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채권 잇단 발행 증권가...평가기준은 '두루뭉술'
입력 2021.02.19 08:00
수정 2021.02.18 16:02
미래에셋·NH투자·삼성증권 등 증권사 대규모 ESG 채권발행 ‘붐’
기준 제각각·보여주기식 ESG 우려...“인증·평가 가이드라인 필수”
국내 증권가에도 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ESG) 채권 발행 러시가 시작됐다. 증권사들은 발행 자금을 친환경 등 ESG 관련 투자에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ESG 채권 등급 기준이 모호한 가운데 시장이 급성장한 데 따른 부작용도 우려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 ESG 시장이 더 빠르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는 한편, 정책 가이드라인이 갖춰져야 한다고 진단했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대우는 다음달 3000억원 규모의 공모 회사채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3·5·7년물로 이중 5년물 약 1000억원은 ESG 채권으로 발행할 예정이다. NH투자증권과 신한금융투자가 대표주관사를 맡았고 다음달 2일 수요예측을 통해 9일 발행할 계획이다. 수요예측 결과에 따라 최대 5000억원 증액발행 가능성도 거론된다.
NH투자증권은 지난 16일 1100억원 규모의 공모회사채 형태의 ESG 채권을 발행했다. 국내 금융투자회사 중 최초로 발행하는 원화 ESG 채권이다. 최초 모집예정금액 1000억원 대비 약 6배인 6200억원에 달하는 응찰율을 기록했고 최종 1100억원으로 증액 발행했다. 이번에 발행한 회사채는 5년물이고 발행금리는 1.548%다. NH투자증권은 해당 발행 자금을 녹색사업과 사회적 가치 창출 사업분야 투자 재원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삼성증권은 나이스신용평가의 ESG 인증평가 중 녹색채권 최우량 등급(Green1)을 받은 ESG 채권을 오는 25일 5년 만기 700억원 규모로 발행한다. 증권사가 ESG 등급인증 채권을 발행하기는 처음이다. 해당 채권등급은 친환경 및 기후변화 위기 대응 사업에 투자할 목적으로 발행하는 녹색채권 등급 중 가장 높은 등급이다. 삼성증권은 친환경 프로젝트 관련 투자를 안정적으로 하기 위한 자금 조달이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KB증권 등 다른 증권사들 역시 ESG 채권 직접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연초 회사채 시장에서 대기업의 ESG채권 발행 열풍이 분 가운데 이러한 흐름이 증권가에도 옮겨온 것이다. 지난 1월 한달에만 1조5000억원 규모의 ESG 채권이 발행됐다. LG화학이 국내 일반기업 최대 규모인 8200억원 규모의 ESG채권을 발행하겠다고 밝혔고 SK하이닉스는 지난달 15일 10억 달러(1조1022억원) 규모의 그린본드를 발행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시장 초기단계인 만큼 평가 기준이 제각각이고 발행 이후 관리가 미흡하다는 점이 불안을 키우고 있다. ESG채권은 녹색채권, 사회적 채권, 지속가능채권 등 3가지로 분류된다. 녹색채권은 지난해 12월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기준이 세워졌지만 사회적 채권과 지속가능채권은 일관된 기준이 없다. 또 2개 이상의 신용등급 평가를 받아야 하는 회사채와 달리 1개 기관에서만 인증 또는 검증을 받으면 발행할 수 있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신지윤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평가기관마다 방법론이 달라 일반화하는데 무리가 있으나, 한국의 ESG 경영의 현 주소는 중위권 이하로 보는 게 현실적으로 E와 S가 약한 게 사실”이라며 “거버넌스 G가 확립된 이후 E와 S 경영을 강화하는 게 안정적인데 ESG 준비가 덜 된 기업 경영진이 환경·사회적 이슈에 의사결정을 강요받는다면, 기업 리스크와 함께 비(非) 오너 CEO가 보여주기 ESG에 나설 수 있음에도 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ESG 채권 시장이 형성되기 위해선 발행자·투자자·평가사·정책가이드라인이 필수적으로 틀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ESG채권 발행은 증가한 반면, 시장은 민간의 자율에 맡겨진 상황이었다. 다만 올해는 변화가 포착된다는 평가다.
윤원태 SK증권 연구원은 “ESG 채권의 특성상 발행 시 공정한 인증과 발행 절차·관리가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선 인증과 발행 가이드라인 기준이 존재하지 않아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며 “작년 하반기부터 정책적 가이드라인과 ESG 채권 인증 및 평가 관련 사항이 속속 발표되면서 올해 ESG채권 시장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고 판단했다.
또 최근 몸집을 키운 ESG 채권 펀드가 올해 더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윤 연구원은 “그동안 ESG 채권이 은행채와 공사채 위주로 발행되면서 추가 수익을 내기 어려운 이유로 펀드설정이 어려웠다면, 최근 은행채나 공사채보다 금리가 높은 회사채와 여전채 ESG 채권 발행이 늘어나면서 ESG 채권 펀드에서 운용할 수 있는 자산 종류도 다양해졌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