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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해?] '자산어보', 서로의 거울이 된 두 남자의 우정…묵직한 울림 전한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1.03.29 10:52 수정 2021.03.31 09:07

이준익 감독 "시대를 아파하지 않는 시는 시가 아니다"

설경구, 데뷔 후 첫 사극 도전

류승룡·조우진·윤경호·김의성·강기영 특별출연 빛나

ⓒ㈜메가박스플러스엠

이준익 감독이 전작 '동주'에서 윤동주와 송몽규를 조명해 일제 강점기 시대의 비극을 그렸다면 '자산어보'는 정약전과 창대라는 청년을 통해 당시의 천주교 박해와 관료의 수탈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민초들의 아픔을 전한다. 하지만 어둡고 무겁게만 그리지 않았다. 사상과 신분, 나이를 뛰어넘어 서로의 스승과 벗이 되는 정약전과 창대의 이야기는 따뜻하다.


박열 곁에 있었던 후미코, 윤동주 곁의 송몽규를 조명한 것처럼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에게도 관심이 많은 이준익 감독의 관점은 '자산어보'에서도 쓰였다. 18세기 실학 사상을 집대성한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 곁의 형 정약전, 그리고 정약전 옆에서 '자산어보'를 집필할 수 있도록 도왔던 흑산도 청년 창대를 역사 속에서 흔들어 깨웠다. 정약용, 정약전, 창대는 실존인물이지만 허구의 이야기가 섞여있다. 창대는 '자산어보'에 한 줄 이름이 언급돼 있을 뿐이다. 창대의 가족사, 성격은 이준익 감독의 상상력에서 피어났다.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1801년(순조 1년) 천주교 박해사건인 신유박해 때 전라도 흑산도에 유배되어 1814년(순조 14년)까지 생활하면서 이 지역의 해상 생물에 대해서 분석해 편찬한 해양생물학 서적이다. 당시 가부장 가부장적인 권위와 유교적 의례, 의식을 거부하는 천주교의 확대는 조선 유교 사회에 대한 도전이었다. 천주교를 믿는 자들이 지배 체제에 위협이 될 거라 느끼고 정순 대비는 천주교 탄압을 시작했다. 둘째 정약종은 참수를 당했고 동생 정약용은 강진으로 형 정약전은 흑산으로 유배된다.


흑산에서 정약전은 가거댁에 머물며 먹어보지 못한 해산물, 처음 보는 어류들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정약전은 해양 생물들을 분석해 기록하고 싶지만 지식이 부족했다.


흑산도에서 자고 나란 창대는 바다 생물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의 최대 관심사는 글 공부다. 뭍으로 나갈 때마다 책을 부탁해 섭렵하지만 홀로 공부하기에 버거움을 느낀다.


두 사람은 서로의 지식을 공유하며 서로의 벗과 스승이 된다. 창대는 영화 초반 나라의 통치 이념인 성리학이 무조건 옳으며 자신이 가야 할 길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에 그에 반하는 사상을 가진 정약전을 배척한다. 하지만 그의 지식과 통찰력에 감탄하며 가까워진 후, 마음을 연다.


영화의 갈등은 출셋길을 꿈꿨던 창대가 "자산어보의 길이 아닌 목민심서의 길을 가겠다"고 정약전에게 외치고 뭍으로 나가면서부터다. 권력을 쥐고 있는 양반들이 백성들을 위해 정치를 하고 있다고 믿어왔지만, 실제로 그가 본 건 태어난 지 3개월 된 남자 아이와 죽은지 3년 된 노인에게 군포를 메기고 억지와 횡포를 일삼는 악행이다. 창대는 정형화된 학문과 명분과 고집하는 관료들의 모습에서, 순응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백성을 위해 고찰했던 정약전의 진심을 뒤늦게 깨닫는다.


ⓒ㈜메가박스플러스엠

'자산어보'의 풍미를 더해주는 건 흑백과 시다. 이준익 감독은 흑백이 주는 선명함을 내세워 인물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것을 더욱 몰입해 볼 수 있도록 의도했다. 흑백이지만 정약전, 창대, 섬마을 사람들의 색은, 어느 영화보다 다채롭다.


또 영화는 정약용이 지은 시를, 극중 인물의 상황에 대입시켰다. 정약전과 정약용이 유배로 인해 헤어지는 장면에서는 '율정전', 술에 취한 정약전이 밤바다를 거니는 장면에서는 '봉간손암', 영화 후반 관료들의 횡포에 울부짖는 한 백성의 가족들의 울부짖음은 '애절양'이란 시를 스크린에 옮겼다.


'자산어보'를 통해 첫 사극에 도전한 설경구와 가치관의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한 변요한의 연기가 빛난다. 두 사람의 가교 역할이 되어주는 가거댁 역할의 이정은 역시 극의 중심을 잡는다. 또 류승룡, 조우진, 김의성, 윤경호, 강기영 등 대중에게 친숙한 배우들의 카메오 출연이 영화의 문턱을 낮춰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31일 개봉. 러닝타임 126분.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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