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초점] 사회문제에 침묵하던 케이팝 스타들, 세계무대로 금기 깨다
입력 2021.04.04 12:23
수정 2021.04.04 12:26
MZ세대 성향과도 유사
"일종의 총공 현상으로 볼 수 있어"
아이돌 세계에선 오랜 시간 ‘침묵이 답’이란 행동은 당연했다. 이들이 하나의 ‘상품’으로 인식되던 당시 스스로의 사고를 표현할 기회는 없었고, 기획사의 뜻에 따라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 당연시됐다. 그래서 부정적 이슈에 침묵하고, 사회나 정치 문제에 대한 언급에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아이돌, MZ세대가 주로 포진되어 있는 ‘3세대 아이돌’은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침묵이 답이라 여겨지던 시대는 막을 내린 셈이다.
전 세계적 이슈를 일으키고 있는 그룹 방탄소년단(BTS)은 지난달 30일 SNS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슬픔과 함께 진심으로 분노를 느낀다”면서 ‘StopAsianHate’(아시아인에 대한 증오를 멈춰라)와 ‘StopAAPIHate’(아시아태평양계에 대한 증오를 멈춰라)는 문구로 아시아인 차별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글에서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한 기억이 있다. 길을 걷다 아무 이유 없이 욕을 듣고, 외모를 비하당하기도 했다, 심지어 아시안이 왜 영어를 하느냐는 말도 들어봤다”는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어 “우리의 경험은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비하면 아주 사소하다. 하지만 그때 겪은 일들은 저희를 위축시켰고 자존감을 앗아가기도 했다. 하물며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증오와 폭력의 대상이 된다는 건 저희가 감히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방탄소년단의 글 말미에는 이 입장을 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의 과정을 거쳤는지도 그러난다. 이들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아시안으로서 저희의 정체성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며 “이런 얘기들을 꺼내놓기까지, 또 저희의 목소리를 어떻게 전할지 결정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했다. 여전히 사회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깊다.
방탄소년단 뿐만 아니라 미국 애틀랜타 총격 사건 이후 아시아계 증오 범죄와 관련해 에릭남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에 기고해 인종주의적 미국 사회를 비판했고 가수 박재범, 에픽하이 타블로, 타이거JK, 그룹 피원하모니, 그룹 슈퍼주니어 최시원, 잭슨 등도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특히 에릭남은 타임지에 기고한 ‘우리의 목소리를 들을 시간’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나를 포함한 수백만 명의 아시아·태평양계 사람들(AAPI·Asian Americans and Pacific Islanders)은 버려진 기분을 느낀다”면서 백인 중심주의의 미국 문화에서 아시아인은 ‘영구적인 외국인’이거나 ‘모범적인 소수민족 신화의 주인공’이었다고 언급했다.
비단 이런 변화가 미국 내 아시아계 차별 문제에 있어서만은 아니다. 블랙핑크는 COP26의 공식 홍보대사로 위촉됐고, 기후변화를 공식적으로 언급하는 유튜브 영상을 올리고, BBC와 인터뷰를 통해 팬들에게 기후 행동에 나서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몬스타엑스는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해 말 개최한 ‘2ㅔ19차 국제반부패회의’의 홍보대사로 나서기도 했다.
케이팝 가수들이 다양한 현안을 공유하는 ‘스피커’ 역할을 하면서 전 세계 팬들을 참여시키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BTS 아미와 블랙핑크 블링크, 엑소 엘 등의 팬클럽을 2019년부터 각종 기후재난으로 피해를 본 주민을 돕는 기부활동을 해왔다. 또 아미는 기념일마다 BTS 멤버의 이름으로 멸종위기 동물을 돕기 위한 모금을 진행하고, 몬스타엑스 팬클럽인 몬베베 회원들은 야생동물 보호를 위한 모금 활동을 펼치고 있다.
3세대 아이돌을 중심으로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게 된 배경엔 한류의 인기로 케이팝의 영향력이 커지고, 이로부터 발생한 한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진 것의 영향이 크다. 또 아이돌 팬덤의 주를 이루고 있는 MZ세대의 성향도 이런 변화에 주된 역할을 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지만 어떤 긍정적 변화를 위해선 기꺼이 힘을 보태고, 정치·사회적 이슈에 기존 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반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기업 혹은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리 팬이라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한 가요 기획사 관계자는 “지금의 아이돌과 그들의 팬덤은 주로 MZ세대로 구성돼 있다. 팬덤과 아티스트가 상호적으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적극적 참여를 독려한다. 아티스트가 팬들에게 참여를 요청하는 것은 물론, 팬덤 역시 자신이 지지하는 아티스트에게 선한 영향력을 강조한다”면서 “요즘 아이돌의 경우 작사·작사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쓰는 가사 내용만 봐도 어떤 사고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실제로 사회적인 이슈를 가사에 녹이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또 이 관계자는 이 같은 사회, 정치적인 운동이 일종의 ‘총공’과도 같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보통 앨범이나 음원을 소비할 때 총공이라는 말을 쓰는데 아티스트가 사회, 정치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면서 그의 팬들이 아티스트의 목소리에 ‘총공’을 하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