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메모리즈⑪] 꾸숑 최민식과 스타트업 김선호
입력 2020.12.23 05:55
수정 2020.12.23 05:56
지난 6일 종영한 tvN 드라마 ‘스타트업’을 재미있게 봤다. 극 중 한국의 실리콘밸리라고 할 샌드박스에서 성공을 꿈꾸며 창업에 뛰어든 젊은이들의 성장과 사랑을 그렸다. 소재 확장이라는 측면이 신선했고 배우 중에도 신선미를 뽐내는 얼굴들이 많았다.
지난해 방송된 드라마 ‘베가본드’에 비하면 일취월장 연기력이 안정된 배수지(서달미 역), 외모와 연기력에 따뜻한 감성을 갖춘 남주혁(남도산 역), 남녀 주인공의 호연은 기본. 청춘 드라마에도 깊이를 드리우는 김해숙은 역시 명불허전의 주연이었고, 달미 아빠 역의 김주헌은 불굴의 인간미를 표현하는 데 최적의 배우임을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 이어 재확인시켰다. 도산이 부모 역의 김원해와 김희정은 나이 든 부부가 아름다울 수 있음을 훈훈하게 보여 주었다. 서이숙 배우는 스타트업(신생 창업기업) 드라마 분위기에 맞춰 니트, 셔츠에 바지를 매치해 입어도 감춰지지 않는 카리스마로 드라마에 운율을 더했다.
앞으로 계속 보게 되겠다 싶은, 실력 있는 신인들이 대거 포진했다. 도산과 함께 삼산텍에서 뼈 빠지게 고생한 용산 역의 김도완은 반전의 한방을, 철산 역의 유수빈은 영화 ‘건축학개론’의 신스틸러 납득이 역의 조정석이 생각나는 유연성 넘치는 코미디 연기를 선보였다. ‘뉴트로지~나’ 영어만 할 것 같았던 스테파니 리는 욕심을 조절할 줄 아는 연기력과 모델다운 비주얼로 눈길을 끌었다. 샌드박스의 나팔수 동천 역의 김민석도 드라마 완급 조절에 감초 역할을 했다.
세컨드 주연이라 할 두 배우는 칭찬 받아 마땅하다. 동생 달미가 콩쥐라면 팥쥐 언니 인재 역을 맡은 강한나는 강한 캐릭터를 ‘합리적으로’ 구사했다. 이유 있는 강함이기에, 무턱대고 악랄한 캐릭터가 아니기에 극 중반까지 달미와 세게 충돌해도, 중반 이후 협력 지수를 높이고 대립 강도는 낮춰도 자연스럽게 캐릭터가 이어졌다. 말이 쉽지 이도 저도 아니게 애매할 수 있는 캐릭터이고 시청자에게 그 변화를 설득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잘했다.
개인적으로, ‘스타트업’ 드라마에서 가장 눈길을 뺏긴 건 한지평 팀장 역의 김선호 배우다. 처음엔 연기를 너무 잘해서, 그다음엔 너무 깨끗하게 잘생겨서 자꾸만 보게 됐다. 달미와 도산을 이어준 인물이지만 둘의 사랑에 방해꾼이기도 한 사람이고, 자신도 몰랐던 혹은 알아도 모른 척 눌러 왔던 달미에 대한 감정을 인정하고 난 뒤엔 자기 머리를 찧으며 괴로워하는 남자다. 달미 외할머니(김해숙 분)가 ‘순딩이’라고 부를 만큼 근본이 선하지만, 직업상 쓴소리 전담이고 어쩌다 보니 도산의 사랑을 탐내는 남자가 됐다. 굉장히 복합적 캐릭터인데 스노우보드 타고 슬슬 고급 코스를 여유롭게 미끄러져 내려온다. 연기 잘하는 줄 알았지만, 이 정도였나, 적잖이 놀랐다. 대중의 눈에 익은 베테랑 배우는 아니잖은가.
놀라서, 연기 이만큼 잘하는지 몰랐던 게 미안해서 자꾸만 본다고 생각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 유레카! 깨달음이 팍 왔다. 명배우의 얼굴과 김선호의 얼굴이 정확히 겹쳤다. 반듯한 눈썹, 커다란 눈망울에 선명한 쌍까풀 그리고 약간 처진 눈꼬리, 코끝이 살짝 뭉뚝해지는 콧날, 야무진 입술선. 최민식이었다. 닮았다고 생각하고 보니 목소리 울림이나 음색, 특유의 발화 방법과 억양까지 배우 최민식과 흡사하다.
그것도 어느 시절의 최민식인고 하니, 1990~91년 방영된 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젤소미나(이휘향 분)의 아들 꾸숑 역으로 나왔을 때의 ‘청년’ 최민식을 연상케 한다. 당시 꾸숑의 등장은 그야말로 세간의 화제였다. 어디서 저런 배우가 나왔지? 굉장히 신선했다(1989년 개봉한 영화 ‘구로 아리랑’이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의 최민식을 모든 시청자가 기억하는 건 아니었기에).
목소리 울림이나 발화 방식이 낯설어서 한국말을 하는데 외국어를 듣는 기분이었고, 해외에서 방금 귀국한 것 같은 패션도 눈길을 끌었다. 배우 최민식이 드라마에서 탄탄한 연기력과 깊은 한숨과도 같은 비련의 내공을 확인시킨 건 드라마 ‘서울의 달’이었다. 시골 총각 춘섭이의 애달픈 서울살이에 시청자가 함께 울었다. 30년 전만 해도 낯설었던 울림의 발성이 2020년에는 연기 호평의 잣대가 돼 있다니, 격세지감. 명배우 최민식의 연기가 우리의 귀를 바꿔놓았다.
필자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최민식 김선호’를 적어 보았다. 역시, 사람의 생각은 비슷하다. 드라마 갤러리 등에서 닮았다, 똑같다, 비교가 한창이다. 중요한 건 최민식과 닮아서 연기를 잘하는 것으로 보인 게 아니라 연기를 잘해서 주의 깊게 보다 보니 최민식이 보였다는 것이다.
김선호 배우의 차기작을 얼른 보고 싶어서 찾아보니 연극 ‘얼음’이 1월 8일부터 공연 예정이다. 형사 두 명의 2인극인데 형사1에 정웅잉, 이철민, 박호산 배우가 형사2에 이창용, 신성민, 김선호 배우가 캐스팅됐고 고정 파트너 없이 3×3으로 교차해 연기한다. 좋아하는 배우가 많아서 한 번 관람으로는 부족하다 싶다.
배우 신민아와 드라마 공동 주연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고 김주혁 배우와 엄정화 배우가 연기했던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2004)을 안방극장으로 옮긴 tvN 드라마 ‘홍반장’에서다. 신민아와 멜로를 연기하다니 빠른 성장이 반갑고, 이번엔 짝사랑 아닌 알콩달콩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