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만해?] '조제', 한지민 남주혁 감성연기보다 진한 김종관의 색채
입력 2020.12.10 01:00
수정 2020.12.09 18:21
일본 소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리메이크한 영화 '조제'가 김종관 감독의 색을 입고 한국 감성으로 태어났다. '폴라로이드 작동법 , '조금만 더 가까이',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 등 담담함과 잔잔함, 그리고 쓸쓸함으로 자신 만의 멜로 영화 문법을 만들어낸 김종관 감독이 색채가 가장 깊고 진하게 응집됐다.
'조제'의 줄거리는 원작을 따라간다. 조제와 영석의 첫 만남은 동네 길거리다. 프랑수아즈 사강 작가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책을 사러 나갔다가 난처한 상황에 빠진 조제를 영석이 집까지 데려다 주며 인연은 시작된다. 조제의 집 안에는 헌책들로 가득하다. 철 지난 여행책부터 소설, 잡지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다리가 불편해 마음대로 나갈 수 없는 조제는 책을 읽으며 자신 만의 세계 속에 빠져 산다. 위스키에 대한 지식도 해박하다. 영석은 동정으로 접근하지만 쓸쓸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조제에게 호감을 느끼고, 조제 역시 영석과 가까워지며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JTBC '눈이 부시게'로 한 차례 호흡을 맞췄던 한지민과 남주혁의 섬세한 감정 연기가 117분 동안 펼쳐진다. 장애부터 부모로부터 버려진 과거까지 결핍으로 뭉친 조제 캐릭터를 입은 한지민의 절제된 감정 연기가 돋보인다. 처음 느끼는 사랑과 두려움, 이별 감정을 감정을 잘 내보이지 않는 조제답게 담담하게 표현했다. 또 책으로 세상을 배운 덕분에 문어체가 많은 대사를 어색하지 않게 뱉어낸 점도 눈길을 끈다.
남주혁은 학교 후배, 대학 선배와 관계를 맺고 있지만 조제에게 비로소 사랑을 느끼는 영석을 무리없이 소화했다. 두 사람의 쓸쓸한 사랑과 현실적인 이별은 한지민과 남주혁의 깊어진 감성연기로 완성됐지만, 이보다 더 진한 여운을 주는 건 김종관 감독의 연출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 두 사람의 상황과 심정을 대변해주는 영상미는, 차가운 마음을 더 차갑게, 쓸쓸한 마음을 더 쓸쓸하게, 따뜻한 마음을 더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영상미는 '조제' 양날의 검이 됐다. 배우들의 연기보다 더 진하게 부각되는 것이 아쉽다. 영화가 끝난 후 사랑에 빠지고 아파하는 조제와 영석보다, 흩날리는 벚꽃, 차갑게 내리는 비, 떨어지는 낙엽,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영상이 잔상에 남는다.
또 2020년 해석을 입은 조제의 캐릭터도 호불호를 가르는 주효 포인트가 됐다. 영석과 사랑을 확인한 후 떠나면 장애인을 범했다고 소문내버리겠다는 대사는, 서사와 맞지 않아 조제의 매력을 반감시킨다.
영화는 원작처럼 두 사람이 사랑을 하며 겪는 위기와 과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너와 가장 먼 곳을 걷고 싶었어. 그러면서 갇혀 있고 싶었다"는 말 뒤로 "꽃들이 죽는다. 예쁘게 조용하게 죽는다"는 내레이션이 두 사람의 관계를 예고한다. 갈등과 위기가 생략된 영화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김종관 감독의 잔잔한 감성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추천하지만, 원작에 대한 애정이 큰 관객이라면 실망할 포인트도 적지 않다. 10일 개봉. 러닝타임 11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