험처럼 절대평가를 해서 일정 레벨에 못 미치면 과감하게 수를 줄이는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이어 "합격자 수가 늘면 전문성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는 로스쿨 교육 과정을 한 차원 심화시켜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현재 로스쿨 체제에 다른 새로운 제도를 병합시키는 구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사법고시 출신의 현직 변호사도 비슷한 의견을 개진했다. 이 변호사는 "수질관리를 하지 않는 무한경쟁 체제와 숫자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소수정예 체제, 이 두 가지를 모두 욕심내니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상황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행 시험 방식을 유지하려면 변시 합격생들을 어디에 배치할 것인지 그 기회의 폭을 넓히는 사후관리라도 제대로 해줘야 한다"며 "로스쿨을 도입했다면 치열한 논의 과정을 거쳐 제도적인 보완이 이어져야 하는데, 이후로 손을 놓고 있으니 이런 지엽적인 문제들이 계속 생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시험을 절대평가로 진행하고 합격 커트라인을 높여야 한다는 강경 의견도 제시됐다. 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는 "로스쿨이란 변호사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 절대조건은 될 수 없다"며 "응시생 전체 모집인원의 75%를 합격시킨다고 조건을 달면 실력이 없는데도 합격하는 사례가 계속 양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어 "능력만 다들 갖췄다면 1000명이 응시해서 전부 붙을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 1000명이 응시해도 합격자가 없는 수준의 시험이 가장 합리적"이라며 "무작정 수만 늘린다는 건 어설픈 변호사에게 피해를 받는 국민들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부분적인 사시 부활을 주장하는 법조인도 있었다. 한 법학과 교수는 "변시 합격생을 1300명 정도로 소폭 줄이는 대신 약 200명은 사시 합격생으로 채워 전체적인 숫자를 유지하는 것도 한 가지 방안"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 경우 제기될 수 있는 공정성 논란과 관련해서는 "로스쿨과 달리 사시는 특별한 자격 요건이 요구되지 않는다"며 "그들 모두 과거 사법연수원과 같은 조직에서 1년 정도 맹렬한 교육과 경쟁을 거치고 나면 시험 출신과 관계없이 우수한 변호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