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단체장 신년사 키워드…"규제보다 기업환경 개선하라"
입력 2020.12.30 11:13
수정 2020.12.30 11:15
"경영환경 불확실성 심한데 정부 규제까지 무더기 입법"
"주요 경쟁국과 동등수준의 경쟁 여건만이라도 갖춰달라"
새해를 맞아 희망적 메시지가 담겨야 할 경제단체장들의 신년사가 온통 우려와 호소로 채워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대미문의 악재에도 아랑곳없이 연말 기업 규제법안들을 잇달아 통과시킨 것도 모자라 새해 추가 규제법안들을 준비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와 여당을 겨냥한 것이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등 주요 경제단체장들은 30일 일제히 2021년 신년사를 내고 기업규제 폭주를 멈추고 기업환경을 개선해 기업들이 경제 활력 회복에 앞장설 여건을 마련해줄 것을 호소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새해 경영환경에 대해 “그동안 코로나19 관련 단기적인 지원 대책들이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상당한 후유증이 시차를 두고 나타날 수 있어 경제 운영에 있어 중장기 관점에서 대응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이 많았다”면서 “민간 부채, 자산시장 불균형, 고용시장 양극화 등 누적된 구조적 취약성에 해결책을 찾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각종 기업 규제 법안들과 관련해 “경제·사회가 성숙하려면, 법으로 규제하고 강제하는 방식보다 자율적인 규범이 작동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선진적인 방식이 더욱 바람직할 것”이라며 “기업들도 법보다 더 높은 수준의 규범을 세우고 실천에 매진할 테니 무리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기 보다는 자율 규범이 형성될 수 있도록 많은 조언과 격려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낡은 법·제도를 혁신해 기업·산업의 신진대사를 끌어올려야 한다”면서 “2년 전 도입된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점검해 특례기간 만료 등 기업들의 사업 중단 우려를 해소하고, 스타트업들의 혁신 노력이 더 확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각종 선거를 앞두고 정치와 경제 이슈가 얽히는 상황에 대해서도 경계했다. 그는 “새해에는 보궐 선거를 포함해 본격적인 대선 정국으로 접어드는 정치 일정들이 많다”면서 “정치와 경제 이슈를 분명히 구분해 새해는 물론 2022년 이후에도 대처할 수 있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그는 정부가 내세운 ‘선진국 수준의 사회안전망 확충’에 대해서는 공감을 표하면서도 “새로운 복지 프로그램을 논의할 때 수혜 대상과 금액 등을 정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해당 지출을 통해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효과를 높이려는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도 새해 경영환경에 대한 부정적 전망을 내놓은 뒤 “더욱이 국내 정책환경은 기업 활동에 부담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진행되면서 산업 현장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정부의 기업 규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지난 몇 년간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에 따른 급격한 경영환경 악화에 더해, 지난해 상법, 공정거래법, 노조법 개정안 등 기업의 경영활동을 제약하는 법안들이 무더기로 입법화됐다”면서 “이에 더욱 악화되는 환경 속에서 투자와 일자리 창출이 위축되고 민간 부문의 경제 활력이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고 한탄했다.
손 회장은 “코로나19 이후 세계 각국의 경쟁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주요 경쟁국들의 경제정책 변화와 글로벌 스탠더드를 고려해 우리 기업들이 최소한 동등한 수준의 경쟁 여건을 갖출 수 있도록 정부와 정치권에서 깊이 살펴 달라”고 당부했다.
정부와 여당이 새해 추가로 추진 중인 집단소송 도입과 징벌적 손해배상제 강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의 규제 입법에 대해서도 “상당한 시간을 가지고 산업·경제적 영향 등을 고려해 신중히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노동시장 개혁도 요청했다. 손 회장은 “지난해에는 노조법 개정과 고용보험 적용확대 등 사회안전망 확충과 근로자 권리 강화가 우선적으로 처리된 만큼, 앞으로 정부는 세계 최고 수준의 노동시장 경직성을 해소하는데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새해 코로나19 장기화, 미중 무역갈등 지속 등으로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클 것으로 예상하면서 “2021년은 우리 경제가 ‘생의 기로에 서는 한 해’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허 회장은 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기업 환경은 우리 경제가 지속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라며 “더 많은 기업인들이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시장에서 맘껏 뛸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허 회장은 “적어도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외국기업들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어야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며 “한국 기업에만 족쇄를 채우는 규제나 비용부담을 늘리는 정책은 거둬 달라”고 호소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은 새해 주요 과제로 ‘새로운 규제입법 저지’와 ‘기존 규제 혁파’를 내세우며 정부에 날을 세웠다.
김 회장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해 “반기업 정서가 확산되고, 기업인을 예비범죄자로 몰아 형사처벌을 강화하면 기업가 정신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면서 “중소기업의 99%는 오너가 대표인만큼 대표자가 구속되면 중소기업은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 법 제정 논의를 중단하거나 최소한 중소기업 대표는 경영활동이 가능하도록 힘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그는 중소기업계를 압박해온 주 52시간제와 관련해서도 “업종의 특수성이 고려돼야 한다”며 대안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회장은 “인력난을 겪는 뿌리산업과 날씨의 영향으로 근로시간 감소 시 납기일 맞추기가 어려운 조선·건설 등 일부 업종들은 획일적인 주52시간제 시행의 예외를 인정하고, 일감이 몰릴 때 노사가 합의하면 특별연장근로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