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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경제야, 멍청아!´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입력 2007.12.13 09:34
수정

반이명박 진영,‘경제대통령’브랜드로 무장한 ‘이명박 대세론’꺽을 돌파구는?

박근혜·김민석의 ´패배 교훈´ = 정신력 + 정책과 비전 ´Ok´, 네거티브 ´No´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후보(자료사진)

#1: ‘문제는 경제야, 멍청아! (It’s economy, stupid)’ 지난 1992년 미국 대선에서 현직이던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도전장을 던졌던 빌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가 내건 슬로건이다. 당시 빌 클린턴 후보는 ‘마리화나 흡연’, ‘징병기피’의혹 등으로 많은 공격을 받았지만, ‘경제대통령’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워 기세를 잡았고, 결국 대선에서 승리했다. 유권자들의 관심과 시대정신이 ‘경제’에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결과였다. 역설적으로 부시 대통령의 ‘클린턴 의혹’공세전략은 ‘경제’에 묻혀 먹혀들지 않았다.

미국 대선에서 벌어졌던 일이 15년 뒤 한국 대선무대에 다시 재현되고 있다.

상황은 다소 다르지만, 현재 대선은 ‘경제대통령’브랜드로 무장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대통합민주신당 등 정치권의 총공세에도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며 대선고지 점령을 눈앞에 두고 있다.

무엇보다 노무현 정부의 실정으로 ‘경제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욕구가 커지고, 반대로 도덕성보다 국정운영능력을 높이 사는 대선분위기가 형성돼 이 후보의 대세론이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이에 이 후보는 “경제, 확실히 살리겠습니다”는 구호를 앞세워 경제이미지를 더욱 견고히 하고있다.

때문에 ‘도곡동 땅’, ‘위장전입’, ‘자녀위장취업’, ‘BBK사건’ 등 각종 의혹공세는 별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15년 전 미국대선과 유사한 맥락이다.

하지만,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와 무소속 이회창 후보 등은 여전히 이명박 후보의 각종 의혹에 대한 공세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신당은 검찰의 이명박 후보에 대한 ‘BBK사건 무혐의’발표에도 불구하고, ‘BBK수사검사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는 등 ‘막판 뒤집기’를 위한 안간힘을 쓰고 있다. ‘BBK사건’을 크게 벌여놓은 만큼, 다른 전략으로 수정·이동이 어려워졌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각에선 이 같은 신당의 전략을 대선승패 보다 내년 총선을 겨냥한 ‘준비작업’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선거막판으로 갈수록 이명박 후보 독주체제가 뚜렷해지면서 ‘반(反)이명박’ 진영이 ‘승리의욕’을 잃고, 시선을 총선으로 돌렸다는 것.

결국, 이 후보 대세론의 근간인 ‘경제대통령’브랜드는 어느 후보도 따라잡지도 못했고, 흔들지도 못했다는 반증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두 명의 ‘패장’ 박근혜 김민석

최근 이명박 후보에게 패배한 두 명의 정치인이 있다. 한명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이고, 또 한명은 민주당 김민석 전 의원이다. 이들은 각각 지난 8월 한나라당 대선경선과 2002년 서울시장선거에서 패배했다.

이들은 모두 선거 막판까지 접전을 벌였다. 또한 선거가 끝난 뒤엔 일제히 무릎을 치며 아쉬워했다. “시간이 일주일만 더 있었더라도...(박근혜측)” “정책으로 승부를 냈더라면...(김민석)”이라고 소회했다.

역설적으로 이들의 ‘패배 교훈’에서 ‘반(反)이명박’진영의 돌파구를 탐색할 수 있어 보인다.

똘똘 뭉친 박근혜 캠프의 ‘정신무장’= 선전(善戰)할 수 있었던 전투력

우선 박 전 대표의 경우 이 후보와 경선 ‘초반전’ 지지율격차는 최대 30%포인트 이상이었다. 박 전 대표측은 ‘두 자릿수’ 격차를 따라잡기 위해 이 후보의 각종 의혹에 대해 총공세를 폈다. 현재 정치권이 이 후보에게 공세를 펴고 있는 상황과 다를 바 없었다. ‘공세 재료’도 그대로였다.

당시 박 전 대표 측은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이 후보의 핵심 공세대상을 ‘비리의혹’에서 ‘한반도 대운하’로 변경했다.

본격적인 ‘대운하 때리기’가 시작됐다. 하루에 양측의 대운하 관련 기자회견이 6차례 열리기도 했다. 신문에서 ‘대운하 건설 찬·반’여론조사를 실시하고, 방송에선 전문가들의 찬·반주장이 대립하는 등 이 후보의 ‘경제대통령’이미지에 하나 둘 ‘펀치’가 날아들었다.

박 전 대표측은 “우리가 여론에서 밀리는 것은 ‘경제 살리기’와 ‘추진력 있는 대통령’이미지를 이 후보에게 선점당했기 때문”이라며 ‘검증공세’와 ‘대운하 때리기’를 병행했다.

박 전 대표측의 검증공세가 ‘카운터펀치’라면 대운하공세는 ‘잽’이었다. 서서히 누적된 ‘잽’은 ‘이명박 대세론’의 근간을 흔든 원동력이 됐고, 결국 박빙의 승부를 만들었다. 개표함이 열리기 전까지 누구도 승부를 예단치 못했다.

무엇보다 박 전 대표의 ‘선전(善戰)’ 이유는 캠프구성원들의 ‘정신무장’에서 찾을 수 있다. “단 한번도 진다고 생각 안했다.(안병훈 선대위원장)”, “이긴다. 이길 수밖에 없다.(이혜훈 대변인)”, “꿈 속에서도 이기더라.(최경환 종합상황실장)”는 등 캠프구성원 모두가 승리를 확신하고, 하나로 뭉쳤고, 저마다 ‘일당백’의 막강한 전투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김민석의 한탄, “패한 뒤 정책과 비전의 중요성 알게 됐다”

김 전 의원도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 후보를 맹공했다. 당시 그는 이 후보의 ‘건강보험공단 소득 미신고’, ‘의보료 미납’, ‘불법 전화부대 동원’ 등 각종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심지어 ‘불법 전화부대동원’의혹과 관련, 이 후보의 사퇴를 촉구했고, 이회창 대선후보와 서청원 대표, 이상득 사무총장 등 4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김 후보의 ‘이명박 의혹공세’는 선거가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당시 양 후보의 지지율 격차는 1~2%P에 불과하던 상황.

이에 이명박 후보는 김 후보측이 제기한 의혹에 대한 해명을 해나가면서도 정책아젠다 제시를 통해 난국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청계천복원’공약을 전면에 내세워 ‘경제시장’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이 후보의 이 전략은 주효했고, 김 후보는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김 전 의원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이 후보는 자신이 어려운 국면을 청계천 등 아젠다를 던지면서 정면돌파했다”면서 “그 때부터 난 정책과 비전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고 소회했다.

김 전 의원은 또 “전체 선거의 기조가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치우쳤다. 이 점은 나 자신으로서도 특별히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대목”이라면서 “나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정책비전 제시를 주로 하고, 상대의 도덕성에 대한 비판은 가급적 캠프차원에서 공식적으로 하고 나는 정책토론에 치중하는 것이 바람직했다”고 말했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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