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코로나가 부추긴 ‘리메이크 홍수’가 와 닿지 않는 이유
입력 2020.12.24 08:36
수정 2020.12.24 08:37
흥행 검증된 곡, 상업적 실패에 대한 위험부담 적어
원곡 넘어서는 리메이크 곡, 창의적 해석 동반해야
가요계의 리메이크는 결코 낯설지 않지만, 올해는 유독 많은 리메이크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현상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의 영향, 그리고 트로트와 레트로 열풍 등으로 빚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제작사 슈퍼맨C&M은 고(故) 김현식의 30주기를 맞아 ‘추억 만들기’라는 주제로 리메이크 곡을 순차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시대를 넘나들며 사랑받아온 고 김현식의 히트곡부터 고인이 작사·작곡에 나섰던 숨은 명곡을 후배 가수들이 다시 부르는 형식이다. 첫 번째 주자로 규현이 ‘비처럼 음악처럼’을, 다비치가 ‘내 사랑 내 곁에’를 그리고 세 번째 주자로 김재환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시 불렀다. 현재 세 사람 외에도 더원, 이석훈, 선우정아, 하림, 옥주현, 백아연, 알리, 장덕철, 레떼아모르 등이 라인업 됐다.
코요태는 리메이크 곡으로 시즌 송을 노렸다.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울려 퍼지는 지누의 ‘엉뚱한 상상’(1996)을 리메이크해 지난 9일 발매하면서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서 지난 7월에는 UP의 ‘바다’(1997)를 리메이크해 여름 시즌을 겨냥했다.
또 다혜는 엄정화의 ‘포이즌’, 소향은 KBS 드라마 ‘오 삼광빌라’의 OST로 이승철의 ‘잊었니’, 함유주는 박혜경의 ‘하루’, 그_냥은 샵의 ‘스위티’, 김호중은 이문세의 ‘소녀’, 전미도는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 티아라 출신 소연은 박상민의 ‘하나의 사랑’, 카더가든은 크라잉넛의 ‘명동콜링’, 윤도현은 김재중에게 선물했던 곡 ‘나우 이즈 굿’, 황소윤은 2PM의 ‘우리 집’ 등을 선보였다.
자신의 과거 히트곡을 리메이크 해 재발매하는 사례도 있다. 이승철은 데뷔 35주년을 기념해 본인이 2013년에 냈던 ‘마이 러브’를 소녀시대 태연과 함께한 듀엣 버전으로 선보였다. 이수영도 자신의 데뷔곡인 ‘아이 빌리브’(I Believe)를 비롯해 ‘휠릴리’ ‘덩그러니’ ‘라라라’ ‘스치듯 안녕’ 등 기존 곡들을 리메이크했다.
특히 방송을 통한 리메이크 곡 발매도 주목을 끌었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주인공인 99학번 의대 동기생 다섯 명이 같이 밴드 활동을 한다는 설정으로 매회 90년대나 2000년대에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 ‘아로하’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등의 곡을 냈고,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를 통해 유재석, 이효리, 비가 결성한 싹쓰리는 듀스의 ‘여름 안에서’를 리메이크해 큰 인기를 끌었다.
이 같은 리메이크 붐은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았다. 올해 초부터 현재까지 코로나19로 인해 신곡 발매가 위축되면서 기존부터 사랑받던 리메이크가 더 활발히 이뤄진 셈이다. 또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으로부터 시작된 트로트 열풍과 레트로 열풍도 과거의 곡들이 다시금 주목받도록 하는데 큰 몫을 했다.
주로 리메이크 되는 곡들을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한 차례 히트에 성공해 음악 자체가 가지는 힘이 검증된 곡들이다. 흥행성이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다는 말이다. 기존의 팬층에겐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트렌디함을 입힌 편곡으로 새로운 팬층까지도 유입시킬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때문에 가수로서는 상업적 실패에 대한 위험부담이 적다.
다만 수많은 리메이크 곡들이 발매됐음에도 기존의 곡만큼 큰 반응을 일으키진 못한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가창자의 유명세나 방송을 통한 홍보가 뒷받침 돼 흥행한 사례들의 경우도 있지만, 그런 부가적인 조건 없이 유명세를 탄 곡은 많지 않다. 원곡의 흥행에만 기댄 무분별한 리메이크가 오히려 대중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단순히 과거의 음악을 다시 부른다는 건 큰 의미가 없다. 가창자도 중요하지만 리메이크에서 가장 중요한 건 편곡이다. 익숙하고 친숙한 음악도 중요하지만, 그에 더해 자신만의 색깔이 덧입혀질 때 비로소 듣는 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흔히 ‘원곡을 뛰어 넘는 리메이크 곡은 없다’고 말한다. 특히 올해 리메이크 곡의 홍수 속에서 이 말은 더 힘을 얻고 있다. 가치 있는 리메이크 열풍을 이끌기 위해선, 원곡이 가진 힘에만 구걸할 것이 아니라, 대중이 납득할 수 있는 창의적인 해석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