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바이든 통화' 앞둔 문대통령에게 왜 전화했나
입력 2021.01.27 11:44
수정 2021.01.27 12:17
시진핑, 美 겨냥해 '선택적 다자주의'
비판한지 하루만에 文에 전화 걸어
"美 주도 '반중동맹' 좌절위해 韓 마음사려는 전략"
문재인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했다. 이번 한중 정상 간 통화는 중국 측 요청으로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협력을 바탕으로 대중압박 전선을 꾸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시 주석이 한국을 '약한 고리'로 평가하고 끌어당기기에 나섰다는 평가다.
27일 정치권에 따르면, 청와대는 전날 진행된 한중 정상 통화와 관련해 "올해와 내년 '한중 문화 교류의 해'를 맞아 지난해부터 정상 간 통화를 추진해 왔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두 정상은 '여건 조성에 따른 조속한 시 주석 방한 추진'에도 합의했다고 한다.
한국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후 중국의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이 '경제적 인센티브'와 '시진핑 방한'을 패키지로 묶어 한국에 손짓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중국이 기존 '보복 기조'에서 여지를 두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 건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실제로 시 주석이 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건 시점은 시 주석이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미국을 겨냥해 '선택적 다자주의'를 비판한 다음날이었다.
시 주석은 지난 25일 진행된 WEF 아젠다 회의 연설에서 "복잡한 세계 문제를 해결하는 탈출구는 다자주의"라며 "국가의 역사·문화·사회제도 차이는 대결의 이유가 아니라 협력의 원동력이 돼야 한다.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지 말고 협의와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자주의라는 이름으로 일방주의를 행해선 안 된다"며 "선택적인 다자주의여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민주주의·인권 등 중국을 배제하는 '가치'를 중심으로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들과 연대해 대중 압박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자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한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코로나19 대응·기후변화 등의 분야에서 협력할 뜻까지 비치며 미국에 손을 내밀었지만, 백악관은 외면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WEF 회의 이후 진행된 브리핑에서 시 주석 연설이 바이든 행정부 대응에 영향을 미치느냐는 질문에 "아니다"고 단언했다.
사키 대변인은 "중국이 우리의 안보·번영·가치에 중대한 방식으로 도전하고 있다"며 "우리는 중국과 심각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일정한 전략적 인내를 가지고 접근하기를 원한다"고도 했다.
'전략적 인내'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상징하는 용어로 경제제재 등을 통해 상대를 옥죄며 장기적 관점에서 협상 우위를 점하려는 외교전략을 뜻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중국 전략에 있어 동맹 협력을 강조하는 한편, 전략적 인내까지 거론함에 따라 향후 장기적 관점에서 대중 압박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이는 미국의 역내 동맹인 한국과 일본의 역할 확대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시 주석이 바이든 대통령과 통화를 앞둔 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건 것은 향후 미국의 대중압박 전선에서 '숨통'을 마련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평가다.
실제로 중국 관영매체인 CCTV는 시 주석 방한 가능성은 물론 시 주석의 북한 관련 언급도 보도하지 않았다. 청와대가 "남북·북미 대화를 지지한다" "중국은 정치적 해결을 위한 한국의 역할을 중시한다"는 시 주석 발언을 소개하며 여건에 따른 조속한 시 주석 방한을 언급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날 '미중이 한국을 놓고 경쟁하는 가운데 시진핑이 문재인을 사로잡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중 정상이 8개월 만에 통화한 것은 "중국이 바이든 행정부가 주도하는 '반중 동맹'을 좌절시키기 위해 한국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전략의 일환"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