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고령화 시대의 케이퍼 무비, ‘퍼펙트 케어’
입력 2021.03.18 13:00
수정 2021.03.18 10:30
흔히 동물계를 ‘약육강식의 세계’라고 한다. 약자는 먹잇감이 되고 강자는 포식자가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약자 입장에서는 잔인한 세상이다. 그런데 인간 세계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오히려 그보다 더 위협적이고 야만적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퍼펙트 케어’는 다가오고 있는 미래, 고령화 시대에 들이닥칠 안타까운 현실을 예견하게 한다.
영화에서 부자가 되고 싶은 야심가 말라(로저먼드 파이크 분)는 법원이 임명한 전문보호자(후견인)로 연인 프랜(에이사 곤살레스 분)과 함께 합법적인 노인들의 돌봄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노인들의 주치의인 카렌이 치매 진단을 통해 요양병원 입소를 결정하면 말라는 법적 후견인으로 지정되면서 그때부터 노인들의 재산을 처분하고 치료비 명목으로 빼돌린다. 그러던 어느 날 말라는 가족이 없는 은퇴한 부자 제니퍼(다이앤 위스트 분)를 소개받고 요양병원에 입원시키면서 그들의 잘못된 만남이 시작된다.
‘퍼펙트 케어’는 케이퍼 무비다. 이는 범죄영화의 하위 장르로 범죄자들이 절도와 강탈하는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는 법적 후견인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통해 은퇴한 치매 노인들의 재산을 착취하는 모습을 기발하게 담아냈다. 말라 역을 맡은 파이크의 연기 또한 뛰어난다. 야심가답게 오직 돈을 위해서라면 선과 악을 넘나들며 무한 질주하는 모습이 눈을 뗄 수 없다. 전작 ‘나를 찾아줘’에서 처럼 긴장감 있게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힘 있는 연기를 선보여 이번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는 재미 이상의 많은 것을 담는다. 먼저 고령화 사회의 이면을 비춘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노인 치매는 급속히 증가하고 이에 따라 노인 부양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더욱이 자녀들은 노부모를 모시려 하지 않으려 하면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처럼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입소가 일반화될 것이 전망된다. 그리고 곧이어 영화처럼 법적 후견인제도를 통해 케어를 받아야 하는 불편한 사실을 마주하게 될 날이 올 것이 우려된다.
법의 허점도 고발한다. 말라는 겉으로는 치매 노인의 건강과 재산을 관리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돌봐줄 가족이 없는 힘없는 노인들을 병원에 가두고 재산을 가로채는 것이다. 젊고 유능한 사업가의 말 한마디에 법정이 좌우된다. 법은 사업가와 의사의 말에 따라 후견인을 두어 요양법원에 입원시키고 재산도 관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들은 불법과 합법을 교묘히 이용하며 자신을 이익을 취한다. 법적 후견인이라는 사회시스템의 허점, 법 역시 힘없는 노인에게 안전한 울타리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관객들을 씁쓸하게 한다.
영화는 강한 포식자만이 살아남는 냉혹한 현실이 짚는다. ‘세상에는 뺏는 자와 뺏기는 자가 있다’고 말하면서 성공 제일주의와 약육강식 등 현대 사회가 갖는 그림자를 영화 안에 녹여냈다. 법도, 사회도, 시스템도 약자가 아닌 강자를 위해 존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짚고 있다. 약자는 물리적 저항도 해보고 법정에도 호소해 보지만 무력하기만 하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의 노인인구가 전체인구의 14%를 넘어서면서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그동안에는 동양적 관습으로 자식들이 부모를 부양했으나 점차 부모부양 기피 현상이 늘어나면서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입소가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치매노인과 고독사가 늘어나면서 노인 문제는 큰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우리도 말라가 관리하는 노인처럼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 ‘퍼펙트 케어’는 고령화 시대의 안타까운 자화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양경미 /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영화평론가 film102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